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초·중등교육계에서 39년간 봉직한 필자, 교육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다. 얼마 전 동화 「꺼벙이 억수」로 널리 알려진 한국아동문학계의 거장 윤수천(82) 작가를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75년부터 수원화성이 내려다 보이는 지동벽화마을에서 살고 있다. 태생은 충북 영동사람이지만 이제는 경기도 수원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 총 8편이다. 초등학교 2-1 국어 읽기 「누나의 생일」, 2-2 국어 말하기 듣기 「꺼벙이 억수」, 3-1 국어 읽기 「쫑쫑이와 넓죽이」, 3-2 국어읽기 「별에서 온 은실이」, 4-2 국어읽기 「연을 올리며」(동시), 4-2 국어 말하기 듣기 「행복한 지게」, 중학교 도덕 「바람 부는 날의 풀」(이 시는 가곡으로도 불리고 있음). 현재는 4-1 국어활동 「할아버지와 보청기」. 이들 동화의 주제는 효행, 가족애, 우정, 동물 사랑 등이다.
문단에서의 작가에 대한 평가를 물으니 “글쎄요, 문단에서 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궁금한데요.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50년 동안 꾸준히 문학을 해와 개근상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나 싶네요”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요즘 그는 본인을 시와 동화를 쓰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등단은 아동문학으로 출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를 즐겨 쓰고 있다고 근황을 밝힌다.
아동문학을 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저도 처음엔 시로 출발했지요. 그런데 시를 써서 보내면 자꾸 최종심에서 떨어지곤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우연히 소년잡지 소년중앙에서 동화와 동시를 공모하는 걸 보았어요. 이틀 동안 끙끙거려서 동화를 써서 보냈더니 우수작에 당선됐어요. 다음 해엔 장르를 바꿔서 동시로 입상했고요. 그러고는 내친김에 조선일보 신춘문예까지 동시를 써서 당선한 게 아동문학가로 행세를 하게 되었네요.”
등단 이후 받은 그가 받은 문학상은 한국아동문학상(1989), 방정환문학상(1997), 한국동화문학상(2006) 등이며 1982년 경기도문화상(예술부문)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 가운데서 가장 인상에 남은 상은 등단 후 처음 받은 한국아동문학상(1989)을 꼽는다.
어릴 적에 별이 되고 싶었던 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안 되지, 하고 돌아서는/
난 때 묻은 팔십하고도 둘.
-4행시 「별」 전문
그는 최근 4행시집 ‘당신 만나려고 세상에 왔나 봐’를 출간했다. 그는 아동문학을 하면서도 시를 간간이 써왔다. 그에겐 즐거운 외도였고 화려한 나들이. 동화로 풀어내지 못한 감정을 시의 체에 걸러내곤 했던 것이다. 제4시집 『늙은 봄날』을 내고 문득 짧은 시에 대한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어느 날 새벽, 느닷없이 네 줄 시가 찾아왔다고. 그는 번개처럼 찾아온 4행시를 휴대폰에 저장했다. 하루에 서너 편도 좋고, 대여섯 편도 좋았다. 여기에 서정시학 TV에서 4행시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시와에세이 출판사를 통해 시집으로도 나오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왜 하필이면 4행시인가? “저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네 줄에 넣습니다. 아주 짧은 시이지요. 그러므로 단순 명료함이 중요합니다. 또 읽고 나면 울림도 있어야 하고요. 제 자랑 같지만, 제가 원래 이런 유형의 문학에 능합니다. 단칼에 무를 썰 듯 글을 단숨에 씁니다. 여기에다 별로 고치지도 않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작품은 날내가 나기도 하지요.”
그에게 아동문학의 현 실태와 개선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은 짧은 역사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해왔습니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세계무대에 진출했는가 하면 젊은 작가들의 그림책이 이름 있는 세계문학상을 받는 등 앞날을 더욱 밝게 해주고 있지요.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아동문학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인천의 한 도서관에 강의를 갔을 때였어요. 주최측에서 강의에 앞서 감사패를 주는 거예요. 작년 1년 동안 책 대출에서 제가 쓴 동화책 『나쁜 엄마』가 대출 순위 1위였다나요? 얼마나 기뻤는지…. 그런가 하면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거나 전화를 받는 일도 작가에겐 더없는 기쁜 일이지요."
그는 후배 문학인과 시민들에게 당부한다. “문학은 뭐니 뭐니 해도 작품이 우선입니다.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쓰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협회나 단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여기에 너무 힘을 쏟다 보면 작품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모자라게 됩니다. 작가들은 오로지 좋은 작품 생산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들에게는 작가들의 작품을 사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내 고장 작가들의 책을 읽는 일, 이보다 더 작가를 사랑하는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