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거점국립대인 강원대는 2015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 등급을 받았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헌영 총장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한 김헌영 강원대 총장은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를 했다.
1993년 강원대 기계의용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공과대학 부학장, 강원의료융합인재양성센터장, 기획처장, 정보화본부장, 아이디어팩토리사업단장을 거쳤다. 김 총장은 2016년 총장에 취임한 뒤 분을 쪼개 쓰며 교육부 관계자와 교수진들을 만났고, 강원대를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제24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을 역임하면서는 강원대에서 겪었던 일들이 비단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님을 자각하고, 한국 고등교육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뛰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숙원사업이었던 ‘1도 1국립대학’을 통해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당당히 선정되며, 강원도 14개 대학 중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원년으로 삼게 되었다.
▶연임 강원대 총장으로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았습니다. 지난 8년의 소회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원대가 발전한 모습을 생각하면, 대학의 일원으로 무척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2016년 총장으로 취임한 이래, 강원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점국립대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죠. 총장 취임 이듬해인 2017년 개교 70주년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 구성원 모두가 혁신에 힘썼고, 1년 만에 ‘자율개선 대학’으로 선정돼 대학의 명예와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미래사회에 필요한 창의적이고 협동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체계 구축에 중점을 두었으며,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상생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캠퍼스별 특성화 전략을 통해 지역 맞춤형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을 맡아 여러 개혁을 이뤄내기도 하셨죠.
강원대 총장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교협 회장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육재정 확충과 규제 개선 없이는 고등교육의 혁신적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당시 교육부장관과 공동위원장으로 ‘고등교육정책 공동 TF’를 구성·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들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재정 ▲평가 ▲규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 결과 고등교육 분야 전체 예산을 전년 대비 7.5% 증액한 10조 8,000억 원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전년 대비 2,343억 원을 증액한 8,031억 원 확보, BK21 플러스사업도 전년 대비 1.5배 증액된 4,080억 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대학평가 부문에서도 기존의 획일적인 상대평가와 정부 주도의 양적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한 점과 12건의 규제 개선 등의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최근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 도입과 ‘대학기본역량진단 폐지’ 등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습니다.
▶총장실 벽에 걸린 족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해불양수(海不讓水)’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인데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총장에 취임했을 때, 중학교 시절 저를 아껴주셨던 은사님께서 ‘해불양수’라는 글귀를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포용력과 관용의 교훈을 담고 있죠. ‘실사구시’는 강원대의 건학 이념입니다. ‘실질적인 사실을 추구하고 진리를 찾는다’는 뜻이죠.
‘해불양수’는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포용하는 자세를, ‘실사구시’는 실천적인 태도와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강원대의 교육 방향성과 철학을 뜻합니다. 이 두 글귀를 집무실과 회의실에 하나씩 걸어두고 매일 바라보며, 총장에 취임하면서 다짐했던 처음의 마음가짐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최근 강원대가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해 나갈 계획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강원대는 강릉원주대와 함께 ‘강원 1도 1국립대학’ 모델로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강원 1도 1국립대학’은 공유·연합·통합의 복합형 통합모델입니다. 4개 캠퍼스가 특화 분야를 공유하고,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연합하며,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부분은 통합하는 방식으로 각 캠퍼스의 특성을 살려 지역 중심의 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개념이죠. 춘천·삼척·강릉·원주 4개 캠퍼스를 중심으로 ‘국제교류혁신센터’, ‘집중교육센터’, ‘창업미네르바스쿨’, ‘인공지능 기반 LRS 공유대학’ 등을 통해 학생 중심 교육을 실현해 나갈 계획입니다.
거버넌스와 관련해서는 ‘캠퍼스 총장제’를 도입해 각 캠퍼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할 겁니다. 춘천·삼척·강릉·원주 등 각 캠퍼스는 ‘정밀의료’, ‘액화수소’, ‘신소재’, ‘디지털헬스케어’ 등 캠퍼스별 특성화 전략으로 지역 맞춤형 성장 동력을 제공하며, 지역 사립대학까지 포함한 지역혁신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런 특성화 전략은 지역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지역의 현안과 난제 해결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역대학이 위기입니다. 학령인구도 감소하고 있고, 수도권 쏠림 현상은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역대학의 미래, 어떻게 보시나요.
지역대학의 경쟁력은 지역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의 중요한 인적·물적·문화적 자산이며, 지역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전국에는 380여 개 대학이 있으며, 약 70%가 지방에 있죠.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대학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것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위치한 많은 대학은 이미 마련된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엄청난 교육 및 연구 인프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역량과 인재를 바탕으로, 지역기업을 육성한다면 지방소멸 위기극복과 국가 균형발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인재는 어떤 소양과 능력을 갖춰야 할까요?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러한 융합의 시대에는 학생들의 협업능력을 강화하고, 전문지식과 함께 폭넓은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산업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입니다.
저는 이를 ‘창의·협동인재’와 ‘T형 융합인재’로 설명합니다. 학문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산업에 대한 이해와 협력 능력을 갖춘 인재죠. 학생들이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는 동시에 다른 학문 분야와 산업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겁니다.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고등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요?
대학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수도권대학이나 거점국립대도 생존을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국·공립대학은 국가기관으로서 설립목적 및 지역여건 등을 고려하여 사립대학과는 차별화된 공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안정적이고 집중적인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국립대학이 지역 특화 인재 양성, 고등교육 기회 보장, 기초·보호학문 육성, 지역 및 대학과의 연계·협력과 같은 책무성과 공적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거점국립대는 지역의 주력산업과 미래 전략산업 분야를 특성화한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고, 지역 사립대와 전문대는 지역산업과 연계된 분야를 특성화해 ‘강소(强小)대학’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수도권은 설립 목적에 따른 교육연구중심 대학으로, 지역대학은 특성화를 기반해 지역사회와 연계·협력하는 대학으로 차별화하여 성장·발전해 나가도록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수도권 대학은 우수한 교수진을 바탕으로 한 석학 양성 등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고, 지역대학은 지자체 및 기업체, 군부대 등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학입시 등 우리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과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시·도교육청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은 활발한 교류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 초·중등교육에서 대학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중등교육은 대학교육이 어떠한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질문해야 합니다. 대학교육에서 필요한 기본 역량 준비 없이 입시만을 대비하는 우리의 초·중등교육에서는 발전적인 미래를 그리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대학입시까지만 고민하고 그다음의 교육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대학입시는 교육의 종착점이 아니라, 교육단계 간 유기적인 연결고리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입제도는 학생이 대학에서 학습을 이어갈 수 있는 기본소양을 갖추었는지 검증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초·중등교육 간 연계를 강화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 진로계획을 고려해 대학에서 필요한 지식과 역량은 무엇인지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고교학점제 시행, 대학과목 선이수제(AP) 정착을 위해 초·중등교육과 대학, 시·도교육청과 지자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융합교육위원회’ 등을 통해 일관된 교육과정과 정책방향을 정립하고,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 간의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며, 이는 교육 단계별 통합을 촉진하고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