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민원에 무방비 노출…“아무것도 할 수 없다”

2023.07.27 19:47:04

현장 교원 간담회 쏟아낸 호소

신체 닿으면 성희롱 신고 으름장
‘걸리면 끝 저승사자’ 아동학대법
신고되면 무죄추정 원칙도 없어

최소한 강제력·학부모 긴급 격리
무분별 신고로부터 보호법 필요

21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열린 교육부-교총 교권확립을 위한 현장교원 간담회는 현장 교원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사안이 위중한 만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 서울시교육청 담당자 등이 참석해 이들의 호소를 들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10년 차라고 밝힌 A 초등 교사, 학생생활부장을 맡은 바 있는 B 중등 교사, 남자 교사로 어려움을 밝혀준 C 중등 교사, 지난해 동료 교사를 떠나보낸 생채기가 있는 D 초등 교사, 관리직으로는 유일하게 발언한 서울의 E 중등 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현장 교원들은 여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 학교 현장의 어려움 등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한편으로는 진솔하게 전달했다.

 

 

이번 사안을 보는 현장의 분위기를 말해준 C 교사는 “일선 선생님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반향이 큰지 살펴봐야 한다”며 “지금 일선 교원들은 그동안 무기력했던 현장에서 이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참석 교원들이 전해준 일선 학교의 어려움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D 교사는 “수업방해나 교권침해 시 교원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 같은 현실에서 교사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팔다리가 잘린 채 총알을 맞는 심정으로 현장에 선다는 말도 나왔다.

 

B 교사는 “교육활동을 하며 강제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없다보니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학생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사정했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B 교사는 남 교사로서 “여학생이 멱살을 잡으면 그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며 “자칫 신체가 닿으면 농담으로나, 때로는 진심으로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된 교육을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무례한 언행 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E 중등 교장은 “열정적으로 담임활동을 하다가 학부모로부터 ‘우리 애 마음 상하게 했으니 담임을 교체해 달라’는 요청을 들은 한 선생님이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봐요’라고 말했을 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던 현실에 미안함과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D 교사도 “교육공동체라고 하면서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를 잡아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툭하면 신문고에 올려 업무를 마비시키는 학부모가 과연 공동체의 일원인지 묻고 싶다”며 “소위 말하는 금쪽이 부모들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B 교사도 “생활지도부장을 하며 아이에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학부모에게 고소당할 수 있다는 각오를 늘 하며 지냈다”다고 토로했다.

 

현장 교원들은 이 같은 어려운 현실에서도 교육자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당부했다.

 

C 교사는 “교육활동에서 교사들이 부탁하는 방식으로는 교육이 어렵기 때문에 수단적 조치로서 최소한의 강제력이라도 부여돼야 한다”며 “학부모의 문제행동이 지속되고 커질 때 이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하고, 학교장은 즉각적인 분리 조치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D 교사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의 경우 현장에서 누가 맞아 죽을지 모르는 러시안룰렛법, 걸리면 죽는다고 해서 저승사자법 등으로 불린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 법은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D 교장은 “이미 교총이 제안한 장관 고시안을 조속히 반영하고, 유명무실화된 교원배상책임보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이밖에도 B 교사는 법과 제도적인 보완에 앞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함을 강조했으며, A 교사는 학부모와 교사가 공적인 채널을 통해서만 소통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행정업무를 경감해 기본적인 교육활동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백승호 기자 10004ok@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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