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업무를 맡아서 소송과 씨름한 지도 거의 1년째. 1심에서 승소하고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곧바로 2심. 어찌어찌 소송을 이어왔지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변론에 하나하나 반박을 해주고, 3년 전 일이라 있는 공문 없는 공문을 다 찾아가며 증빙을 했지요. 드디어 선고기일. 얼른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고기일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웬걸. 법원에서 통보가 와요. 변론 재개! 선고를 받아야 하는데 다시 시작한다는 통보. 끝나나 싶던 소송 준비는 다시 시작돼요. 나름대로 관리했던 멘탈은 다시 심연으로 빠져들기 시작해요. 다른 업무를 맡은 분들은 방학이라 여유로울 때, 학폭이 터져서 정신력이 소진되고, 그나마 조금 추스르려고 하니 소송은 변론부터 다시 시작. 이럴 때는 아무리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교직에 있다 보면 꼭 학교폭력 업무를 맡지 않아도 정신력이 바닥을 칠 때가 종종(이라고 쓰고 많이, 라고 읽는 것은 비밀이지만) 있어요. 교실로 걸려 온 말도 안 되는 민원 전화에 짜증이 올라올 때, 보통 2월에 있는 업무분장, 남들은 쉬운 업무도 잘만 받는데 어렵고 무거운 업무를 받아서 마음이 쳐질 때, ‘내 인생은 왜 이러지?’ 답답하고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바닥을 치기 딱 좋은 순간이지요. 그럴 때는 아주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게 돼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자기 연민은 아주 힘이 세요. 한 번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 허우적허우적 숨이 막히기도 해요. 그런 순간에는 마음 한 자락을 제대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불현듯 자기 연민에 휩싸이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건 필연이었을 거야.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측은지심을 느껴선 안 돼. 이런, 가브리엘, 약해져선 안 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의 소설 <죽음>의 한 구절이에요. 영문도 모르게 죽어 버린 주인공 가브리엘. 유령이 되어서도 감정이 있는지 갑자기 우울감에 빠져버렸지요. 가브리엘은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겠다고도 다짐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아요.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은 축 처지는 감정에 지배당하기도 하니까요. 일단 ‘내가 불쌍하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감정에 지배당하기 시작할 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중요해요. 일단, 업무는 업무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첫걸음! 어떤 업무이든 업무 그 자체로서 처리할 부분을 처리하면 그뿐이에요. 때로는 AI인 것처럼 ‘업무 처리를 위한 알고리즘은 무엇일까?’만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더군요. 물론, 중간중간 감정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은 함정이지만요.
짜증 나는 업무 때문에, 혹은 답 없는 업무 분장표 때문에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면 저 같은 사람을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위로 삼으세요. ‘행정소송’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초빙으로 와서 학폭을 담당하는 어떤 사람. 1심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소송이 항고심까지 가고 자칫하면 대법원까지 갈 것 같아서 노심초사하는 사람. 그런 최악의 경우도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있으니까요. 최악의 업무를 맡은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마음을 지키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사실 다른 분들을 보면서 힘을 내기도 해요. 저는 그래도 행정소송만 하는데, 어떤 학폭 담당 선생님은 행정소송에, 민사에 형사에 3종 세트를 다 하시더라고요. 그분을 만나고 나서는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사람 마음이 참 그렇죠?
지금은 방학이라 마음이 편하실 테지만, 앞으로 업무분장을 받고 나면 싱숭생숭해질 수도 있어요. 그럴 때, ‘내가 쟤보다는 낫네’하는 마음을 가지시면서 살짝 위안으로 삼길 바랄게요. 새 학기를 준비하는 1·2월 잘 보내시고, 마음에 안 드는 업무분장 표를 보더라도 마음을 잘 지키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