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경력 38년째다. 어느 순간부터 이 땅에서 교육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학생을 가르친다는 긍지와 자부심에서 학생들에 대한 동정과 측은지심,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부끄러움으로 가슴이 채워져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삶의 터전인 학교 현장에서의 현실을 두고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땅에서 경쟁과 입시에 몰입돼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향한 어른으로서의 미안함과 그들에게 인간 본연의 권리인 행복을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자로서의 책임감, 사명감에 따른 무력감과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에는 과연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목표에 부합한 교육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고뇌의 나날이 연속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끝난 2022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문⋅이과 통합수능에 ‘불수능’, ‘용암수능’을 치른 아이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일반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가채점을 기반으로 언론에서 제공하는 각종 입시 관련 정보에 한숨만 몰아쉰다. 그들 또한 아이들 못지않게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다. 거의 2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학생과 교사의 삶을 옭죄는 코로나19로 인한 학력격차, 학력저하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수능이란 대입제도는 과연 얼마나 현실을 반영해 공정하게 실현되고 있으며 또한 공교육은 얼마나 본연의 역할을 하는 지 생각해보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갈수록 일반고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최우수 학력자도 수능의 영역별 2등급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에 좌절감마저 느끼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감독교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탓에 ‘멘붕’상태로 시험을 치러 인생을 망쳤다는 한 학생의 하소연이 SNS 망을 통해 수능 이후의 이 땅을 또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한심한 감독교사는 이 땅의 다른 모든 교사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영국의 BBC 방송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의 하나’로 한국의 수능을 보도하고 ‘10 to 10’(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외계인 보듯이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내 언론조차 ‘세종대왕도 풀지 못할 수능’이라고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교에는 지식 교육만 있을 뿐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 교육이 없다.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방기하는 것에 이 땅의 지식인들은 한탄하고 분노한다. 성숙한 인격체로의 성장을 멈춰 세운 지식 교육과 이를 부추기는 경쟁교육은 이 땅의 학생들을 최악의 괴물로 만들고 있다. 주입식 입시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이젠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고차원의 사고능력을 측정한다는 수능은 이 땅에서 지옥의 사자처럼 그 위세를 떨친다.
수능 한 번으로 개인의 인생이 결정되는 한국의 ‘원샷(one-shot) 사회’는 언제쯤 개인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폭넓게 열린 선진 독일과 같은 ‘텐샷(ten-shot) 사회’로 전환될 것인가.
우리는 한국의 10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잘못된 교육을 언제쯤 멈출 것인가. 반교육적, 반사회적 교육 풍토를 언제쯤 개혁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을 이 끔찍한 입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언제쯤 가능한 것인가. 노예 감독관 노릇에 머무는 교사의 역할은 언제쯤 바뀔 것인가.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할 권리,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 자신의 고유한 삶을 향유할 권리, 인간적인 품성을 키우고 시민적인 자질을 높일 권리, 개성과 천재성을 발견할 권리를 언제쯤 제공할 것인가.
오늘도 이 땅의 부끄러운 어른, 무기력한 교육자로 살아가는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가 지적한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사회, 독일의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지적한 ‘야만의 다른 이름인 경쟁’만을 부추기는 한국사회를 언제쯤 경쟁 교육에서 연대 교육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제는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의 삶을 볼모화하는 근원인 반교육적이고 반사회적 대학입시를 개혁하도록 이 땅의 어른이자 교육자로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더욱 높여나가고 행동으로 연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