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연인에게 살해당한 거인 사냥꾼 오리온

2024.01.09 10:30:00

우리 모두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의 주인이다. 지구 어느 곳에 살든, 부자건 가난하건,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만은 누구라도 저 광활한 우주를 오롯이 홀로 소유한 부자가 된다.

 

별을 보며 소원을 빌고, 꿈을 꾸고, 영감을 받고, 때로는 이 세상의 유한한 삶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겨울철은 온 세상이 꽁꽁 어는 춥고 황량한 계절이지만, 밤하늘만은 어느 때보다 매혹적이고 풍요롭다. 고요한 겨울밤 어떤 별자리들을 볼 수 있을까?


큰 개, 작은 개와 함께 사냥하는 거인 오리온
겨울철은 유난히 밝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자리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밤하늘은 안드로메다은하와 오리온 대성운,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과 히아데스 산개성단 등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은하와 성운·성단으로 풍성하다. 

 

사계절 별자리 중 가장 밝고 화려한 오리온자리(Orion)도 겨울철에 가장 잘 보인다.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와 리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 황소자리의 알데바란, 마차부자리의 카펠라 등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 


오리온자리는 큰 개와 작은 개를 거느린 오리온이 사냥하고 있는 형상으로, 외뿔소자리와 황소자리 사이에 있다. 오리온자리는 국제천문연맹(IAU)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88개 별자리 중 스물여섯 번째로 크다. 에리다누스자리와 토끼자리가 오리온의 발밑에 있고, 쌍둥이자리는 그의 머리 위에 있다.

 
알파별은 오리온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분에 있는 베텔게우스로서, 아랍어로 ‘겨드랑이 별’이란 뜻을 가진 1등성 적색 초거성이다. 베타별은 왼쪽 발 부분의 리겔로서, 아랍어로 ‘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베텔게우스·시리우스·프로키온은 거대한 삼각형을 이루어 ‘겨울의 대삼각형’이라고 한다. 이 대삼각형은 겨울철 별자리를 찾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한다. 베텔게우스를 가운데에 놓고 시리우스, 프로키온, 리겔, 황소자리의 알데바란, 마차부자리의 카펠라, 쌍둥이자리의 폴룩스를 연결하여 ‘겨울의 대육각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리온의 허리띠(Orion’s Belt)’라고 불리는 오리온 허리 부분에는 세 개의 별(삼태성, 왼쪽부터 알니탁·알닐람·민타카)인 민타카·알니타크·알니람이 일렬로 있다. 이 세 별 밑 부분에는 가스 덩어리인 오리온 대성운(M42)이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로 빛나고 있다.

 

이 대성운 중앙에는 트라페지움(Trapezium)이라고 불리는 사다리꼴 모양의 부등변 사각형을 이루는 네 개의 별이 있는데, 청백색 고온의 별들로서 이들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오리온 대성운이 빛나고 있다. 이러한 가스 덩어리가 오리온 대성운 자리 전체를 덮고 있으며, 일부는 빛을 가려 말머리성운 같은 암흑성운을 만든다. 말머리성운은 말머리를 닮았기 때문에 가장 잘 알려진 성운 중 하나다.       


오리온과 디아나의 금단의 사랑
거대한 오리온자리에 걸맞게 오리온은 그리스신화의 거인 사냥꾼이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키 크고 힘센 미남이어서 도도한 처녀 여신 디아나마저 그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디아나의 쌍둥이 남매인 태양신 아폴로는 성격이 사납고 교만한 오리온이 순결하고 고귀한 그녀와 어울리지 않은 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 사이를 갈라놓을 계략을 꾸민다. 어느 날 바다에서 머리만 내놓고 헤엄치고 있는 오리온을 보고 디아나에게 저것을 쏘아 맞힐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디아나는 오리온을 향해 화살을 쐈고, 결국 그는 연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신이 방해하려고 마음먹은 이상 그 비극적 운명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뒤늦게 해변으로 떠내려온 오리온의 시신을 보고 슬픔에 빠진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자기 사냥개들에게 그 주위를 지키게 했는데, 그 사냥개들이 큰개자리와 작은개자리가 된다. 


그리스신화에서 큰개자리와 작은개자리는 일반적으로는 오리온의 사냥개로 알려져 있다. 다른 버전의 신화에서는 악타이온이 자신과 님프들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자, 디아나가 격분해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신하게 했고, 이후 그가 기르던 사냥개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다.

 

 

사냥개는 주인을 죽인 줄도 모르고 사슴을 잡아놓은 채 악타이온을 계속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굶어 죽었다. 제우스는 사냥개를 측은하게 여겨 하늘로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준다. 겨울철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별자리로, 이 별자리 안의 별인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달의 여신 디아나(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는 사냥과 궁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순결을 지키기로 맹세한 님프들과 사냥개들을 거느리고 숲에서 사냥하며 자유롭게 살았다. 겁탈의 위기에 처한 소녀나 처녀들, 님프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오리온은 유일한 연인이었다. 오리온과 디아나의 사랑 이야기는 미국 작가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의 <신화의 시대>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는데, 실수로 연인을 쏘아 죽였다는 비극적인 서사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던 것 같다.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Johann Heinrich Tischbein)은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그림을 그린 독일 화가다. 티슈바인의 ‘아르테미스와 오리온’은 오리온이 사냥개들에 둘러싸인 채 디아나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냥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오리온과 디아나가 함께 숲에 살며 사냥 친구이자 연인으로 지내는 모습이다. 티슈바인은 주로 귀족의 초상화와 역사화나 신화를 그렸는데, 그래서인지 오리온과 디아나의 모습은 신화 속 인물이라기보다는 당대 귀족들의 모습을 그린 것같이 보인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다니엘 세이터(Daniel Seiter)는 죽은 오리온을 애도하는 디아나의 모습을 그렸다. 한 여인이 구름 위에 살포시 앉아 슬픈 표정으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고 있다. 초승달 모양의 머리 장식으로 보아 여자는 달의 여신 디아나이며, 남자는 오리온이다.

 

세 인물이 그림의 중앙을 삼각구도로 꽉 채우고 있고, 왼쪽의 남자가 입은 붉은색의 옷과 오리온의 밑에 깔린 푸른색 천, 그리고 여신이 걸친 분홍빛 옷이 배경의 어두운 색조 속에서 조화롭게 빛난다. 죽은 오리온의 나체는 시신을 묘사했다기보다 화실의 누드모델이 포즈를 잡은 듯 보이며, 디아나 역시 옷을 누드를 살짝 가리는 보조물로 사용하여 요염한 자세를 더욱 부각했다. 세이터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이라는 서사적 스토리보다는 누드의 아름다움의 표현에 초점을 둔다. 

 

시력을 잃고 태양을 찾아 헤매는 오리온 
오리온은 그리스신화의 수많은 남성 신들이 그렇듯 못 말리는 난봉꾼이어서, 디아나 외에도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오리온은 키오스섬의 왕 오이노피온의 아름다운 딸 메로페에게 구혼한 적이 있다. 왕은 섬을 황폐화시키는 사나운 야수들을 없애주면 공주와의 혼인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오리온이 야수들을 모두 죽인 후에도 왕이 두 사람의 결혼을 거부하자, 그는 메로페를 강제로 취했다. 이에 격노한 오이노피온이 잠든 오리온의 눈을 뽑아 바닷가에 버린다. 


시각을 잃은 오리온에게 세상의 동쪽 끝까지 가서 태양신이 대양에서 떠오르는 순간 그 빛을 보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탁이 내려진다. 오리온은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라면 앞을 볼 수 없는 그가 동쪽 끝까지 갈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찾아간다. 오리온을 동정한 헤파이스토스는 조수 케달리온으로 하여금 길을 안내하도록 한다. 오리온은 마침내 케달리온을 어깨에 태우고 목적지에 가서 아침의 태양을 보며 시력을 회복한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holas Poussin)의 ‘오리온이 있는 풍경: 시력을 잃고 태양을 찾아가는 오리온’은 이런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손 떨림 증세로 인해 그림 그리는 일이 다소 어려워졌던 그의 인생 말년에 제작되었지만,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가 뛰어난 풍경화다.

 

푸생 특유의 이상화된 풍경 속에 오리온이 더듬거리며 길을 가고 있다. 거인 오리온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큰 거대한 사냥용 활과 화살통을 든 채 나무가 우거진 시골길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중이다. 오리온의 건너편 한쪽에는 폭풍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구름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다.

 

이는 폭풍이 곧 사라지고 오리온은 머지않아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 광선을 보고 시력을 찾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 구름 위에는 초승달 머리 장식을 한 달의 여신 디아나가 왼쪽 어깨에 올빼미를 얹은 채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기대어 서 있다. 케달리온은 오리온의 발밑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헤파이스토스로서 길을 가르쳐 준다. 다른 두 명의 남자는 그늘진 길에 있다. 저 멀리 등대가 있는 바다가 보인다.

 

오리온과 독전갈, 쫓고 쫓기는 하늘의 숨바꼭질
한편 오리온자리는 황도 12궁 중 여덟 번째 별자리인 전갈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화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내가 사냥하지 못할 짐승은 없다’라고 떠벌리고 다닌 오리온의 자만심을 괘씸하게 여긴 헤라 여신이 그를 죽이려고 전갈을 보냈다고 한다. 전갈은 치명적인 독침이 들어 있는 꼬리를 휘두르며 오리온을 맹공격했지만, 결국 죽이지 못했다(다른 출처에 의하면 전갈에게 물려 죽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헤라는 전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별자리가 되어서도 전갈과 오리온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전갈자리가 떠오를 때면 오리온자리가 서쪽 하늘로 달아나 져버리고, 전갈이 하늘을 가로질러 쫓아 내려가면 오리온은 동쪽에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전갈은 영원히 오리온을 죽이지 못하고, 오리온 역시 끝도 없이 전갈을 피해 도망 다니는 모양새다.


전갈자리는 낚싯바늘로 알려진 갈고리 모양의 별들로 인해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가장 밝은 별은 안타레스자리다. 이 별의 이름은 ‘화성의 라이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별의 붉은 루비색이 화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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