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 수업 시간, 민우(가명)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혼자 자습을 하고 있다는 것. 영어 단어장을 보면서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민우에게 물어보니 학원에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수업 시간에는 함께 참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만하고 수업에 참여하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민우가 허리를 똑바로 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업에 집중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좋으련만, 전혀 반대의 상황이 펼쳐져요. 단어장은 보고 있지 않은데 찡그린 표정, 삐딱한 자세로 수업에 참여해요.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하는 아이
다음 시간도, 그다음 시간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단어장을 펴 놓은 민우에게 수업에 참여하라고 주의를 주고, 민우는 시큰둥하게 쳐다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어요. 회유도 해보고 무언가 시도를 해보았지만 큰 효과가 없었어요. 일주일에 딱 세 번 수업하는데 크게 라포를 형성하기도 어려운 탓에 ‘일 년은 그냥 이렇게 못 본 척해야 하나?’ 체념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을 잘못 알고 쉬는 시간에 민우네 반에 들어가 버렸어요. 10분의 쉬는 시간을 아주 알차게 놀고 있는 아이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애매한 시간이어서 교실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교실에 있던 칼림바도 만져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다 단어장을 보던 민우가 눈에 들어와요. 수업 시간에는 그렇게 열심히 단어를 외우더니, 쉬는 시간에는 포켓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민우 옆에 다가가 살짝 한마디를 던졌어요.
“우아! 이거 뮤츠 & 뮤 GX 카드네? 대단한데?”
“선생님도 포켓몬 카드를 알아요?”
“당연하지. 우리 집에도 포켓몬 카드가 엄청 많아.”
포켓몬 카드 이야기가 통했는지 민우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여세를 몰아 랜덤인 척하면서 발표도 시키고, ‘잘했다’라고 칭찬도 해주고 나니 조금씩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더군요. 요즘에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민우, 다행이죠. 일 년을 참아 넘기는 것보다는 서로 즐겁게 수업하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요.
민우의 수업 태도가 해결되어서 ‘참 다행이다’라고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교실에는 여전히 다른 민우가 많다는 것이 함정이에요. 수업하려고 말할 때마다 한두 마디를 계속 끼어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모둠 활동을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임승차를 하는 아이. 마치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개인 활동을 시키면 대충하고 끝내놓는 아이. 우리가 수업 중에 더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아이들을 대하는 일
어쩌면 교직 생활은 두더지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아이가 해결되면 저 아이가 보이고, 저 아이가 해결되면 다른 아이가 보이고 말이지요. 그렇게 한 아이, 한 아이를 신경 쓰고 살피다 보면 1년이 금방 지나가요. 학교 업무만 힘들다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은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업무야 노력과 시간만 투자하면 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감정까지 투자(?)해야 하니까요. 두더지 게임처럼 차례차례 다가오는 여러 상황을 무탈하게 넘기기 위해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해요. 그래도 고민하고 부딪히다 보면 나중에는 뿌듯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