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1.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했어요. 우리 학교 아이와 다른 학교 아이. 정확하게 말하면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예요. 일요일에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싸운 사안이 접수되었고, 절차대로 처리해야 해요. 그런데, 절차가 없어요. 왜냐하면 학교폭력 사안의 절차는 우리 학교와 다른 학교 학생을 구분할 뿐, 학교 밖 학생에 대한 매뉴얼은 없거든요. 우리 학교 아이의 학생, 학부모 확인서를 받고 정리를 하는데, 홈스쿨링 하는 학부모는 교사 욕을 해요. “왜 일을 키우느냐? 당신 뭐냐? 가만히 있지 않겠다.” 처리는 해야겠고, 민원은 들어오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황 2.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해요. 이번에는 6개의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얽힌 상황. 경찰에 고소까지 들어갔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매뉴얼에 절차가 명시되어 있어요. 단지 복잡하다는 것이 함정일 뿐이죠. 학교마다 사안 조사를 해서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실시해요. 그 과정에서 관련 학생이 지목한 가해 학생이 특정되지 않아서 여러 학교에 수소문하면서 학생을 찾기도 했어요. 경찰이었다면 신원조회를 해서 한 번에 정리했을 텐데, 교사라서 이 학교 저 학교 전화를 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신원을 파악했지요. 겨우 학생들을 특정해서 사안을 처리해요.
피해 학교에서는 학교마다 전담 기구 결과 공문을 보내고 다른 학교에서는 각각 전담 기구를 실시해요.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신청은 모든 학교가 똑같이 보내야 해요. 매뉴얼대로 다 같이 기간을 맞추어서 3일 이내에 공문을 보내요.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는데, 쉽지는 않아요. 그리고 업무를 하면서도 왜 모든 학교에서 전담 기구를 개최하고, 똑같은 공문을 몇 번이나 중복해서 보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굳이 3일 이내에 맞춰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져요. 그래도 뭐, 매뉴얼이니까 그대로 할 뿐이지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 1조 1항.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 문장인데 참 길죠. 한 줄의 법조문에 의하면 학생과 얽힌 모든 일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사안을 처리할 의무를 지고 있어요. 문제는 학교 내에서는 어떻게든 처리를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아요. 학교는 학생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학교 외에서 일어난 일 교사가 어떻게 다 처리하고 책임질까요?
첫 번째 상황처럼 휴일에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싸운 상황. 일차적인 학생 보호의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어요.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그런 싸움까지 다 조사를 하고 사안으로 접수해서 교육청에 보고하고,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열어서 학교장 자체 해결을 할지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를 요청할지 판단해요. 그 과정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2~3주의 시간 동안 학부모님들의 상한 감정을 받아내면서 야근을 하면서 공문을 처리하게 되지요.
두 번째 상황처럼 여러 학교가 얽혀 있고,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는 교사의 범위를 벗어나요. 신원 특정도 어렵고 자료 수집도 제한적이지요. 경찰이라면 CCTV도 확인하고 수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일 뿐 수사권이 없으니까요. 경찰이 아닌데도 경찰처럼 확인서를 작성하고, 뭔가 해내려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에요. 거기에다 여러 학교에서 중복해서 공문을 보내는 통에 다른 학교 담당 선생님들과 연락하느라 전화기만 바빠지지요. 한 학교에서 사안 조사서를 수집해서 보고해도 충분히 교육지원청에 보고가 가능한 일일 텐데요.
방학 중에도 공문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000 의원 발의, 000 법 개정 관련 의견 수렴’ 이런 제목이 많아요. 법을 많이 바꿔요. 이왕 바꾸는 법.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2조 1항의 정의도 바꾸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내외에서 ‘외’자 한 글자만 빼면 어떨까요? 글자 하나만 삭제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방과 후에도, 휴일에도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 경찰도 못 하는 일을 교사가 하려니 머리가 지끈지끈하거든요. 방과 후에, 휴일에는 일차적인 관리의 의무는 부모에게 사안의 처리는 경찰에서, 생기부는 학교에서 정리하면 어떨까요?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만 교사들이 처리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