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코끼리(white elephant)’는 고대 태국에서 유래했다. 태국 왕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 신하에게 이 코끼리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왕이 하사한 선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을뿐더러 병으로 죽기라도 하면 왕에 대한 도전이나 반역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쓸모없이 부담만 되는 것
게다가 흰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한 존재로 추앙돼 일도 시키지 못하고,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코끼리를 키우다 보면 막대한 먹이로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결국 파멸을 맞게 된다.
이 전설에서 나온 게 ‘흰 코끼리의 역설’이다. 값비싸지만 쓸모없고, 가치에 비해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드는 것을 말한다. 올림픽, 월드컵 등 큰 이벤트를 위해 만들었다가 대회가 끝난 뒤 쓸모없이 내팽개친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저런 흰 코끼리가 많다. 지역 홍보관, 향토 박물관, 어정쩡한 테마파크, 녹슨 경전철, 운행도 못하고 부셔질 운명의 은하레일, 이용객이 거의 없어 파리만 날리는 지역 공항 등이다. 적게는 수십 억, 많게는 수천 억 원의 세금이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에는 어떤 ‘흰 코끼리’가 있을까? 먼저, 오랜 교육을 받고도 자립하지 못하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초등 1학년부터 대학 4학년까지 16년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졸업하지만, 취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취업해도 부적응·불만족으로 이직률이 높아 부모의 도움을 받고 생활하는 모습이 흔하다. 대학 중도탈락로 마찬가지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20학년도 기준 4년제 대학 중도탈락 학생 수는 총 9만3124명으로, 재적생 대비 4.6%다. 2008년 이후 4%대를 유지하다 최근 들어 상승세다. 최고 명문 대학에서조차 중도탈락자가 상당수 나온다.
마지막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실업자가 되는 현상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학업 전념 박사학위 취득자 중 민간기업이나 시간강사, 박사 후 연구원 등으로 취업한 비율은 26.7%에 불과하다. 박사학위 취득자 4명 중 3명은 졸업하자마자 실업자가 된 것이다. 실태조사를 시작한 2012년 이래 최저 기록이라고 한다.
원인은 삶과 단절된 진로교육
'흰 코끼리'들이 양산된 이유는 삶과 진로교육이 연결되지 않은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초등학교 시기부터 체계적인 체험중심의 진로교육을 펼쳐야 한다. 자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과 직업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 교육에서 살이 너무 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흰 코끼리’가 보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