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편견과 차별 극복한 한국인 근성에 일본 열도 깜짝”

2021.10.06 10:30:00

고시엔 대회 4강 오른 일본 교토국제고 박경수 교장

 

‘0대2’. 패색이 짙었다. 상대는 고시엔대회 10회 진출의 최강팀. 돌풍은 여기서 멈추는 듯했다. 남은 건 두 번의 공격. 8회말 어렵사리 만들어진 1사 만루의 공격에서 밀어내기로 1점을 만든다. 이어진 내야 땅볼로 다시 1점. 2대2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9회말 1사2루의 찬스에서 안타. 극적인 역전승이다. 이로써 최약체로 꼽히던 교토국제고는 제103회 일본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에서 4강에 오른다. 지난 8월 26일 전교생 136명의 초미니 학교가 일본 전역 3603개 고교 야구팀 중 가장 강한 네 팀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본선 첫 출전에서다. 

 

NHK에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꿈의 무대인 한신고시엔(阪神甲子園) 구장에서 민족학교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지던 순간, 박경수 교장은 벅찬 감동을 누를 길 없었다. 70~80대 재일교포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한국어 교가가 NHK를 통해 방송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2017년 처음 이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해 갖은 시기와 질투,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4강에 오르기까지 신산(辛酸)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당시만 해도 교토국제고는 지역예선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약체였다. 학교 사정도 어려워 전교생이 70명에 불과했다. 교사들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은 열악했다. 박 교장은 우선 야구부부터 살리기로 결심했다.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부모들을 일일이 찾아 자녀를 믿고 맡겨주면 꼭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겠다고 호소했다. 한국계학교라는 것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우수한 지도자 밑에서 배울 수 있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한몫했다. 야구부 감독은 은행원 출신 교사가 맡았다. 오전엔 수업하고 오후에 학생들과 훈련했다. 박 교장은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운동만 잘하는 선수는 필요없다. 공부도 운동도 잘해야 한다. 학교는 예절 바르고 실력 있는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강압적 주입식 훈련방식도 바꿨다. 학생들 스스로 규율을 정하고 선후배 간 서로 돕고 배우는 자율야구를 실천했다. 그는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기는 야구를 하자”고 강조했다. 

 

사실 박 교장은 고시엔 4강 진출보다 더 기뻤던 순간이 있다. 교토부 고교 야구대회에서 우승해 고시엔 진출권을 따낸 순간이다.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민족학교에 일본인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어느 팀하고 경기를 하든 응원은 일방적이었다. 교토시민 거의 전부가 상대편 학교를 응원했다. 관중석에서 교토국제고를 응원하는 사람은 동문 몇몇과 재일교포가 전부였다. 그런데 성적은 반대로 교토국제고가 승승장구. 그것도 1점 차 승부 아니면 9회말 끝내기 홈런 등 연일 드라마를 연출했다. 일본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성적에 비례했다. 어려운 재정여건도 힘들게 했다. 고시엔 대회 한 번 출전에 드는 경비는 우리 돈으로 1억 4~5천만원 정도. 숙박비 등 경비 마련은 정말 힘든 고비였다. 

 

그리고 고시엔 대회 4강. 이제 교토시민들의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교토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특파원들이 취재차 교토시에 들렀을 때 고시엔 대회 말만 하면 택시기사들이 무조건 교토국제고로 데려다줬다. 인심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박 교장은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진학도 늘어난다. 야구도 잘하지만 K-팝 영향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일본인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 학교 측은 내년에 교실을 증축, 신입생을 더 받기로 했다. 교토 교육청으로부터 배정받은 인원은 40명이지만 페널티를 각오하고 더 뽑을 계획이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대폭 인정해 준다. 물론 공익성을 따지기는 하지만 자율성이 우선이다. 학생등록금 책정, 교직원 인건비,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해 운영한다.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게 가능한 것도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한 때문이다. 교가 때문에 교육청이나 지자체로부터 간섭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외야 구장도 없는 열악한 시설서 이룬 기적

교토국제고의 선전은 한일 양국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이 놀란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열광적인 응원을 받았다. 일본 언론은 외야 구장도 갖추지 못한 작고 열악한 학교가 어떻게 최고의 무대에서 이토록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교토국제고는 내야 연습만 가능한 비좁은 운동장에서 훈련했다. 좌익수, 우익수, 중견수와 같은 외야 수비 훈련은 그 자체가 불가능했다. 국내 초등학교만도 못한 시설이었다. “우리 학교가 일본인 학교였다면 지금 언론에서 난리가 났을 겁니다. 한국인 학교다 보니 이 정도로 조용한 거죠.” 박 교장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인기는 대단했다. 유튜브와 인터넷 중계를 통해 경기를 본 사람이 300만 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사람들은 어려운 여건을 불평하거나 핑계 대지 않고 땀과 열정으로 극복해 낸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얼어붙은 한·일 양국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역할을 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핑퐁으로 미·중관계가 풀리듯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게 박 교장의 바람이다. 

 

이런 연유로 교토국제고가 고시엔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한국 외교관들이었다. 오태규 총영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보다 더 좋은 외교관이 어디 있느냐”는 응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교토는 조선통신사들이 왕래했던 도시입니다. 야구가 21세기 판 조선통신사가 돼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 교장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다시 각오를 새롭게 했다. 지금 가장 이루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일본 고교야구대회 우승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한국 사람은 어딜 가든 머리 좋고 뭐든 잘한다는 평가를 받죠. 야구도 마찬가지예요.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꼭 일본에서 정상에 오를 겁니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동포 단체가 교토조선중학교를 설립해 개교했다. 1990년대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던 교토국제고는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의 인가를 받아 한·일 양국으로부터 중고등학교로 인정을 받았다. 재일교포 자녀와 일본 학생 간 비율은 4대6으로 일본 학생이 조금 더 많다. 교사는 한국계 재일교포와 일본인의 비율이 5대5 정도 된다. 이들 중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파견한 교사 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어와 사회 담당교사는 교육부가 파견한다. 한국어, 역사, 지리수업만큼은 우리나라 교사가 일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에서 한국어 시간이 제일 많다. 박 교장은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근성을 갖게 하는 것도 교육 목표다”고 말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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