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지고 있는 건설사 위기
금리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있고, 채권·대출에 적용되는 시장금리가 있습니다. 크게 보면 이 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차가 존재하고, 다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더 올렸지만, 시장은 금리가 곧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며, 오히려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연준이 9월 FOMC에서 연말에 금리를 더 올리고, 내년에 금리인하를 예상보다 덜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그 결과 채권금리가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
금리가 더 오르면 대출이자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집 사기가 꺼려지고, 기업들도 빚내서 투자하기 부담스럽습니다. 국가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채를 발행하여 시장의 돈을 거둬들입니다. 그런데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가 늘어나고, 결국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 PF 문제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1월부터 9월까지 건설사가 하루에 1.5개씩 폐업하고 있습니다. 집을 사지 않고, 대출이자가 비싸고, 자재가격이 올라 집을 지어도 적자인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거보다 건설사가 더 견디기 어려운 이유
과거에는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시장금리도 같이 하락했습니다. 그러면 주택을 사려는 실수요자는 저금리를 활용해 집을 구할 수 있고, 위기에 빠진 건설사도 저금리로 대출받아 불황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국가 역시 경제위기 때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발주해서 건설사들이 주택 대신 토목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줬습니다. 평소에는 마진이 낮아 하지 않던 토목공사를 불황 때는 적자를 보더라도 하려고 합니다. 안하면 적자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건설사는 돈을 떼일 리 없는 관급공사를 하면서 버팁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가 특별예산을 편성하고, 재정적자를 추가로 내서 국채를 발행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국채금리가 상승해서 더 많은 이자를 내야하고, 국가의 재정적자가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채를 발행하면 재정적자가 심각해지고, 국가신용은 하락하며, 환율도 상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시장의 유동성을 이미 은행채와 한전채가 많이 가져간 상황에서 국채마저 발행하면 채권시장으로 자금이 쏠리게 되고, 기업들은 채권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집니다. 작년 가을 한전채 금리가 6%에 육박하면서 시장의 돈이 쏠렸고, 다른 회사들은 그보다 더 높은 금리를 줘야 돈을 빌릴 수가 있었습니다. 올해 한전채는 12조가 발행됐습니다. 총발행 금액이 69조 원이고, 내년 한전채 발행한도가 올해 상반기 자본금과 적립금 합의 5배 기준이라고 볼 때 74조까지 가능합니다. 지금보다 5조 원 정도 더 발행이 가능합니다.
한전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가는 오르는데, 4분기 전기료 인상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은행들도 작년 고금리 단기예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은행채를 8~9월간 11조 넘게 발행했습니다. 건설현장이 중단되거나 PF에 신용보강을 해야 하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돈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계열사를 동원하여 대출받아 위기를 넘기는 회사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회사는 흑자부도가 날 수도 있는 위기에 있습니다.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최근 서울과 지방 모두 아파트 가격이 회복세에 있고, 전셋값도 상승 추세입니다. 분양시장 역시 자리가 좋은 곳의 청약경쟁은 치열합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신규 분양 경쟁률이 올라가고, 분양에 문제가 없으면 건설사 위기는 사라집니다. 분양시장이 살아나면 기존의 미분양도 감소하면서 건설사는 미분양으로 떠안았던 대출을 줄일 수 있어 재정건전성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오랫동안 높게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생기면서 부동산 시장도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분양시장이 위축되고 건설사는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고유가로 인해 중동발 해외건설을 늘려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입니다. 고유가시기에 돈을 버는 국가는 중동국가들입니다. 중동국가는 저유가시기가 되면 경제가 어려워지므로 미리 투자를 해서 수익다변화를 꿈꿉니다. 그래서 인프라건설·공장건설을 고유가시절에 부지런히 해둡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중동에서 건설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고유가시절에 중동발 수주를 늘려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건설은 기술과 난이도가 높아 대형건설사들만 수혜를 봅니다. 우크라이나 재건에 우리 건설사들이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가능성만 있을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3기 신도시를 조기에 착공하는 것입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불경기에 토목을 하느니 대규모 신도시를 빨리 건설하면 건설사들은 확실한 일감을 얻게 되고, 국가는 저렴하게 아파트를 지어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을 해서 3기 신도시를 흥행시키는 방법입니다. 자재가격도 많이 오르고, 토지보상비를 생각하면 우리 예상보다 분양가격이 아주 낮지는 않겠지만, 분양가만 저렴하다면 청약을 하려는 수요는 충분합니다.
3기 신도시 규모를 보면 남양주 왕숙 6.8만 호, 하남 교산 3.3만 호, 인천 계양 1.7만 호, 고양 창릉 3.8만 호, 부천 대장 2만 호 등 총 17.6만 호입니다. 기타 지구들을 합치면 30만 호의 공급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공급을 늘려 주택가격 안정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입니다. 고금리가 끝나고 주택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건설사들이 얼마나 버티느냐가 중요하고, 이는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증권사·보험사 등 금융권의 위기와 연결이 됩니다. 문제가 잘 해결되어서 대한민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