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 알 수 없어요

2022.06.29 13:33:49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강마을의 아침은 트랙터 엔진음이 요란합니다. 마늘과 양파 수확이 끝난 논을 다시 농기계가 정돈하고 있습니다. 어린 모가 줄지어 선 무논 위로 뻐꾸기 울음이 발을 담그고, 그 옆으로 개구리 소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첫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화단에는 주황색 원추리꽃 몇 송이가 피어납니다.

 

원추리는 제가 좋아하는 여름꽃 중의 하나입니다. 옛 여인들은 규방 가까이 원추리를 심었다고 합니다. 원추리는 여인의 꽃으로 봄철 연둣빛 새싹은 나물로 무쳐 먹거나 된장국에 넣으면 맛있는 반찬이 됩니다. 그리고 여름철 주황과 노랑의 꽃이 피면 그 꽃을 따서 밥과 같이 지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밥 색깔이 노랗게 변해서 참 곱다고 합니다.

 

원추리는 우리말로 근심을 풀어주는 꽃이란 뜻이 있어 여인들의 사랑을 받은 꽃입니다. 원추리는 한자로는 훤초(萱草)입니다. 원추리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시경, 백혜(伯兮)> 편에 나옵니다. “어디서 훤초를 얻어다 뒤꼍에 심을까[焉得諼草, 言樹之背]”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이는 훤초가 원추리입니다. ‘훤’은 잊는다는 뜻입니다. 원추리의 다른 이름은 망우초(忘憂草)입니다. 근심을 잊게 해 준대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옛 여인들은 여름철 뒷곁에 핀 아름다운 원추리 한 자락에 근심을 잊었던 모양입니다.

 

흐린 하늘 사이로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은 더 곱고 푸릅니다. 저는 저 푸른 하늘빛이 참 좋습니다. 제가 이 하늘빛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용운 시인의 시 <알 수 없어요> 때문입니다. 한용운 시인의 시는 모두 좋지만, 여름이면 꼭 이 시를 꺼내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습니다. 그러면 시의 언어가 시원한 푸른빛이 되어 제게 힘을 줍니다.

 

여름이 시작된 강마을은 오랜 가뭄으로 끝에 단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를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에 하늘은 곧 비를 주시고 그러면 목마른 식물의 갈증을 해소해 주리라 믿습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리며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끝이 없는 어둠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가슴에 품고 꼿꼿하게 나아가셨던 한용운의 위대한 삶을 기억하면서 다시 시를 읽습니다.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중략>...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님의 침묵』, 한용운 지음, 범우사, 2015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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