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 표현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Rainbow)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학 시절 시를 읽으면서 이 표현이 참으로 이상하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어른인 부모가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른은 아이의 아버지’가 이치에 맞는 말이다.
아이가 장성한 후 이해한 말
말장난 같으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오래도록 이해할 수 없었다. 유난히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아서 묘한 울림을 일으켰기에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떠올려 보곤 했다. 그리고 아이를 길러 장성시키고 나니까 이 말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른인 부모를 정신적으로 성숙시키고 성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이였다. 외둥이 아이의 교육에 올인 했던, 열정만 앞서고 지혜가 부족했던 초보 부모였기에 숱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식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앓이와 좌절, 후회를 두루 겪고서야 비로소 진짜 부모가 될 수 있었다.
아이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부모로서 정신적 성장을 경험한 것이다. 부모의 욕심과 지나친 기대와 집착이 자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자녀 교육에서 인내와 기다림이 왜 필요한지를 절절히 느꼈다. 그러면서 자식에 대해 품었던 부질없는 욕심과 조바심은 내려놓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부모가 가진 장단점을 고스란히 닮아 있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면서도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를 통해 비친 부부의 모습이 바람직하고 좋아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싫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내 아이의 행동과 태도에서 이 부분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부터 그런 단점을 고쳐야겠다고 결단했다.
자식을 키우며 진짜 어른이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모의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부분들은 깎이고 깎여서 둥글게 된다. 자녀를 통해 비친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반성하고 바로잡으면서 점차 진짜 어른이 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야단과 훈계, 잔소리로 아이와 갈등했던 부모에서 포용과 이해, 지지로 아이와 화목하게 지내는 부모로 변화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오히려 자식이 부모를 가르쳤던 것이다.
자녀 또래의 아이나 그보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이유 없이 미소가 지어지고 너그러워진다. 자녀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사무치게 깨달았기에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 한창 자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행을 떠올려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