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황금 양털에 얽힌 양자리 신화

2023.11.07 10:30:00

별자리 관측은 기원전 수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유목민이 푸른 초원을 따라 가축을 데리고 이동하는 유목생활 속에서 시작됐고, 이 별들을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과 연관시키면서 최초의 별자리가 만들어졌다. BC 3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미 천체 관측용 건물을 갖추고 있었고, 수학의 발달로 복잡하고 세밀한 계산이 가능했다.

 

그들은 천구 위의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대를 대략 30도씩 12등분 하여 황도 12궁(Zodiac)을 만들었다(<그림 1> 참조). 이 바빌로니아의 황도 12궁이 고대 그리스에 전승되어 그리스신화와 결합되면서 보다 풍성한 별자리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양 뿔을 닮은 양자리
양자리는 황도대의 첫 번째 별자리로, 서쪽의 물고기자리와 동쪽의 황소자리 사이에 있다. 양자리인 ‘에리즈(Aries)’는 ‘숫양’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알파별 하말과 베타별 샤라탄 외에는 모두 어둡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는 양치기의 신, 풍요의 신인 두무지(Dumuzi)의 별자리였는데, 그리스 문명권에 전승되어 양자리에 얽힌 신화가 만들어졌다. 


양자리는 아주 유명한 산개성단 플레이아데스(Pleiades) 근처에 있어, 맑은 가을철 어두운 곳의 밤하늘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알파벳 대문자 L자를 옆으로 뉘어놓은 듯한 형태로 별들이 배열되었는데, 이것이 양 뿔을 닮았다고 생각해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양자리의 별들은 양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알파(α)별 하말(Hamal), 베타(β)별 샤라탄(Sharatan), 감마(γ)별 메사르팀(Mesarthim), 델타(δ)별 보테힘(Botein) 등이다. 하말은 지구에서 약 75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적색 거성이다. 양자리 근처에는 몇 개의 먼 은하가 있다. 소용돌이치는 가스로 가득 차 있는 NGC1156, 지구에서 772광년 떨어진 나선은하 NGC130, 양자리 북쪽에 있는 먼지투성이 나선은하 NGC972와 NGC697이다(<그림 3·4> 참조).


 

양자리의 역사와 신화
고대 바빌론·페르시아·이집트 시대부터 양자리는 알려져 있었고, 고대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전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양자리는 농민들의 숭배를 받았다. 숫양의 머리를 가진 남자로 묘사된 창의성과 다산의 신 ‘아몬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리에는 매우 재미있는 몇 가지 신화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올림포스 신들의 수장 제우스와 관련된 전설이다. 제우스가 거인족 타이탄과 전투를 벌일 때 수세에 몰리자 도망치면서 숫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양자리 신화는 로마 작가 히기누스에 의해 전해지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Bacchus)와 관련되어 있다.

 

음주가무의 쾌락주의적 생활을 즐기는 바쿠스가 어느 날 그의 일행과 함께 광활한 리비아 사막에서 예기치 않게 길을 잃었다. 그들은 메마른 황무지에서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이때 친절한 숫양이 나타나 오아시스로 인도해 주었고, 덕분에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바쿠스는 감사의 마음으로 숫양을 하늘로 들어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그리스신화 버전이다. 고대 그리스 왕국 중 하나인 보이오티아 왕 아타마스는 구름의 님프 네펠레와의 사이에서 프릭소스와 헬레라는 어여쁜 남매를 두었으나, 테베 공주 이노와 사랑에 빠져 네펠레를 버린다. 이노는 아타마스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생기자, 전처소생의 아이들인 프릭소스와 헬레를 눈엣가시같이 여겨 죽이려고 계략을 꾸민다.

 

그녀는 가을밀 파종시기가 되자 몰래 밀 씨앗을 삶아 밭에 뿌린다. 봄이 되어도 싹이 올라오지 않자, 아타마스왕은 이유를 알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에 신탁을 받아오게 한다. 이노는 신탁을 받으러 간 신하를 구슬려 프릭소스와 헬레를 산 제물로 바쳐야 흉작이 멈출 것이라는 거짓 신탁을 왕에게 전하게 했고, 어리석은 왕과 백성은 남매를 제우스의 제단에 바치려고 한다.


왕이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제단에 세우는 순간, 생모 네펠레의 애끓는 탄원을 들은 제우스가 황금 양을 보내 남매를 구출한다. 황금 양의 등에 타고 도망치던 중 헬레는 그만 바다에 빠져 죽고, 프릭소스만 흑해를 건너 콜키스(Cholkis)에 무사히 도착한다. 터키 이스탄불 근처의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의 고대 이름인 헬레스폰트(Hellespont)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황금 양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프릭소스를 보고 놀란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는 그를 환대하여 자신의 딸과 결혼까지 시킨다. 프릭소스는 황금 양을 제우스에게 제물로 바치고, 황금 양털(Golden Fleece)은 왕에게 선물한다. 왕은 이것을 콜키스의 거룩한 숲에 걸어놓고, 잠들지 않는 용에게 지키도록 한다. 황금 양털은 콜키스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보물이라는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남매를 구한 황금 양을 기리기 위해 하늘로 올려 보내 양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이 이야기는 이아손(Iason)이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고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신화의 출발점이 된다. 


조강지처를 위한 복수, 그리고 바람의 끝
한편 자식을 제물로 바치려 한 아타마스와 계모 이노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의 수호신 헤라는 네펠레의 처지를 동정해 이들에게 복수의 여신 티시포네를 보낸다. 티시포네는 피에 절은 외투를 입고 뱀을 허리에 감은 채 아타마스와 이노 앞에 나타나, 머리에서 뱀 두 마리를 꺼내 던진다.

 

급기야 뱀의 맹독 때문에 미쳐버린 아타마스는 이노가 암사자이고, 아들은 새끼 사자라는 망상에 빠진다. 그는 이노의 품에서 아들을 낚아채 공중에서 두세 번 돌린 후, 궁전의 딱딱한 돌 위에 머리를 세게 내려친다. 경악한 이노는 다른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익사하고 만다. 혹은 이노가 미쳐 아들을 가마솥에 끓여 죽인 다음, 바다로 뛰어들었다고도 한다. 자신의 아이만 귀하게 여기고, 남의 자식은 죽이려고 한 악독한 계모는 자기 자신은 물론 무고한 자식들까지 해친 것이다. 그녀에게 휘둘린 어리석은 친부 역시 광기에 빠져 가족을 죽이고, 몰락하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헤라는 왜 이토록 잔혹하게 아타마스와 이노를 벌하려 했을까? 희대의 바람꾼 제우스의 조강지처 헤라가 네펠레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은 이노가 제우스와 바람을 피운 세멜레의 언니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다. 제우스가 테베의 공주 세멜레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까지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세멜레에게 접근해 상대가 진짜 제우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꼬드긴다.

 

의심의 씨앗을 품은 세멜레가 제우스에게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졸라대자, 이미 뭐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제우스는 할 수 없이 천둥과 번개에 휩싸인 진짜 자기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불타 죽어버렸다. 이때 세멜레의 뱃속에는 디오니소스가 잉태되어 있었다. 제우스는 재빨리 태아를 꺼내 자기 허벅지에 넣고 꿰매 달을 채운 뒤 태어나게 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이노가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헤라를 아름다운 여신보다는 질투에 눈이 먼 표독한 아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헤라가 세멜레처럼 언제나 자신의 연적들에게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라가 더욱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자식들에게까지 보복의 칼날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도 아타마스처럼 광기에 휩싸여 아내와 자식을 죽였고, 세멜레의 아들 디오니소스는 미쳐서 세상을 헤매게 된다. 문제는 광기다. 헤라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다. 그들 자신이 발광해 자멸의 길로 들어서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가에타노 간돌피(Gaetano Gandolfi)의 ‘아들을 죽이는 아타마스’는 가정폭력을 극단적으로 참혹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화가는 그림에서 광포한 정신착란을 일으켜 어린 아들을 살해하는 아타마스를 묘사했다. 이노는 그 옆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남편을 만류하고, 다른 팔로는 둘째 아들을 안은 채 보호하고 있다. 관람자는 다음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가족 비극이 일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타마스의 전처소생 자식들도 둘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헬레는 일찌감치 죽고, 프릭소스 역시 이방인이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아이에테스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자식을 살해한 미친 왕은 결국 자신의 나라에서 추방되었고, 절망에 빠져 방랑하다가 신의 신탁을 받고 광야에 나라를 새로 세운다. 그러나 두 번의 결혼에서 얻은 네 명의 자식을 모두 잃은 그가 행복할 수 있었을까?

 
이 신화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신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못된 계모와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친부 스토리의 원조인 셈이다. 재혼가정에서 의붓자식을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장화홍련·콩쥐팥쥐·백설공주·신데렐라 같은 동서양의 동화나 실제 역사에서도 수많은 사악한 계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항상 합리적 판단력을 잃은 무기력한 아버지가 있다. 동화에서는 주인공의 착한 심성과 노력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지만, 프릭소스와 헬레의 이야기는 현실 속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낭만적이지 않아 서글프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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