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지기 교장’의 슬기로운 학교생활

2021.06.04 10:30:00

서울구암중학교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과 안전에 철저한 학교, 대면수업과 온라인학습 병행 등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내실 있는 학교, 교원학습공동체와 같은 교과협의회가 활발하고 행정과 담임업무를 분리,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하는 학교. K-에듀의 모범답안이 있다면 꼭 들어맞는 학교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구암중학교. 한마디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마다 빈 교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이곳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학급수가 늘어나고 교실마다 학생들이 빽빽하다. 학생 수만 1,200여 명. 과대학교에 과밀학급이다. 교육여건이 좋다고 할 수 없는데도 학생들이 몰려온다. 지난 2019년 신입생은 그해 졸업생보다 100명이 더 많았다. 지난해에도 신입생이 40명가량 넘쳤다. 찾아오는 학생들을 막을 재간이 없는 학교로서는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학생뿐 아니다. 교사들 역시 너도나도 근무를 지원한다. 전입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선호학교로 지정됐다. 

 

코로나19 대응 철저... 학부모들 “학교를 믿는다”
서울 관악구 고갯마루에 위치한 구암중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첫 번째 키워드는 안전이다. 지난해 학생·학부모·교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학교교육활동 평가에서 각 구성원으로부터 고루 최상위 점수를 받은 항목은 ‘코로나19 대응’이었다. 철저한 방역관리와 예방수칙 적용, 그리고 열화상기와 마스크·체온계·교실소독 등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학교를 믿고 안심한 학부모들은 등교수업 확대를 요구했다. 지금 당장 전교생 등교수업을 한다고 해도 거뜬한 학교다.   

 


능동적 교육과정 운영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일찌감치 대책 마련에 착수, 혼란 없이 교육과정을 운영한 학교가 구암중이다. 교사들을 주축으로 코로나 TF를 구성하고 네이버 카페를 이용해 학년별·반별 온라인교실 플랫폼을 구축했다. 2학기에는 구글 클래스룸 및 줌을 활용한 쌍방향수업을 무리 없이 진행했다. 교육부조차 원격수업 준비가 안 돼 허둥댔던 것과 달리 쌍방향 대면 화상수업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학교구성원들의 발 빠른 대응과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조화시킨 블렌디드러닝으로 가장 앞서가는 학교가 됐다. 이뿐 아니다. 수업혁신을 통한 프로젝트 융합수업과 풍성한 삶을 위한 진로교육, 깊이 있는 생각과 글쓰기 등 학생중심교육과정 운영은 이 학교만의 자랑이다.   


방과후학교도 정규교육과정 못지않게 강점을 보인다. 중복지원이지만 1,200명 학생 중 800여 명이 방과후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아침 7시 20분부터 축구·배구·농구·배드민턴·탁구 등 스포츠 활동이 실시되고 오후에는 주요 교과 방과후학교가 진행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개월 동안 운영되는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끝날 때까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미원 연구부장은 “방과후 담당교사와 서울 시내에서 유일한 방과후학교 매니저의 숨은 노력이 일등공신”이라고 귀띔했다. 우수한 강사진과 철저한 관리를 통해 양질의 수업이 제공되다 보니 학부모들은 강좌를 늘리고 방과후학교 정원도 늘리라고 성화다. 

 

 

학생 자치활동 활발... 민주시민교육으로 승화
세 번째 키워드는 참여와 자치의 교육활동이다.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 학생회는 코로나19로 등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온·오프라인 소통창구를 마련해 즐거운 학교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다. 교내 건의함과 페이스북·에스크 등 SNS 계정과 단체 대화방·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학생들의 눈과 귀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학교 측 역시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한 학기에 한번 학생들이 원하는 메뉴로만 구성된 급식을 먹는 ‘G-스토랑’을 비롯 동아리 날 자유복 등교와 교내 슬리퍼 착용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뤄졌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자치활동은 스스로 참여하고 배우는 민주시민교육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추모행사, 독도의 날 행사, 학생의 날 행사, 블루리본 금연 캠페인 등 의미 있는 활동들을 기획하고 실천했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돕는 모금행사를 벌인 것도 학생들이다.

 


네 번째 키워드를 꼽는다면 소통과 합리적 운영이다. 구암중은 학년중심제 학교다. 또 행정업무와 담임업무를 나눈 이원분리체제로 운영되는 학교다. 서울시교육청 학교업무정상화 정책에 따라 담임을 맡은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크게 줄였다. 학년중심제를 통해 사소한 업무들은 각 학년부에서 처리한다. 생활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학년부 운영은 교사들 간 원활한 소통으로 일처리가 빠르고 효율적이다. 학교생활기록부나 출결 업무도 학년부 교사가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교무·연구·기획·생활지도 담당교사들의 업무부담 상대적으로 줄어 모두가 환영하고 있다. 담임배정 할 때도 교사들의 희망을 최대한 수용해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조인기 교감은 “2년간 담임을 맡았으면 다음 2년은 행정업무를 맡는다는 순환 근무 원칙을 정해 시행하고 있다”며 “업무의 균등 배분과 합리적 순환, 민주적 의사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불가능 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목고 진학 실적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마지막 키워드는 등교지기 교장이다. 류지헌 교장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이 있다. 매일 아침 일과처럼 하는 등교맞이가 그것이다. 혹시 열나는 학생은 없는지,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다치지는 않는지, 학생 한 명 한 명을 자식처럼, 손주처럼 반겨준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제일 먼저 출근해 언덕길을 쓴다. 염화칼슘을 뿌리면 되지만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빗자루를 든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등교지기. 등교맞이는 표영수 교감과 생활안전부장, 배움터지킴이 등 4명이 늘 같이한다. 

 

류 교장이 매일 빠짐없이 챙기는 또 다른 하나는 화장실이다. 틈나는 대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둘러보고 변기 물은 제대로 내렸는지, 화장지는 부족하지 않는지,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핀다.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일까? 구암중 화장실은 청결하기로 소문났다. 외부 손님들이 화장실을 둘러보고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화장실이 청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제일 불편하죠. 사용 못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표 교감은 “한창 민감할 나이인 사춘기 학생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교장선생님이 화장실 청결만큼은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화장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성적에 따른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과학고·영재고·외고 등 진학 실적은 철저히 비공개로 한다. 실적이 없어서가 아니다. 구암중의 학업성취도는 서울시내 톱클래스 성적이다. 그럼에도 후기고나 특성화고 진학 내용만 간단하게 공개하고 있다. 


또 하나, 흔히 교장실을 방문할 때면 행정실을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구암중은 ‘하이패스’이다.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수시로 들락거리며 마음속 이야기를 다 꺼내놓는 교장실은 일종의 ‘소통의 광장’인 셈이다. 간혹 민원이 있는 학부모들이 불쑥 들이 닥칠 땐 놀랍고 난감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게 류 교장의 지론이다.

 

한때 ‘힘든 학교’로 소문났던 구암중을 단단한 반석위에 올려놓은 그는 내년이면 정년이다. 과학교사로 출발해 37년 정든 교단을 떠난다. 이른 감이 있지만 소회가 궁금했다. “아이들이 좋고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들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긴세월, 만난(萬難)과 신산(辛酸)이 없을 리 만무했겠지만 늘 겸손하고 긍정적인 심성으로 모든 것을 품은 관록이 느껴졌다.


구암중은 올해 서울시로부터 재활용 활성화 우수기관 표창을 받았다. 환경과 생태교육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해는 학생자치활동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그 전해엔 자유학기제 우수학교로 선정돼 교육부총리 표창을 받았다. 명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게 아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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