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덴마크 교육

2021.06.04 10:30:00

“잘하는 것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할까요?” 이 오래된 질문만큼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최근 고등학교 현장(교사·학생·학부모 모두)의 뜨거운 감자는 고교학점제2일 것이다. 2015년 진로교육법이 제정되었고, 2016년부터 자유학기제 전면 도입, 진로진학상담교사 1교 1배치 등 짧은 시간 동안 진로교육과 관련된 많은 정책과 제도가 쏟아졌다. 이것에 더해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됨에 따라 자신의 진로 찾기가 강조되고 있다.

 

생각보다 복잡한 덴마크 교육
블록 장난감 레고와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덴마크는 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은 세금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행복하다는 나라.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교육’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보는 필자에게 덴마크 교육은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보였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과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는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덴마크 교육은 주목할 만하다. 본고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통해 우리의 고교학점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덴마크의 공식적 교육제도는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하다(<그림> 참조). 기본교육(Grundskole)은 우리나라의 초·중학교에 해당하며, 의무교육이고 9학년까지이다. 7세에 0학년이라 불리는 취학 전 학교과정(Bornehaveklasse)을 시작하며, 0학년과 10학년은 의무교육이 아니다. 다만 정부는 10년간 교육하는 것을 시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 10년 교육의 의무에는 공식적 교육제도 이외 비공식적 교육기관의 기간도 포함된다.

 

기본교육을 마친 청(소)년을 위한 교육(Young People)은 크게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Secondary Upper Education(중등교육, Gymnasiale uddannelser), Vocational eucation(직업교육, Erhvervtaglige uddannelser mv), Preparatory basic education(FGU), Combined Youth Education, Production schools, Vocational basic education, 특수교육으로 구분되며 대략 2~5년으로 다양하다. 

 

공식 교육과 비공식 교육의 조화
학생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다양한 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점이지만, 무엇보다 덴마크 교육을 이채롭게 하는 것은 바로 공식적 교육과 비공식적 교육의 조화에 있다. 앞의 그림에 나타난 공식적 교육제도 이외 덴마크에는 ‘자유학교(Free school)’라 불리는 비공식적 교육제도3가 있다. 학교의 형태이고, 디플로마(이수증)를 받을 수 있지만, 평가나 성적이 없고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비공식적 교육이라 칭한다.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되는데 프리스콜레(friskole, free school), 애프터스콜레(efterskole, after school),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 folk high school)가 그것이다. Free school4의 토대를 만든 것은 사상가이자 시인·언어학자였던 그룬트비(N.F.S Grundtvig, 1783~1872)와 실천적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콜드(C.M. Kold, 1816~1870)였다. 


프리스콜레는 1~9/10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애프터스콜레는 8~10학년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며, 폴케호이스콜레5는 18세 이상의 청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학생들은 의무교육 기간 중에도 공립학교와 자유학교(프리스콜레, 애프터스콜레, 청소년 대상 폴케호이스콜레)를 넘나들며 공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중학교에 해당하는 9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은 고등학교(김나지움)에 진학하기도 하지만 덴마크의 독특한 10학년을 보내기도 한다. 10학년의 경우 같은 학교에서 부족한 과목을 1년 더 듣거나, 애프터스콜레를 다니거나 10학년 스쿨을 다니는 방법이 있다. 10학년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우리나라의 자유학기제 혹은 자유학년제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띠는 애프터스콜레이다. 14~18세 청소년이 1년 동안 공부하며 인생을 설계하는 기숙형 학교6로서 외국어·음악·미술·디자인·연극·영화·스포츠·종교·국제 등 다양한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어느 분야로 진출할지 결정하지 못했거나 바로 중등과정(김나지움)이나 직업교육으로 입학하기 힘들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등 다양한 이유로 애프터스콜레를 선택하며, 40% 이상 학생들이 선택하고 있다. 전공 관련 공부나 기술을 익히고 싶은 학생은 지자체에 설치된 10학년 학교/센터를 선택하기도 한다. 주로 성인 대상인 폴케호이스콜레 중에도 16~19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들이 있다.

 

애프터스콜레와 마찬가지로 스포츠·예술 중심의 과정이 다수를 이루지만 디자인·국제학 등 개성이 뚜렷한 학교가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덴마크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기 전 1·2년의 유예기간(gap year)을 갖기도 한다. 대학 입학을 1년 유예한 학생은 2018년 85%에 달했으며, 2년 유예한 학생도 50%를 넘는다. 특히 직업교육보다 김나지움 출신의 학생들이 더 긴 유예기간을 가지는 특징을 보인다.  


대학 입학 전 1~2년 유예기간 갖는 학생들
대학에 입학하기 전 학생들은 다양한 형태의 학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배운다. 프리스콜레·애프터스콜레·10학년 학교/센터·폴케호이스콜레 등의 다양한 과정이 공교육과의 경계 없이 운영되고 있어 언제든 선택할 수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1~2년의 유예기간을 통해 충분히 자신을 돌아본 후 대학에 입학한다.

 

필자가 인터뷰 한 학생 중 한 명은 현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폴케호이스콜레에 2년째 재학 중인데,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어 14살 때 첫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후 4년 동안 꽤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하였다. 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 중 다수는 2년째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며,7 사진·공예·운동 등 다양한 예술수업을 통해 자신의 관심을 확장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오르후스 인근의 폴케호이스콜레 학생들은 늘 웃는 모습이었다. 한 학급이 15~16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수업 중 자신이 원하는 과목으로 시간표를 구성하는데 보통 오전에 1개, 오후에 1개의 수업을 듣는다. 요일별로 활동 수업이 다르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다른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전 9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10시부터 1시까지 오전수업, 1시부터 점심식사, 2시부터 4시까지 오후수업을 하고 이후는 자유시간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해변이나 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간다. 나무에 해먹을 달아 햇볕을 쬐거나 아예 매트리스를 마당에 깔고 누워 책을 보기도 한다. 기숙사 청소 및 관리는 자신들이 직접하고, 요리는 직원이 하지만 설거지와 뒷정리는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개설된 과목은 환경(녹색활동)·시민의식(공통)·영화·사진·정치학·철학·심리학·스포츠·디자인·요가·음악·예술·e스포츠·공예·드라마 등이다. 학기에 따라 개설과목이 다르다고 했다. 그중 학생들이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공예수업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중학교 학생들의 방과후수업과 매우 흡사해 보였다.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찾고, 자유롭게 스케치하고, 재료를 가공하고, 만드는 활동이었다.

 

사진수업에서는 필름 카메라를 조작하는 것부터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교사는 도움을 청하는 학생들을 도와줄 뿐 기본적인 지식 이외에는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배웠거나 잘하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한 학생이 그린 일러스트는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수준으로 보여 놀라기도 했다. 마치 중학교 방과후수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과물은 대단히 창의적이고 수준급이었다. 

 

덴마크에서 만난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게 다양한 학교와 과정을 선택하고 있었다. 또한 학교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고, 공동체정신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삶에 대한 가치와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단순히 진로를 찾는 일에 우선하는 듯 보였다. 진로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살아가야 할 내일에 대한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덴마크 교육을 보며 다시금 배웠다.  

김연 고려대학교 교수/전 충남삼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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