[인터뷰] “직업교육 너무 홀대… 정부가 이러면 안 되는 거죠”

2021.01.06 10:30:00

윤인경 한국직업교육학회 회장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세 분 다 직업계고 출신이신데 취임 이후 모교가 모두 일반계고로 전환했어요. 직업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뼈아픈 현실이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윤인경 한국직업교육학회장은 착잡해 보였다. 얼마 전 모 지상파방송에서 특성화고를 용역업체로 비유한 것을 두고 한바탕 ‘격전’을 치른 그였다. 사과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너무했어요. 제자 한 명이라도 더 취업시키려고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 데…. 왜곡된 내용으로 (특성화고를) 폄훼하다니요. 수십 년이 지나도 직업교육에 대한 편견은 여전한 것 같아 서글픔이 앞섭니다.”

 

직업교육에 배려 너무 없어

윤 회장은 직업교육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탓하기에 앞서 정부부터 반성할 대목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전체의 20%가량 돼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죠. 그런데 국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배려가 없어요.”

 

그는 교육과정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특성화고에 편성된 교과 수가 500여 개. 하지만 교수·학습방법이나 평가를 연구하는 인력은 교육부 산하기관에 4~5명 정도라고 했다. 계열별로 1명꼴이다. 국·영·수 등 주요교과는 수많은 연구진이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부터 수능 시험문항까지 분석하고 있지만, 직업교육교과는 교수·학습에 대한 연구과제조차 진행되는 게 없다. 내실 있는 교육과정이 토대가 돼야 우수한 기술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데 첫 단추조차 꿰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윤 회장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2022 교육과정 개정에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2015 교육과정에서 NCS가 도입됐지만, 그동안 교사 양성, 교수·학습, 평가방식, 시설 설비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뒷받침된 게 없다”면서 “2022로 숫자만 바꾼다고 교육과정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내 자식 같으면 그리하겠나”

뭐니 뭐니해도 특성화고의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취업난. 지난해 말부터 유은혜 교육부총리가 경제단체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취업 지원을 당부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윤 회장은 교육부총리가 앞장서 취업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데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수한 직업계고 졸업생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는 그는 “내 자식 같으면 그런 근무조건에서 일하도록 하겠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을 호소했다.

 

아울러 교육부나 교육청 등 공공기관부터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많이 취업시키는 모범을 보여 달라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고졸 공무원 비율을 2022년 20%로 끌어 올린다고 장담했지만 큰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방직 9급은 2019년 317명에서 2020년 331명으로 고작 14명 늘었다.

 

현장실습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전담기관 설립을 제안했다. 윤 회장은 현장실습이 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매우 빈약하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현장실습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모두 담임교사나 학교에 책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현장실습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마련을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속사포를 쏘아대던 윤 회장이 특히 목소리를 높인 부분은 직업계고교의 교원 처우개선과 진로·직업교육 강화. 그는 먼저 일반계고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계고교 교사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기본적인 교과교육은 물론 취업 준비, 취업처 알선, 학생 모집 홍보까지 일반계고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업무들이 (특성화고엔) 너무 많다”며 “직무 분석 등을 통해 업무곤란도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들의 행복한 미래는 국가의 책무

아울러 진로·직업교육은 초·중·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모든 교과의 교사 양성은 진로·직업교육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모든 교과의 표시과목에 ‘진로·직업’ 과목을 신설하고, 교사 임용고시에도 반영, 교사들의 역량강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직업교육학회 사상 첫 여성 회장인데다 직업교육계 대모로 불리는 윤 회장,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빠뜨린 말이 있다며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곤 특성화고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전국 규모 연구대회는 꼭 존치돼야 한다고 했다. 20여 년 이상 실시돼온 ‘전국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학교경영 및 교수·학습 연구대회’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전국단위 연구대회를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윤 회장은 “끊임없이 교수·학습방법을 연구하고 개선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해 온 연구대회를 없애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이는 직업교육의 전문성 퇴행을 초래하는 교각살우나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새해를 맞는 그의 소망이 궁금했다. “직업교육을 더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들이 그들의 적성과 능력을 직업교육을 통해 신장하고 기술을 연마해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기 때문이죠.”

 

윤 회장은 “세계가 부러워한 K-에듀를 이제부터는 우리의 직업교육역량이 집결된 ‘K-진로·직업교육’으로 이어받아 전 세계로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직업교육 효시는 1899년 상공학교의 설립부터.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교 명칭은 실업계고등학교, 전문계고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특성화고등학교로 불린다. 1958년 제1차 교육과정부터 고등학교 수준에서 농업·공업·상업·수산·가정(가사·실업) 분야의 전문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산업구조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미흡,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일자리 수급 불균형,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로 인한 사회 전반적인 직업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교육과정의 경직성 등 직업교육의 문제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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