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만 더 가세요. 그곳이 천국입니다 .. 필리핀 보홀

2023.08.07 10:30:00

필리핀 세부. 우리에겐 참 익숙한 여행지이자 휴양지다. 1990년대 초부터 허니문 여행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시절 신혼여행하면 으레 태국 푸껫 아니면 필리핀 세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부로 떠나는 상품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비행시간이 4시간여로 비교적 짧은 데다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홀은 세부 바로 옆이다. 세부에서 페리로 1시간 30분 거리다. 이번 휴가는 보홀로 떠나보자.
 

 

나는 지금 뜨겁게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있다. 귓전에는 파도 소리가 일렁이고,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마를 식혀준다. 여기는 필리핀 보홀의 어느 바닷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일이다.  

 

가장 필리핀스러운 풍경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km 떨어진 보홀은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제주도와 비슷한 크기지만, 인구는 약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주도인 타그빌라란(Tagbilaran)의 주민이 9만 명에 불과하다. 세부의 막탄이 잘 꾸며진 휴양지 느낌이라면 보홀은 소박한 시골 마을 분위기를 풍긴다. 거리는 막탄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지프니와 트라이시클로 넘쳐난다.

 

지프니는 트럭을 개조한 필리핀의 전통 교통수단. 버스보다 조금 작은데 알록달록하게 꾸민 외관이 화려해 필리핀 명물로 통한다. 보홀의 이동수단 가운데 지프니의 비중은 70%에 달한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 옆에 사이드카를 붙인 것이다. 지프니가 버스 역할을 한다면 트라이시클은 택시 역할을 한다. 


‘필리핀의 보석’, ‘필리핀의 숨겨진 진주’ 등 보홀의 별명은 많지만, 보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별명은 ‘아시아의 홍해(red sea)’다. 그만큼 물이 맑다. 수십m 밖에서도 바닷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훤히 보일 정도다. 


보홀에는 크고 작은 부속 섬들이 많은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팡라오(Panglao)섬이다. 섬은 타그빌라란과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널려 있다. 산호 해변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섬을 빙 둘러 고급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야자수로 지붕을 얹은 롯지 스타일이다. 여행자들은 코코넛 나무에 걸어놓은 그물침대에 누워 휴식을 하거나, 다이버 강습을 신청해 산호초 바다로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팡라오섬 남쪽에 자리한 알로나비치는 보홀에서도 가장 멋진 해변으로 꼽힌다. 바다는 멀리서도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투명하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는 희디흰 산호초 가루로 이루어진 백사장과 어울려 천국의 풍경을 빚어낸다. 그리고 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

 

해변 입구의 ‘한 걸음만 더 가면 천국’(ONE STEP BEFORE PARADISE)이라는 간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계 10대 해변으로 불리는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보다 약 20% 정도 더 아름답다. 리조트를 비롯해 식당과 바, 카페, 해양스포츠 숍 등 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세계 최고의 스쿠버다이빙 포인트
보홀은 물이 맑아 아름다운 다이빙 포인트가 많기로 유명하다. 다이버들 사이에선 ‘보홀은 몰라도 보홀 바다는 알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 가운데 팡라오섬 남서쪽에 위치한 발라카삭섬이 가장 뛰어나다. 팡라오섬에서 필리핀 전통배 방카로 약 30분 정도만 나가면 된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낮지만 조금만 나아가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깊어지는 절벽 지형이다. 물이 맑아 가시거리가 좋은 데다 파도가 잔잔해 수많은 다이버를 불러 모으고 있다. 


보홀에 가면 스쿠버다이빙을 꼭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물 밖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울긋불긋 아름다움을 뽐내는 산호 군락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풍경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다. 커다란 바다거북이 등을 툭 치며 지나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고래상어도 만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보트로 돌아와 뱃머리에 드러눕는다. 하늘에는 솜뭉치 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다. 뜨거운 햇살이 이마에 내리꽂힌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졸음이 몰려온다.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나와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어쩌면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리얼’일지도 모른다. 


 

보홀에서 스쿠버다이빙만큼이나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돌고래 워칭(watching)이다. 팡라오섬에서 배로 40여 분 가면 파밀라칸(Pamillacan)섬 인근에 닿는데 이곳에서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 광활한 바다에서 수백 마리의 돌고래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은 짜릿한 감동 그 자체다. 


새벽녘, 알로나비치를 출발한 지 45분쯤 됐을 때다. 가이드가 푸른 바다를 가리켰다. 가이드의 손끝이 머무는 곳에서 검은 형체의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고래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솟아오른다. 돌고래는 파밀라칸섬을 향해 진격하듯이 헤엄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뱃전 밑으로 생기 넘치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주하자는 듯 배 옆쪽으로 바짝 달라붙어 달리는 놈도 있는데, 절대 배에 뒤지는 법이 없다. 어느 녀석은 묘기를 부리듯이 하늘로 솟구쳐 팽이처럼 돈다. 일명 ‘스핀 돌고래’다. 돌고래를 따라 관광객을 태운 몇 대의 배도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바다를 가른다.


파밀라칸의 돌고래는 연중 볼 수 있다. 파밀라칸에 서식하는 돌고래는 수천 마리에 이른다. 이들은 사계절 내내 이 섬에 머무는 ‘레지던트 돌고래’다. 파밀라칸이란 섬 이름은 원주민 말로 ‘돌고래 사냥터’라는 뜻. 돌고래는 이른 아침에 먹이활동을 한다.

 

먹이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면서 가쁜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돌고래 투어에 나서는 배는 아주 작다. 뱃전에 엎드려 손을 뻗으면 바다와 닿을 듯이 가깝다. 그만큼 돌고래와의 거리도 가깝다. 뱃머리에 앉아 손뼉을 치거나 배를 두드리면 물속에 있던 돌고래들이 물 밖으로 올라 유영을 즐긴다. 가끔씩 보여주는 돌고래들의 점프 쇼는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보홀의 인기스타, 타르시어 원숭이
보홀의 최고 인기스타는 타르시어 원숭이다. 원주민들은 ‘마오막’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겐 안경원숭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눈 하나가 머리 전체 크기보다 커 붙은 별명이다.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눈은 낮에는 검은 눈동자가 작아지고 밤에는 커진다. 타르시어는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겨우 13cm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작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타르시어는 어딘가 낯이 익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마스터 제다이 ‘요다’와도 닮았다. 영화 ‘그렘린’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보홀섬 중앙에 자리한 초콜릿힐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경주의 왕릉처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아 있다. 이런 언덕들이 무려 1,700여 개로 추정된다. 전망대가 설치된 가장 높은 곳 높이가 550m에 달한다. 평소에는 녹색이지만 건기(12월~5월)에는 풀이 모두 갈색의 초콜릿 빛깔로 변신한다. 그 모양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았다고 해서 초콜릿힐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초콜릿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꼭대기까지 놓인 계단은 214개다. 원래는 212개였는데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2개의 계단을 더 놓았다고 한다. 전망대에 섰다. 제주의 오름 같은 봉우리들이 신비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보홀 시내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는 블로드힐과 바클레욘 성당이 있다. 블로드힐은 혈맹기념비로도 불리는데 1565년 보홀의 원주민 추장 시카투나와 스페인의 초대 필리핀 총독인 미구엘 레가스피가 서로의 팔를 찔러 피를 낸 후 와인에 섞어 마신 곳이다. 당시 상황을 조각하여 만든 조형물이 서 있다. 


바클레욘 성당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교회 건물 가운데 한 곳이다. 1596년 지어졌다. 회색의 거대한 건물은 산호가루와 석회석으로 지어졌는데 재미있는 것은 건물을 견고하게 짓기 위해 계란 흰자를 섞었다는 것. 실내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가톨릭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필리핀을 찾기 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필리핀 하면 세부와 보라카이가 먼저 떠올랐고, 이 두 여행지는 누구나 한 번쯤 찾는 흔한 여행지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보홀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홀에 머문 일주일 동안 필리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곳은 낙원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이었다. 아직도 보홀의 투명한 바다와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나와 눈이 마주쳤던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눈앞에 맴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곡의 노래만 선택하라면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고, 단 한 곳만 가라면 그곳은 보홀이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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