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잡초, 그 놀라운 생명력

2021.10.06 10:30:00

 

주변 식물에 관심을 갖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잡초다. 잡초(雜草)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다. 인간이 경작지에 목적을 갖고 재배하는 작물(作物)의 상대적 개념이다. 이 같은 구분은 인간 입장에서 한 것이라 자의적인 면이 있다.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어도, 작은 틈만 있어도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 씨앗을 퍼트린다. 흙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시멘트 건물 틈, 보도블록 작은 틈에서도 꿋꿋하게 자란다. 작고 가벼운 씨앗을 대량 생산해 주변에 맹렬하게 퍼뜨리는 것도 잡초의 특징 중 하나다.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잡초는 무엇일까. 계절에 따라, 경작지인지 도로변인지 등 장소에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다르다. 그중에서 도시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를 꼽자면 망초, 개망초, 바랭이, 왕바랭이, 명아주, 쇠비름, 환삼덩굴을 들 수 있다. 이 일곱 가지 잡초만 잘 기억해도 주변에서 이름을 아는 풀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대롱꽃 다발이 노란 개망초는 계란꽃으로도 불린다

이들 7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풀은 망초·개망초가 아닐까 싶다. 꽃공부하는 사람들 말 중에 ‘내가 망초, 개망초도 구분 못했을 때’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망초·개망초 구분이 꽃공부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주변에 흔한 풀이기도 하다.

 

개망초는 잡초지만 꽃의 모양을 제대로 갖춘, 그런대로 예쁜 꽃이다. 하얀 꽃 속에 은은한 향기도 신선하다. 흰 혀꽃에 가운데 대롱꽃 다발이 노란 것이 계란후라이 같아 아이들이 ‘계란꽃’ 또는 ‘계란후라이꽃’이라 부른다.

 

반면 망초는 꽃이 볼품 없이 피는듯 마는듯 지는 식물이다. 망초라는 이름은 개화기 나라가 망할 때 전국에 퍼진 풀이라 붙은 것이다. 보통 ‘개’자가 들어가면 더 볼품 없다는 뜻인데, 개망초꽃은 망초꽃보다 더 예쁘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망초와 개망초는 가을에 싹이 터, 잎이 나와 땅 위를 덮은 상태로 겨울을 난 다음 봄에 줄기가 나면서 크는 두해살이풀이다. 초봄 아직 줄기가 자라기 전 망초는 길쭉한 잎에 가운데 검은색 줄이 선명하고, 개망초는 넓은 잎이 둥글둥글 부드럽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사극에 망초·개망초가 나오면 어떨까. 조선시대, 고려시대 나아가 삼국시대가 배경인 영화나 사극에 망초·개망초가 핀 벌판이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개화기 이전이 시대적 배경인 사극에서 망초, 개망초가 나오면 전형적인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바랭이는 밭이나 과수원, 길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잡초다. 지면을 기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빠르게 퍼지는 식물이다. 바랭이는 꽃대가 실처럼 가늘고, 꽃대에 작은 이삭이 띄엄띄엄 달린다. 아이들이 이 꽃대로 우산을 만들며 놀기도 하기 때문에 ‘우산풀’로도 부른다. 일본 잡초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책 ‘풀들의 전략’에서 “바랭이의 부드러운 기품은 여성답고, 또한 세력에서도 여왕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며 바랭이를 ‘잡초의 여왕’이라고 했다.

 

바랭이는 밭에서 뽑아도 뽑아도 계속 생기는 잡초다. 베거나 뽑혀도 한 마디만 남아 있으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고(故) 박완서는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마당 잡초를 얘기하며 “내 끝없는 노동에 맥이 빠지면서 ‘내가 졌다’ 백기를 들고 마당에 벌렁 드러누워 버릴 적도 있다”고 했다.

 

 

왕바랭이는 여러 줄기가 뭉쳐서 나 튼튼하고 다부지게 생겼다. 땅속으로 뻗는 뿌리도 깊어 여간해선 잘 뽑히지도 않는다. 꽃대가 다소 두껍고, 꽃이삭도 두 줄로 촘촘하게 달리기 때문에 바랭이와 구분할 수 있다. 책 ‘풀들의 전략’에서는 왕바랭이의 굵은 이삭을 ‘호걸의 짙은 눈썹’ 같다고 했다.

 

명아주도 흔하디 흔한 잡초의 하나다. 줄기 가운데 달리는 어린잎에 붉은빛이나 흰빛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높이 2m까지 자란다. 다 자란 명아주를 말려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하는데, 가볍고 단단해 지팡이로 제격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70세 또는 80세를 맞은 노인에게 청려장을 내리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장수 시대라 100세를 맞은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고 있다.

 

 

봄에 어린 명아주를 보면 저렇게 작은 것이 어떻게 지팡이를 만들 수 있게 자라는지 잘 믿을 수 없다. 초여름에도 마찬가지다. 명아주는 늦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맹렬하게 자란다. 마치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막판에 경이적인 스퍼트를 하는 것 같다. 봄과 여름에 넓은 잎으로 광합성을 충분히 해놓고 뿌리로 부지런히 양분을 흡수했기에 가능할 것이다.

 

가을날 문득 보면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고 줄기도 제법 굵어진 명아주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지팡이를 만들 만하겠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늦가을 마른 명아주 대는 재질이 단단한데 비해 속이 비어서 아주 가볍다. 근력이 약한 노인들에겐 안성맞춤일 것이다. 청려장을 생산하는 전북 완주군 홈페이지를 보면 ‘명아주를 이식한 후 바로 세우기, 삶기, 옹이 제거, 다듬질 등 50여 회의 공정을 거쳐 청려장을 만든다’고 했다.

 

쇠비름은 가지를 많이 치면서 사방으로 퍼져 땅을 방석 모양으로 덮는다. 채송화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같은 쇠비름과 식물이다. 뽑았더라도 그대로 두면 다시 살아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잡초를 가장 실감 나게 묘사한 소설은 천명관의 장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다. ‘쇠비름보다 더 악랄한 새끼!’, ‘뽑아내도 뽑아내도 질기게 다시 뿌리를 내리는 쇠비름처럼…’ 같은 대목이 있다.

 

 

 

환삼덩굴은 황폐한 곳에서 흔히 자라는 외래종 덩굴식물이다. 왕성한 생장력으로 토종 식물을 감거나 덮으면서 자라 큰 피해를 주는 식물이다. 환경부는 2019년 환삼덩굴을 생태계 교란식물 16종 중 하나로 추가 지정했다. 잎 양쪽 면에 거친 털이 있어 옷에 잘 붙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슴에 훈장처럼 붙이며 놀아 ‘훈장풀’이라고도 부른다. 맥주의 향을 내는 홉과 같은 속이라 비슷하게 생겼다.

 

요즘 잡초의 다양한 용도에 대한 탐색도 한창이다. 냉이·민들레처럼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 식물도 있고 개똥쑥은 항암작용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 보기도 힘들어졌다. 잡초의 놀라운 생명력을 작물에 결합시키면 병충해에 끄떡없는 품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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