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 경제, ‘이상 행동 계속’

2021.07.05 10:30:00

 

돈을 정말 너무 풀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급했거든요. 그랬더니 세상 모든 것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서울 중계동 20평대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육박합니다. ‘카카오’도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사상 최고가입니다. 폭락 중인 비트코인의 가격은 여전히 3만 달러가 넘습니다. 시가총액이 여전히 6천억 달러가 넘습니다. 우리 돈 660조 원 정도 되니까, 비트코인의 가치가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1년 정부 재정보다 높습니다. 


급기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습니다(3월에 WTI는 20달러에도 안 팔렸다). 도대체 쓸데없는 상선을 왜 그렇게 사들였는지 한탄을 하며 해운사를 파산시킨 게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지금은 수출업체들이 배를 구하지 못해 한탄입니다. 해상물류비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해운사는 주가가 22배 올랐습니다. 


이 위기에 모든 것의 가격이 오릅니다. 급기야 미국의 인플레이션 위기가 고조됩니다. 4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4%나 급등했습니다. 허걱,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아무래도 돈을 너무 풀었나 봅니다. 


시장에는 ‘경제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칙은 거꾸로 갑니다. 물론 그 시작은 유동성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위(FED)입니다. 바이러스에 너무 놀라서 한 달에 막 1천조 원씩 찍어냈었죠. 폭락은 멈췄고 금융시장은 안정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폭등하네요.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미국 국채(TREASURY BOND)
주식투자하는 분들 관심 많으시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오르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돈을 풀면 채권 금리는 올라갑니다. 1.6%라니요. 미국에 대표 기업들, 예를 들어 S&P 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이 1년에 배당을 보통 1.4% 해줍니다. 그런데 미국 국채를 들고 있으면 1년 이자로 1.6%를 준답니다. 은행 적금 깨고 미국 국채나 살까요?


채권이라는 게 돈 빌려준 증서잖아요, 미 재무부가 돈이 필요하니까 계속 국채를 발행합니다. 정부가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겁니다. 장난 아니게 천문학적으로 발행합니다. 그런데 이미 국채를 인수하는 기관의 곳간에 ‘미국 국채(TB)’가 가득가득 찼습니다. 더 이상 미국 국채에 관심이 없습니다. 


재무부는 어떻게 하면 국채를 더 발행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이자를 더 올려줄게요! 국채 좀, 사주세요~” 이렇게 미국 국채금리가 자꾸 올라갑니다. 


이렇게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연준(FED)이 나서야 합니다. 보통은 기준 금리를 올려서 시중의 돈을 흡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파월 연준의장이 그냥 지켜보겠답니다. 파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새벽이야 언제든 오겠지만. (해가 뜬다고 파티가 다 망하는 건 아니잖아-Feat by 파월) 

 

물가상승(INFLATION)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화폐가치는 딱 돈이 시장에 과잉 공급된 만큼 하락합니다. 신이 시장경제에 준 십계명 중 첫 번째입니다. 덕분에 어떤 대통령도 돈을 맘대로 찍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연준의장은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보통 물가인상률을 2%에 맞춥니다. 적당히 좋은 것을 흔히 ‘골드락스’라고 하죠. 연 2% 정도 물가가 오르는 게 제일 좋습니다. 돈을 풀다 풀다 지친 미국 경제에 드디어 인플레 조짐이 보입니다. 그런데 또 연준(FED)은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선 연준이 3%의 인플레이션도 용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흔히 중앙은행을 인플레이션 파이터(물가인상을 잡는 소방수)라고 하죠. 파이터는 무슨, 이쯤 되면 인플레이션 방화범(ARSONIST)? 물론 경기회복을 위해 그런다고 하니 다 용서됩니다. 우린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행도 물가를 2% 정도에서 잡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물가인상률을 2%로 억지로 ‘올리기 위해’ 용을 씁니다. 뭐 하는 일이야 바뀔 수 있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협회가 지금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물가는 어쩌냐고요? 우리의 크루그먼이 “인플레 걱정하지 마라”니까 일단 걱정하지 않는 걸로 정리합니다. 물론 터키 같은 뭐 하나 제대로 수출할 게 없는 나라는 외환시장이 늘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물가가 춤을 춥니다. 터키는 올 들어 소비자물가가 17%나 급등했습니다.

 

긴축발작 
하여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금리도 낮추고 돈도 풀었다면, 그래서 자산시장이 폭등하니 이쯤에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리면 어떨까요? 이게 어렵습니다. “MR. 파월!, 무제한 돈풀기는 언제까지 하나요?” 이런 질문은 매우 위험합니다. 금융시장에 난리가 날 겁니다. 


위기에 풀린 돈에 너무 익숙해진 지구인들이 ‘긴축’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킵니다. 환자가 퇴원은커녕, 진통제를 중단한다는 말만 들어도 기절을 합니다. 이를 긴축발작(taper tantrum)이라고 애써 어렵게 표현합니다. 돈풀기 게임은 언젠가 멈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금씩 규모를 줄여가야 합니다. 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긴축발작’ 때문에 그런 말도 못 꺼냅니다. 블룸버그가 ‘긴’만 보도해도 증시가 폭락합니다. 어떡하죠? 그냥 가보죠, 뭐.  


예전에는 어땠냐고요? 2000년대 초에 IT 버블이 꺼지면서 시장은 박살이 났습니다. 2007년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자산시장이 혼쭐이 났죠. 집값이 폭락에 폭락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주가는 폭락했고, ‘최후의 대부자’라는 연준(FED)은 최후에도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홀랑 지구 경제가 망하고 나서 연준의장의 자서전만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번에도 그러겠죠. 나비넥타이를 매고 홍콩의 한 대학 강단에 서서 준엄하게 시장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그렇게 타오를지 우리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시장경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간입니다.”(실제 파월의장의 임기는 내년 초까지다.) 

 

안전벨트
좀비(ZOMBIE) 영화에선 누군가 감염이 되면 모두 죽어라 달아납니다. 세계 경제는 유동성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뜻하지 않는 바이러스로 4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자산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모두 달아나기는커녕 자산시장에 뛰어듭니다. 매우 위험한 시간입니다.


금리를 올리고, 시중 유동자금을 다시 회수할 시점이 찾아옵니다. 이미 시장은 너무 과열됐습니다. 하지만 ‘연착륙’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집값이 과연 안전하게 연착륙할까요? 자산이라는 것은 누군가 사면 나도 사고 싶고, 누군가 팔면 나도 팔고 싶은 것입니다. 순서대로 팔라고 누군가 교통정리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요(백신처럼 비트코인 파는 날을 정해주면…). 그리고 시장에선 늘 이 흐름을 거스르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 부자가 되는 행운을 가져갑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약간의 재물이 있는 사람은 머리를 써서 돈을 벌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다시 때를 기다린다. - 사마천

 

지구 경제는 한차례 또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을 부드럽게 회수(Smooth Operation)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산시장에서 조금 떨어질 시점입니다. 물론 남이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을 모른 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요. 


“안전벨트 착용 등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 이 여객기는 과거에도 여러 번 불시착한 경험이 있습니다.” 

김원장 KBS한국방송 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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