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입학 전까지의 개별 학생 문해 환경의 차이는 ‘문해력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고 이후 아이들의 학습을 지배한다. 초등 1학년 시기는 체계적인 문자 학습이 이뤄지는 초기 문해력 발달의 결정적 시기다. 이렇게 중요한 초등 1학년 시기에 같은 출발선에서 배움을 시작하도록 ‘새내기 문해력의 돋움판’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1학년 담임으로서의 고민을 담아 새내기 문해력 신장을 위한 노력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학생 맞춤 교육과정 필요해
우선 우리 반 맞춤 교육과정 판을 새롭게 마련해보자. 교과서는 우리 반 아이 맞춤 교육과정이 되어주지 못한다. 여백 있는 교육과정 판이 마련돼야 적합한 새내기 문해력 수업을 펼쳐낼 수 있다.
입학 때부터 한글 해득 수준차가 극과 극이다.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시작하여 2022개정교육과정까지 이어지는 공교육 한글 책임 지도의 큰 흐름 속에서 1학년 문해력의 바탕이 되는 한글 해득의 출발선을 어떻게 맞춰 줄 것인가?
발음의 원리를 탐구하는 ‘한글의 비밀 탐구학습’ 프로젝트를 교육과정에 담기로 했다. ‘ㄹ받침의 특징은 무엇일까?’ 알쏭달쏭 핵심질문을 던지며 받침의 특성을 함께 공부한다. 한글을 이미 잘 쓰는 아이에게도 답을 찾는 탐구 과정 자체가 또 다른 학습이다. ‘갈, 날, 달, 랄’ 발음을 해보던 아이들이 “ㄹ받침을 넣어서 발음하면 혓바닥이 입천장에 올라가서 닿아요!”라고 답을 찾는다. 탐구수업 이후 아이들에겐 ㄹ받침이 있는 낱말을 읽고 쓰는 일이 식은 죽 먹기다. 교과서 진도 수업만으로는 한글 학습의 전이 효과를 이끌기 어렵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게 되는 ‘한글의 비밀 탐구학습’을 통해 알 수 없는 글자를 만들어 내던 아이도 글자를 쓰고 읽는데 자신감을 찾아간다.
여백이 있는 교육과정 속에 학생들의 삶을 관통하는 텍스트(text)를 담아보자.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텍스트는 컨텍스트(context)로 연결된다. 한글 해득 학습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최소 문해력’이라면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기능적 문해력’에 대한 접근도 함께 필요하다.
어느 날 교실 곤충채집통 속 곤충이 모두 죽어버렸다. 국어 교과 학습과 우리 반 사건을 연결하기 위해 그림책을 찾았다. ‘몽땅 잡아도 돼’라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은 뒤 그림책 속 문제 상황과 우리 반 사건을 연결해 문제를 토의했다. 그리고 학교 주변을 산책하며 지구 가족들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그림책을 ‘몽땅 사랑해야 해’라는 이야기로 바꿔 써 보았다.
문장 쓰기 학습 과정으로 교과서에 실려있는 그림일기 수업만이 정답은 아니다. 나의 삶과 관련한 텍스트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 쓸 거리를 제공한다. 텍스트를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생각하고 읽게 되며, 단 한 문장이라도 진정한 글쓰기가 이뤄진다.
문해력의 바탕이 되는 독해력은 어떻게 길러줄까? 글을 꼼꼼하게 읽고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새내기들의 필수 문해력이다. 수학 시간. 철수와 영희 중 누가 사과를 많이 먹었는지 묻는 문제에 아이들은 ‘7개’라고 답한다. 끝까지 읽지 않거나 중요한 키워드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목적 있는 읽기 활동으로 절실함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맥락 없이 교과서 지문을 읽고 내용을 파악할 때 아이에게 절실함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는 절실함 그 자체다.
일상 경험 적용하면 효과 높아져
쪽지를 읽고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미션을 통과하는 ‘쪽지미션 놀이’로 아이들의 읽기 습관을 길러보기로 하였다. 아이들은 노는 줄 알지만 독해력 공부를 하는 중이다. 꼼꼼히 읽으라고 주문하기보다, 꼼꼼히 읽고 싶고, 읽어야만 하는 장면을 설계해보자는 것이다. 읽으라고만 했지,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이에서 실패했던 경험은 이후 읽기 활동의 자양분이 됐다.
각양각색, 천차만별인 1학년 아이들의 문해력을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 방치할 순 없다. 또 보편타당한 교과서이지만 우리 아이들을 교과서에 맞출 수는 없다. 1학년 때 문해력 돋움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삶을 ‘낯설게 보는’ 시인들의 시선처럼, 우리 1학년 담임들도 교육과정과 교과서, 배움의 장면을 ‘낯설게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