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무너지고 있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의 진술만으로 아동학대범이 된다. 특수학생을 상대하는 특수교육 활동은 아이들과 신체적 접촉이 많은데 현행 아동학대법에서는 교사가 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수면 아래 있던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도 속속 드러났고,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교권은 가공할 속도로 추락했다.
아동학대 민원에 쓰러진 현장
학생들에 의한 교권 실추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으며 예의 바른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교사, 고학년을 맡고서 1년 내내 악몽을 꾸기도 하고 병을 얻었다고 호소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 사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방관하고 무시했고 학부모 앞에서 교사를 ‘을’로 대했을 뿐이다. 그렇게 교권과 생존권까지 무너졌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장난친 아이를 훈계하면 아동복지법 위반, 그래도 계속해서 장난치는 아이를 꾸짖으면 학교폭력 위반이다. 이어 학교폭력전담기구에서 사안을해 조사하고, 법정기구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상정하는 시스템이 작동된다. 혹여 그 아이가 여학생이라면 사안은 성희롱, 성폭력 수사기관 신고로 더 복잡해지고 미궁으로 빠진다. 학부모에게 아무런 대응도,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수업을 병행하면서 홀로 싸워야 한다. 매일 업무포털에 올라오는 내부결재, 아동학대, 성희롱 보고 관련 공문들을 보노라면 정신적 고통을 안고 교단에 설 수밖에 없다. 교권보호는 거대하고 무소불위한 아동학대 민원에 치여 엄두조차 내질 못한다.
매일 정신적, 심적 고통을 그대로 안고 법률에 대해 문외한인 교사는 때론 모든 것을 접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최근 6년간 공립 초·중·고 교원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숨진 교사 중 절반 이상(57명)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학부모 기분상해죄’로 불릴 만큼 학부모 또는 학생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교사가 수없이 고소당하고 있으며, 그런 고소를 당했을 때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이라는 꿈을 갖고 교대에 진학해 힘든 임용고시를 통과한 여교사는 학부모 기분상해죄 죄목으로 괴로워했다. 몇 차례 상담 등의 도움 요청을 했음에도 학교와 교육청은 혹시나 차후에 법적 소송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매뉴얼만 내밀었을 것이다.
엄함과 존경 되살려야
보고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교육과 문화가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며 그 모범사례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말이다. 오늘날 모범 한국이 된 데는 자식교육 뒷바라지에 희생한 부모님과 올곧은 가르침을 준 스승이 존재한다. 교육은 엄함과 존경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지금의 사회와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는 엄하게 가르치는 이도, 존경하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라는 것은 비난이 아니다. 인격을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가 깨지면 가르침이 이뤄질 수 없고 배움이 이뤄질 수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교직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 아이들이 교사를 존경하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교권뿐만 아니라 생존권 골든타임이 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