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속의 또 다른 대륙

2022.06.07 10:30:00

남아공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멀다. 가기가 만만찮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4시간,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다시 13시간을 가야 한다. 케이프타운까지는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선을 타고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환승 시간까지 감안하면 그럭저럭 하루가 걸린다. 그래서 케이프타운은 아시아와 유럽을 웬만큼 다녀본 이들이 찾는다.

 

 

자연이 지구에 준 선물

케이프타운 여행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 많은 여행이 그렇듯 케이프타운 여행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케이프타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테이블마운틴인데, 악천후가 잦은 탓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날이 많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케이블카 운행이 바로 중단된다. 이곳을 찾은 60%의 여행자들이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발걸음을 돌린다고 한다. 1주일가량의 일정 동안 테이블마운틴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여행객들도 있다. 1년 중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날은 절반 정도다. 설사 정상에 오르더라도 갑자기 두꺼운 안개가 밀려와 안개만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구름을 두고 현지인들은 ‘예수가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펼쳤다’고 표현한다. 정상 주변에 12개 정도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12명 제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구름이 깔린 것은 이들이 만찬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테이블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할 숙제다. 현지 가이드 윌리엄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머나먼 남아공까지 와서 테이블마운틴을 못 보고 가는 여행객들은 아무리 좋은 다른 일정으로 대체해도(물론 그보다 더 좋은 일정이 있겠냐만) 컴플레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이드 입장에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 <뉴욕타임스> 등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 등 온갖 찬사를 바친 도시,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이 ‘2017년 도시별 최고의 여행지 베스트 10’에서 2위로 선정한 도시 케이프타운.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케이프타운의 첫인상은 마냥 우울하기만 했다. 이런 불안과 실망의 기색을 눈치챈 윌리엄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해가 뜨면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 윌리엄은 이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가 타고 온 밴이 폭우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음날 정말로 마법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폭우가 그쳤고 쨍한 해가 떴다. 케이프타운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바다는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야자수는 기분 좋게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해변은 조깅하는 사람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탄 청년들로 넘쳐났다. 바다에는 서퍼들이 바글댔다.

 

 

“자, 얼른 숙제부터 해치우자고요.” 윌리엄이 이끈 첫 목적지는 당연 테이블마운틴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테이블마운틴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간다. 360도로 회전하는 케이블카를 타면 5분이면 갈 수 있다.

 

테이블마운틴의 높이는 해발 1,086m. 이름 그대로 커다란 책상처럼 생겼다. 정상 부분이 대패로 밀어낸 듯 평평하다. 길이가 동서로 3.2km에 달한다. 축구장의 15배 크기. 8억 5,000만 년 전 바닷물에 잠겨 있던 모래땅이 용암의 분출력과 대륙판 이동에 따른 압력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정을 거치면서 정상부가 평지를 이루게 됐다.

 

정상 곳곳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전망대에 서면 ‘아’ 하는 감탄사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키 작은 관목 사이로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이 뻗어나간다. 발아래로는 케이프타운 도심이 양탄자처럼 펼쳐진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대서양은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로 찬란하다. 도심 왼편으로는 사자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라이언스 헤드’, 매일 정오를 알리는 대포로 유명한 ‘시그널 힐’, 악마의 봉우리라는 뜻의 ‘데블스 피크’ 등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산 위에 쓰인 ‘A gift to the Earth(지구에 준 선물)’라는 문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륙의 끝 희망봉

테이블마운틴을 내려와 가는 곳이 ‘희망봉’이다. 테이블마운틴이 케이프타운을 대표하는 명소라면 아프리카 최남단에 자리한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희망봉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바닷가의 굴곡을 따라 심전도계 눈금처럼 요동치는 ‘채프먼스 피크’는 400여 번의 굴곡으로 유명한 도로다. 오른쪽 차창으로는 영화에서 본 듯한 화려한 부촌이 잇따라 펼쳐진다. 지중해풍의 호화별장들이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희망봉 가기 전 볼더스 비치라는 곳에 잠깐 들른다. 약 3,000마리의 펭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펭귄은 추운 남극에만 산다고 하는 편견이 이곳에서는 여지없이 깨진다. 이 펭귄들은 자카스 펭귄으로 10~20℃의 따뜻한 바다에서 살며 30~40cm까지 자란다. 바다 쪽으로 난 나무 데크를 따라가며 귀여운 모습의 펭귄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볼더스 비치에서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희망봉 자연보호구역에 들어선다. 원숭이와 타조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멀뚱멀뚱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는 야생 타조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38년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케이프반도 국립공원으로 정해지면서 보호받고 있다.

 

보호구역을 지나면 드디어 희망봉이다.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있는 이곳은 15세기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1488년 처음 이곳에 도착한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험한 날씨와 폭풍 때문에 ‘폭풍의 곶’이라 이름 붙였다.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희망의 곶’, 희망봉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다.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고 믿은 유럽 선원들이 항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 봉우리를 보며 고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학상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극점은 아굴라스곶이다. 일부러 그곳까지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희망곶에서도 무려 2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주변에 딱히 달리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나고 맛있는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에는 테이블마운틴과 희망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워터프런트에서 즐기는 신나는 저녁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수십 개의 식당·상점·극장·수족관·박물관 등이 몰려 있다. 정식 명칭은 빅토리아&알프레드 워터프런트(the Victoria & Alfred Waterfront). 워터프런트는 유럽인들이 케이프타운에 가장 먼저 세운 항구로 쇼핑지역으로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바로 옆에 있는 항구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 안팎. 1시간 30분 정도 노을 지는 바닷가를 달리며 달콤한 와인을 맛본다. 연인과 함께라면 꼭 해보기를 권한다.

 

와인 애호가라면 와이너리 탐방도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남아공은 4,700개의 개인 소유 와인 농장이 존재하는 와인 대국 중 하나다. 와인 역사도 350년이나 됐다. 남아공에서 꼭 맛보아야 할 와인은 피노타지(Pinotage)다. 전 세계에서 오직 남아프리카에서만 존재하는 품종으로 프랑스의 피노누아(Pinot Noir)와 에르미타쥬로 알려진 생소(Cinsault) 품종을 교접해 만들었다. 쉬라즈와 멜롯의 중간 정도 맛을 내며 진한 과일맛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케이프타운 여행 마지막날 스텔렌보시 지역에 자리한 와이너리 ‘조단’(Jordan)에서 오래오래 와인을 즐겼다.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멋진 테이스팅룸, 맛있는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 아름다운 자연경관까지 갖춘 완벽한 와이너리다. 남아공 와인 베스트 10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와이너리다. 조단의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다보니 가이드가 “케이프타운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행정보

한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을 거쳐 요하네스버그로 가야한다. 아시아나항공과 남아공항공은 공동운항 협정을 맺었다. 인천~홍콩 3시간 4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2시간 10분 소요.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남아공 화폐인 ‘랜드’ 환전은 호텔 등에서 하면 좋지만 미화 달러나 신용카드를 쓰는 게 편하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신용카드를 편하게 쓸 수 있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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