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신을 닮은 사람들

2023.05.08 10:30:00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톤레삽 호수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붉은 해가 앙코르와트의 첨탑 위로 떠오를 무렵, 앙크로와트를 찾은 여행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탄성을 쏟아냈다.

 

 

앙코르 예술의 극치와 만나다 
우리가 앙코르와트라고 부르는 유적은 거대한 앙코르 유적군을 대표하는 하나의 사원일 뿐이다. 흔히 ‘앙코르와트’로 통칭되는 이곳의 원래 명칭은 ‘앙코르’다. 8~13세기에 걸쳐 시엠립을 중심으로 반경 64km에 수도를 세웠던 앙코르제국은 당시 인구 1백만 명이 살았을 정도로 강대한 왕조였다. 앙코르 유적군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앙코르톰·타프롬·톰마논·스랑스랑 등 앙코르왕조의 사원·왕궁·무덤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오랫동안 밀림에 뒤덮여 있던 이 유적군은 1860년 프랑스인 식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으며, 중국의 만리장성과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1113~1150년에 건설됐다. 연인원 3만 명이 동원됐다. 폭 200m 해자와 5.5km 성벽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터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면 본전 높이가 65m나 되는 중앙사당을 중심으로 5개의 원뿔 탑이 서 있다.


앙코르와트는 섬세한 앙코르 예술의 극치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앙코르와트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길을 붙잡는 것은 회랑 벽면을 가득 채운 끝없이 이어지는 정교한 부조들이다.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비롯해 비슈누 신과 아수라의 싸움,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 등 힌두교 신화를 전한다. 또한 외벽에 정교하게 조각된 천상의 무희 ‘압사라’의 다양한 모습은 시간이 멈춰진 듯한 사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앙코르와트에 온 이들은 누구나 3층으로 간다. 이곳은 승려계급 외에는 왕만이 오를 수 있는 신성한 장소로 사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듯 오르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겨우 발 하나를 디딜 수 있는 계단을 거의 기다시피 올라가야 성소에 다다를 수 있다.

 

앙코르 유적군에는 앙코르와트 외에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앙코르와트 북쪽에 자리한 앙코르톰 역시 앙코르와트 유적군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다. 앙코르톰은 12세기 자야바르만 7세가 축조한 거대한 도성이다. 폭 100m 해자와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쳐진 앙코르톰은 성벽 한 면이 높이 8m, 길이가 무려 3km에 달한다. 도성은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볼거리도 많다. 바이욘사원을 비롯해 바푸욘사원, 왕궁터, 코끼리 테라스, 라이 왕의 테라스 등이 이어진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왕위에 오른 첫 불교 신자인데, 불법에 의한 국가 통치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앙코르와트 사원과 전혀 다른 색채를 띤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186년 세운 타프롬사원은 앙코르 중앙에 있다. 영화 <툼 레이더>에 등장했던 그곳이다. 타프롬에 들어선 순간 시간은 앙코르 왕조가 사라진 그 순간으로 되돌려진 것 같다. 스펑나무의 뿌리에 휘감긴 사원은 발견됐을 당시의 무너진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폐허의 한가운데 발을 디딘 여행자는 알 수 없는 신비로움과 기이함 그리고 낯섦에 소름이 돋곤 한다. 안젤리나 졸리가 한 소녀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다른 세계로 들어갔듯이, 나무뿌리 속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프놈 바켕은 최고의 해넘이 포인트로 꼽히는 곳이다. 67m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해질녘이면 앙코르 유적을 찾은 거의 모든 관광객이 이곳으로 몰려든다고 보면 된다. 언덕을 오르는 흙길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가파르다.  


앙코르 유적지 북쪽에 위치한 반테이 스레이 사원은 앙코르와트 유적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힌다. 화려하고 정교한 부조로 정평이 나 있다. 반테이 스레이라는 이름은 ‘여자의 성채’라는 뜻. 붉은색 사암으로 지어진 사원은 이름에 걸맞게 사시사철 붉은빛을 띤다. 돌 조각품이 나무를 깎아 만든 듯 섬세하고 아름답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이 사원의 여신상에 반한 나머지 조각품 하나를 떼어내 몰래 반출하려다 발각된 일화가 전해진다.


돌에 새긴 캄보디아의 미소
앙코르와트 유적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바이욘사원이다. 사원 안에는 원뿔 모양의 탑이 49개 있고 그 탑에는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얼굴 196개가 조각되어 있다. 새벽 5시 15분의 바이욘사원은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듯했다. 우윳빛 안개가 사원을 감싸 안고 흐르고 있었다. 울창한 열대 숲은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고 멀리 원숭이들이 나무를 건너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천 마리 새들의 울음소리가 사원을 뒤덮었다. 사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사원의 계단을 올라 석상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이른 아침 햇살이 석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가만히 석상의 눈을 쳐다보았다. 한 없이 평화로운 눈, 그리고 더없이 자비로운 미소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마음 한쪽에서 새 한 마리가 천천히 날개를 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2시간 정도를 뭐에 홀린 듯 바이욘사원에서 보내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나이 지긋한 민박집 여주인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앙코르와트를 제대로 봤군. 대부분의 여행자는 앙코르와트 일출을 본다고 부산을 떨지. 하지만 앙코르와트의 일출이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새벽의 바이욘만큼 감동적이진 않아. 새벽의 바이욘에서는 영혼을 느낄 수 있거든.”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 톤레삽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메콩강을 빼놓기는 불가능하다. 동남아시아 6개국을 적시며 장대히 흐르는 메콩강은 동남아의 문화 그 자체 또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중국의 윈난성과 미얀마·태국·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을 관통해 흐르는, 길이만 장장 4,400km에 달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라오스를 지나 약 1,500km를 달려 온 메콩강은 캄보디아에서 폭이 좁아지고 깊어지다가 라오스와의 국경에서 콩 폭포를 이루는데, 이 부근부터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까지는 상당히 큰 선박의 항행도 가능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흐름도 완만해진다.

 

메콩강은 캄보디아에 이르러 숨을 고른다. 그러면서 커다란 선물을 안겨 준다. 바로 톤레삽 호수(Tonle Sap)다. 말이 호수지 파도처럼 일렁이는 거친 물살과 아득히 펼쳐지는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바다와 다름없다. 톤레삽 호수의 면적은 무려 3,000㎢. 제주도(1,848㎢)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넓이다. 톤레삽이라는 이름은 크메르어로 ‘거대한 호수’라는 뜻이다.


톤레삽 호수가 캄보디아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모자라는 말이 아니다. 톤레삽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연간 100만 톤에 달한다. 우리나라 연간 어획고가 약 40만 톤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톤레삽이 쏟아내는 물고기가 어느 정도 양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톤레삽이 위대한 이유는 그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호수에는 무려 3만 명의 사람들이 수상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 호수에서 태어난 이들이다. 물 위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마침내 물 위에서 생을 마친다. 태어나서 육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물은 곧 육지다. 수상마을에는 육지의 마을에 있는 모든 것이 있다. 학교와 슈퍼마켓을 비롯해 음식점·잡화점·교회, 고장 난 배를 수리해주는 정비소,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주유소, 철물점이 물 위에 떠 있다. 관공서도, 영어학교도 물 위에 떠 있다. 톤레삽 사람들은 카페에 차를 마시기 위해 배를 타고 가고, 친구들과 당구를 치기 위해 당구장에도 배를 타고 간다. 이른 아침이면 골목골목을 누비며 두부 장수가 다니듯, 톤레삽 호수에서도 바나나·얼음·생선·과일·음료수 등을 실은 식료품 배가 집과 집 사이를 누비며 다닌다. 교통안전을 위한 표지판도 있고 집집마다 주소가 있는 까닭에 우편물도 받아 볼 수가 있다.


이들이 사는 모습 역시 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창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심어진 화분이 놓여 있고, 빨랫줄에는 갖가지 빨래들이 뜨거운 햇빛에 말라가고 있다. 저녁이면 곳곳에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수영하며 놀던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헤엄쳐 돌아간다. 자동차 배터리로 불을 밝히고 마루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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