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기괴한 반인반수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

2023.12.05 10:30:00

어둡고 광활한 하늘에서 어떤 별자리들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칼럼에서 페가수스자리·안드로메다자리·페르세우스자리·양자리 등의 가을철 별자리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는 기괴하고 섬뜩한 반인반수의 괴물들과 관련된 별자리 신화를 가지고 있다.

 

염소자리(Capricornus) _ 음주가무, 성적 쾌락을 좇는 호색가 사티로스의 별자리
염소자리는 황도 12궁 중 하나이며, 국제 표준 88개 별자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독수리자리·궁수자리·현미경자리·남쪽물고기자리·물병자리에 둘러싸여 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태양은 염소자리를 지나간다고 한다. 염소자리는 게자리를 제외하면 황도 12궁 중 가장 어두운 별자리다. 3천 년 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도 염소자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래된 별자리다.

 

북반구인 바빌로니아에서 볼 때 동지점을 기준으로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므로 고대 점성술에서는 동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대인은 이때부터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만물에 온기와 생명 그리고 빛을 주는 존재이므로 매우 중요했다. 바빌로니아인이 일찍이 염소자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 동지점이 이 별자리 근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지선은 현재에도 ‘염소자리의 동지선’이라고 불린다.


옛사람들은 역삼각 모양의 염소자리를 상체는 염소, 하체는 물고기인 바다염소 형상으로 보았다. 거대한 괴물 티폰의 공격을 받은 판이 변신해 물속으로 피신하려 했을 때, 급히 주문을 외우는 바람에 실수로 반은 염소, 반은 물고기인 괴상한 형상이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멀리서 제우스가 위기상황에 처한 것을 본 판은 팬파이프를 불어 티폰을 딴 곳으로 유인해 그를 구해주었다. 제우스는 은혜를 갚기 위해 반양반어(半羊半魚)의 이상한 모습 그대로의 판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Satyros)와 판(Pan)은 모두 비슷한 종족이며, 대체로 인간의 상체와 염소의 다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로마시대로 가면 파우누스(Faunus)로 그 맥을 잇는다. 판은 늘 ‘시링크스’라는 팬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숲과 목축의 신이다. 요정 시링크스(Syrinx)에게 반해 계속 쫓아다니다가 강 끝 갈대밭까지 도망간 그녀가 갈대로 변신하자 이를 꺾어 팬파이프로 만들어 늘 불고 다녔다고 한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판은 ‘~를 다 포함하는’, ‘전체의’라는 뜻으로, 인간의 모습과 짐승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갈기 같은 머리카락, 짐승 같은 얼굴, 들창코의 우스꽝스럽고 흉측한 모습을 한 판은 행동이 거칠고 광적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친구로 대체로 술·노래·춤을 즐기고 여인과 님프를 유혹하며 성적 쾌락을 좇는 호색한으로 묘사된다.

 

즉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무절제·탐욕·음란성 등 인간적·원초적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 때문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판은 이교적인 악마의 상징이 되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새겨졌다.


반면 17세기 바로크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사티로스를 삶의 즐거움·풍요로움·다산을 상징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림 속 사티로스는 포도·사과·모과 등 탐스러운 과일들로 넘치는 바구니를 들고 마성의 미소를 짓고 있다.

 

붉은 뺨은 얼큰히 취했음을 말해준다. 취기로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 표정은 생기에 넘친다. 여기에는 방탕과 탐닉에 대한 어떤 절제도 없다. 환한 빛에 노출된 육체는 건강하고 관능적으로 보인다. 보는 관점에 따라 쾌락과 욕망의 추구는 악이나 방탕의 근원이 될 수도, 삶의 기쁨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물고기자리(Pisces)와 괴수 가족
물고기자리는 황도 12궁 중 하나로, 물병자리와 양자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안드로메다자리와 페가수스자리 가까이 있으며, 물고기 두 마리가 하나의 끈에 묶여 있는 모습이다. 물고기자리는 가을철 대표적 길잡이 별자리인 페가수스 사각형의 남쪽과 동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혹은 두 마리 물고기를 묶어 놓은 줄이 시작되는 곳이 고래자리의 머리 위이기 때문에 이 별자리를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알파별도 4등급의 밝기 정도라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별자리다. 


물고기자리는 현재의 춘분점이 있는 별자리로도 유명하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동하면서 적도와 교차하는 지점이고, 추분점은 반대로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갈 때 지나는 지점이다. 태양이 춘분점에 있을 때 지구의 북반구는 봄이고 남반구는 가을이다.


물고기자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프로디테 여신과 그녀의 아들 에로스가 변신한 별자리로, 무시무시한 괴수 티폰(Typhon)과 연관이 있다.

 

강가에서 신들이 연회를 열고 있을 때 갑자기 강에서 티폰이 나타나 공격했다. 티폰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와 태초의 신이자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Tartarus)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자식이다.

 

제우스가 티탄족을 타르타로스에 가두자 분노한 가이아가 티폰으로 하여금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하게 했다. 혼비백산한 신들은 제각기 동물로 변신해 도망갔는데 아폴로는 매, 아르테미스는 고양이, 디오니소스는 염소, 그리고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물고기로 변해 강물 속으로 피했다. 이때 여신은 아들을 놓칠까 봐 끈으로 몸을 묶었다. 이렇게 두 마리 물고기가 끈으로 이어져 헤엄치는 모습이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티폰이 어떤 괴물이길래 올림포스 신들조차 이렇듯 맥을 못 추었을까? 티폰은 우주 최강의 반인반수 괴물이다. 상반신은 인간의 몸통, 대퇴부부터는 똬리를 튼 뱀의 형상을 한 가공할 외모와 힘을 가진 반인반수의 거인이었다. 머리 뒤쪽에는 눈에서 불을 내뿜는 100개의 용머리가 돋아 있고,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하는 듯한 목소리를 지녀 모든 신과 인간을 공포에 떨게 했다.

 

온몸을 덮은 깃털과 날개는 늘 스스로 일으키는 격렬한 폭풍에 휘날리고 있었다. 하늘에 어깨가 닿고 머리카락은 별들을 빗질할 정도로 거대하고, 두 팔을 벌리면 세계의 동쪽과 서쪽의 끝에 이르고, 날개를 활짝 펼치면 태양을 가려 어둠이 내렸다.

 

힘은 또 얼마나 센지 하늘과 땅을 찢을 정도이고 그가 지나간 곳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버리니 올림포스 신들이라 할지라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오직 제우스만이 그를 대적했고, 천신만고 끝에 티폰의 머리를 번갯불로 내리쳐 소각한 뒤 에트나산에 던져 영원히 가둬버렸다. 


티폰의 아내 에키드나(Echidna)는 그리스어로 ‘살모사’를 뜻한다. 그녀 역시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타르타로스의 딸이다. 상체는 긴 속눈썹을 깜박이는 아리따운 여성이며, 하체는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세상과 멀리 떨어진 음산하고 외딴 동굴에 살면서 밤이 되면 가축이나 나그네를 사냥해 잡아먹는 요물이다.

 

에키드나는 티폰과의 사이에서 케르베로스·히드라·네메아 사자·키마이라 같은 끔찍한 괴수들을 낳았다. 키마이라는 페가수스를 탄 벨레로폰에게,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죽는 등 나중에 신화의 영웅들에 의해 자식들을 모두 잃는다. 


티폰과 에키드나의 딸 키마이라(Chimaera)는 머리는 사자, 몸은 염소, 꼬리는 뱀 혹은 용 모양인 하이브리드 야수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괴물 중 하나다. 하나의 생물체 안에 서로 다른 종의 유전 형질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인 ‘키메라(chimera)’라는 생물학 용어는 이 괴물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청동상인 ‘아레초의 키마이라’를 보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키마이라는 입에서 불을 뿜어 사람과 가축을 해치고 숲과 농작물을 태워 황폐화시켰다. 결국 많은 괴물을 죽인 용사 벨레로폰(Bellerophon)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케르베로스(Cerberus)는 히드라와는 남매, 네메아의 사자와는 형제지간이다. 머리가 세 개로, 하나는 하데스의 지하세계 입구에서 죽은 자의 혼을 맞이하고, 다른 하나는 산 자의 침입을 막으며, 또 다른 하나는 무한지옥 타르타로스를 빠져나가려는 혼백들을 감시한다.

 

주둥이에서는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등에는 수많은 뱀이 붙어 꿈틀거리며 꼬리 역시 여러 마리의 뱀으로 되어 있다. 한번 들으면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다는 그 날카로운 쇳소리로 짖어대며 턱밑으로 늘 더럽고 끈적한 침이 흘러내린다. 

 

그리스의 아르고스 근처 늪지대인 레르네에 살고 있는 히드라(Hydra)는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거대한 독뱀이다. 머리를 하나 자르면 금방 그 자리에 두 개가 새로 생겨 아무도 죽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매우 강력한 독을 갖고 있어 히드라의 독이 닿거나 그것이 내뿜는 숨을 살짝 들이마시기만 해도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천하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히드라의 대가리를 자를 때마다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불로 지져서 새로운 머리가 못 나오도록 하는 꾀를 써서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

 

한편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골짜기와 티린스와 미케네까지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을 물어 죽이는 네메아의 사자도 퇴치한다. 이 괴물 사자의 가죽은 어떤 화살과 창·칼로도 뚫리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나무 몽둥이로 사자의 머리를 가격한 후 30일의 낮과 밤 동안 계속 목을 조른 끝에, 마침내 괴수를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죽은 사자의 가죽을 벗겨서 갑옷으로 입고 다녔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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