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유튜버의 원격수업 견문록

2021.04.05 10:30:00

2020년 학교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학사일정과 교육과정, 교사들은 준비되었으나 학생이 학교에 오지를 못 하니 학교의 모든 활동이 멈춰버렸다. 유일한 움직임은 수없이 교육과정을 고치고, 학생들의 방역과 자가진단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노동뿐이었다. 오프라인으로만 이루어졌던 학교생활을 온라인으로 옮기려니 필요한 것은 물적·인적 인프라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학교 안 오니 교사들은 참 좋겠다”, “교사들이 최고 편한 시국”이라는 말은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교사들의 심적 지지대를 갉아 먹었다. 휴직자로서 학교와 동료교사들을 지켜보며 늘 궁금했다. 원격수업을 하고 교사들은 정말 편해졌을까? 나는 원격수업에서 얼마만큼 할 수 있는 교사일까? 교육부의 통보식 발표에 대응할 만큼의 여건이 학교에는 얼마나 갖춰져 있을까?

그리고 2021년 온·오프 병행수업을 하는 학교로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원격수업, 드디어 나도 해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3월은 그야말로 교사로서의 나의 능력치를 절감하는 ‘자아 재발견’의 시간이었다.

 

2년 차 유튜버도 원격수업이 어렵다

내가 복직하면 원격수업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할 때 현장에 있는 동료들이 말했다. 유튜브를 할 정도(! 사실상 대단하지 않음에도)라면 원격수업은 충분히 할 것이라고. 그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유튜브를 한다는 것은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기본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에 반은 맞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로 내가 하기 좋은 방식으로 만들면 되는 유튜브와, 대상·내용·의도가 정해져 있는 수업은 차원이 달랐다. 수업은 구조화가 필요한 정교한 작업이었다. 온라인으로 하더라도, 학년에서 합의한 메인 영상이 있더라도, 성취기준이 실현되는 수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도입·전개·정리 기술이 필요했다. 교육과정상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하며 온라인 콘텐츠형 수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디지털 교과서와 영상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적절히 배치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필기펜과 녹화 프로그램의 단축키를 능숙하게 써가며 녹화하고, 편집기술로 분량까지 적절한 ‘슬기로운 영상작업생활’을 할 줄 알아야 했다. 저작권 문제가 없는 자료들을 찾아야 함은 아주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렇게 이 자료, 저 콘텐츠를 오가며 10분 넘게 녹화하고 아이들이 보기 좋게 편집하면 그 영상은 고작 2~3분짜리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분명 야채도 패티도 풍성한 수제버거를 만들었는데, 편집을 거치니 얇게 눌러 만든 토스트 한쪽만 남는 느낌이랄까. 아이들과의 대화가 없으니 40분짜리 수업이 20분으로 쪼그라들었는데 그 20분을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는 5~6배의 시간이 들어야 하는 현실을 절감했다. 원격수업 첫 이틀간 해야 할 6차시 분량 수업영상을 만드는데 4일을 2~4시간만 잤다. 이런 고강도 노동은 단련된 유튜버도 난감하다.

 

굽은 어깨가 펴질 수 없는 이유

학교에서만 콘텐츠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없다. 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학년 초라서 더 그렇기도 하다. 4학년 아이들과 5교시 수업을 하고 나서 학년 업무, 학교 업무를 하고 나면 퇴근시간이 가까워진다. 초과근무를 해도 일을 다 못 한다. 협력이 필요한 일들을 먼저 해야 하니 우리 반 수업과 학급운영은 늘 마지막이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만들려면 노트북과 태블릿, 지도서까지 짐이 많다. 아무리 가벼운 노트북을 써도 무게에 무게가 더해져서 어깨가 펴질 날이 없다. 학교 컴퓨터에는 필기펜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걸 쓰려면 태블릿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는 없으니 따로 들고 다닌다. 거대한 몸집의 데스크탑은 여러 장치를 간편하게 연결하고 유연하게 사용하기에는 둔하다. 사실 학교 컴퓨터라는 존재는 유난히 유선을 좋아해서 장치마다 연결할 줄이 있어야 하고, 또 길이도 길어야 한다.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블루투스도 안 된다. 스마트폰으로 교실 TV에 미러링이 되면 훨씬 간단할 때도 많은데 그 간단한 일조차 가능하게 하려면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필자의 주변 교사들은 대부분 아이패드나 태블릿 등 원격수업을 위한 장비 하나씩은 직접 사비로 장만해서 휴대하고 다닌다. 학교 안에서라도 장치가 선진화되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출근하는 어깨가 좀 더 가벼워질까? 이 시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다. 교사들이 유튜버가 되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학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장치 자체가 유연하지 못하다.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술이 싹트기 힘든 환경이다.


직무유기와 참교사 사이

저작권의 벽이 높다 한들 교사들의 공유사회에서는 ‘하늘 아래 뫼’였다. 교사 사회에는 저작권 문제의 늪을 야무지게 빠져나가는 공유 콘텐츠들이 참 많았다. 업로드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면 수업 준비는 별로 어려운 것이 없다.

 

나는 대단한 참교사가 되기보다는 기본을 하는 교사이고 싶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오는 영상에 더 집중이 잘 되고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낯선 목소리만 나와도 선생님과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AI 목소리로만 모든 콘텐츠를 듣다 끝나버리는 영상물은 어쩌면 학생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인터넷 강의 선생님보다 못할 수도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2학기 원격수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실시간 쌍방향수업(만족도 3.01)보다도 교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3.09)에 대한 만족도가 컸다.

 

 

그러나 원격수업이 이루어진 이래 업로드된 콘텐츠 중 교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는 16.1%에 불과하다. 꼭 교사가 직접 만들어야 좋은 콘텐츠냐, 에듀테크를 어설프게 아는 교사가 만든 못 미더운 자료보다 전문가가 만든 양질의 자료가 낫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안에 자존심 상한 양심이 묻는다. 원격수업 2년 차, 우리는 앞으로 시간을 얼마나 더 주면 어설프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자료를 직접 만들 수는 없더라도 이미 있는 자료에 담임의 숨결을 입혀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렇다. 해보니 쉽지 않다. 이미 만들어진 자료에 내 숨결을 입히는 것만 해도 녹음과 편집이 매우 오래 걸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집에서도 나의 티칭과 코칭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내 흔적 하나 없는 영상 목록만 보내기에는 담임으로서 너무 미안하다. 원격수업을 하는 교사들에게 질 낮은 수업으로 직무유기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교사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만나는 일, 그것이 당신의 직무가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원격에서도 선생님이라는 사람의 냄새가 나는 수업을 원한다는 말을 그들은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손으로 만든 콘텐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 학생과 학부모들의 바람은 크지 않다.

 

만약 OO스쿨이 없어졌을 때 직접 자기 손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교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집단지성?’, ‘교원학습공동체?’ 모두 좋은데, 그 ‘집단’과 ‘공동체’에 나의 지성과 나의 학습 또한 있는가. 나는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옮겨 나르는 ‘셔틀’이 아니다. 나는 교사다.

송은주 서울언주초등학교 교사/교육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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