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별 처녀 아스트라이아 & 봄 처녀 페르세포네

2024.03.05 10:30:00

 

매서운 추위가 지나고 화사한 꽃과 따스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봄은 가족·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다가 별을 관측하면서 추억을 쌓기에 좋은 계절이다. 봄이 오면 밤하늘에서 찬란한 별자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황도 12궁’ 중 하나인 처녀자리는 단연 돋보이는 봄철의 대표 별자리다.    

 

봄철의 대표 별자리, 처녀자리
3월부터 6월까지 가장 눈에 띄는 봄철 별자리는 바다뱀자리·처녀자리·큰곰자리다. 바다뱀자리는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머리 아홉 달린 음습한 늪의 괴물 히드라를 나타내는 별자리로,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주 밝은 7개의 별로 구성된 큰곰자리(북두칠성)는 가장 잘 알려진 별자리 중 하나다. 일 년 내내 북반구의 밤하늘에서 보이지만, 특히 4월에 관측이 잘 된다. 


이외에도 봄철 별자리에는 사자자리·게자리·목동자리·왕관자리·천칭자리·육분의자리·까마귀자리 등이 있다. 사자자리는 밤하늘의 서쪽 게자리와 동쪽 처녀자리 사이에 자리 잡은 황도 12궁의 별자리 중 하나다. 히드라와 함께 헤라클레스에게 퇴치된 그리스신화 속 괴물 사자를 나타낸다. 게자리 역시 황도 12궁에 포함된 봄 별자리이며, 사자자리와 히드라 사이에 보인다. 게자리는 헤라클레스가 살해한 고대 그리스신화의 괴물 게를 상징하는 별자리다.


그중에서도 ‘황도 12궁’ 중 하나인 처녀자리는 단연 돋보이는 봄철의 대표 별자리다. 알파별 스피카(Spica)는 밤하늘에서 15번째로 밝은 별이며, 두 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근접 쌍성이다. 지구에서 약 262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스피카’라는 이름은 ‘처녀의 이삭’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에서 처녀자리는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 혹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를 상징하며, 스피카는 여신이 손에 쥐고 있는 밀 이삭과 관련이 있다.


북반구에서 처녀자리를 보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4월이다. 처녀자리의 스피카, 목동자리(Boötes)의 아르크투루스(Arcturus), 사자자리 데네볼라(Denebola) 등 세 개의 별은 ‘봄의 대삼각형’을 이루며, 봄철의 다른 별자리들을 찾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북두칠성의 국자 자루 곡선을 따라 남쪽으로 30도 정도 쭉 내려오면 목동자리의 알파성인 아르크투루스가 보이고, 다시 그만큼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처녀자리의 알파성인 스피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북두칠성 자루에서 시작해 아르크투루스를 지나 스피카까지 이어지는 곡선을 ‘봄의 대곡선’이라고 부른다. 가을에는 태양이 처녀자리 근처를 지나가기 때문에, 처녀자리는 가을 밤하늘에서는 볼 수가 없고, 태양이 처녀자리의 반대편인 춘분점에 가 있는 봄에 잘 보인다.

 

처녀자리 은하단
처녀자리는 머리털자리와 함께 은하계 밖의 은하나 은하단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다. 처녀자리 은하단은 최대 2,000개 정도 은하가 한 무리가 된 거대한 은하단으로, 우리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단이다. 우리로부터의 거리는 약 6,000만 광년이며, 약 초속 1,180km의 속도로 멀어져 가고 있다. 이 은하단은 별들로 가득 찬 은하들뿐만 아니라 아주 뜨거운 가스도 포함하고 있다.


 

 

두 개의 태양을 가진 외계행성
영화 <스타워즈>에서는 두 개의 태양을 가진 행성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의 고향인 ‘타투인(Tatooine)’ 행성에서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뜨고 지는 광경이 나온다. 이 영화 속 상상의 장면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천문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두 개의 태양을 가진 외계행성 두 개를 발견한 것이다. 이 두 개의 외계행성은 처녀자리 방향으로 지구에서 약 500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행성에 갈 수만 있다면, 영화에서와 같은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을 앞서간 놀라운 사례다.

 

처녀자리에 얽힌 두 가지 신화
처녀자리는 다양한 문화권의 여러 여신들과 관련돼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이시타르, 고대 이집트의 이시스, 고대 그리스의 아테나, 로마신화의 케레스,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a),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 등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처녀자리 이야기는 아스트라이아와 페르세포네 신화다. 화가들은 그림에서 이 여신들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
제우스와 티탄족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스트라이아는 정의의 여신이다. 한 손에는 법률의 여신이었던 어머니 테미스에게 물려받은 천칭(저울)을 들고 정의와 불의를 공정하게 판단했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들고 인간 세상의 죄를 엄중하게 처벌했다.


처녀자리 근처에는 천칭자리가 있다. 제우스는 아스트라이아가 들고 다니던 천칭을 하늘에 올려 인간들이 그녀의 업적을 기억하도록 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이 별자리를 항수(亢宿)라고 부르는데, 재판과 송사를 담당하는 별자리다. 이 때문에 동양에선 재판이 있기 전날, 천칭자리의 별이 빛나면 송사에서 이길 징조라며 반겼다고 한다. 동서양 모두 재판과 관련된 신화를 가지고 있는 별자리인 셈이다. 천칭자리는 황도 12궁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졌고, 물병자리와 함께 유일하게 생물체가 아닌 물건을 나타낸다.


로마시인 오비디우스(Ovidius)가 쓴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 의하면, 태초에 인간은 크로노스(사투르누스)가 다스리는 황금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신과 인간이 어울려 같이 살며, 죄나 전쟁은 물론 어떤 고통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 또한 먹을 것이 풍족하여 애써 일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한 제우스가 세상을 다스리는 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은의 시대에는 추위와 더위가 생기고, 땅을 힘들여 경작하는 수고를 해야 했으며, 농업으로 잉여 생산량이 늘자 인간들 사이에 다툼과 갈등이 생겼다. 그러자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렸는데, 아스트라이아만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인간들을 교화하려고 했다. 청동시대가 되자 인간은 더욱 사악해졌고,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벌였다.

 

 

이어서 철의 시대에는 불의·폭력·살육 그리고 황금 숭배가 극도에 달했고, 끝까지 지상에 머물며 정의를 설파하던 아스트라이아마저 결국에는 하늘로 올라가 순수와 결백을 상징하는 처녀자리가 되었다. 


살바토르 로사의 ‘아스트라이아’는 철의 시대가 오자, 인간들의 타락과 불의에 실망한 정의의 여신이 지상을 뜨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두 쌍의 목동 커플이 고결한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자신들을 떠나는 것을 슬퍼하고 있다. 특히 한 명은 아스트라이아의 손을 잡고 만류하는 것 같다.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가 그린 정의의 여신도 있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라파엘로에게는 바티칸 궁전의 네 개의 방에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그 네 개의 중 하나가 교황들이 직무를 보고 문서에 서명했던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이다. 서명의 방 천장에는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
한편 처녀자리는 대지와 곡물, 생장의 여신 데메테르, 혹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와도 관련이 된다. 어느 날 페르세포네가 바다의 요정들과 함께 꽃밭에서 놀고 있는데 아주 예쁜 수선화가 눈에 띄었다. 꽃을 꺾으려 발걸음을 옮기자 갑작스레 땅이 갈라지면서 저승의 신 하데스가 탄 검은 마차가 나타나 그녀를 납치해 하계로 들어가 버린다.

 

페르세포네가 감쪽같이 사라진 후, 데메테르는 슬픔에 빠져 딸을 찾아 헤매며 대지를 돌보지 않아 땅은 메마르고, 곡물이 자라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굶주렸다.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하계에 보내 하데스와 협상하도록 했고,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던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석류를 주었고, 그녀는 석류씨 네 알을 먹었기 때문에 일 년 중 4개월은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야 했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와 떨어져 사는 이 기간은 땅이 황폐해지는 불모, 혹은 죽음의 시간이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다시 올라와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봄은 대지가 되살아나 활기를 띠게 되고 곡물이 생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어머니 데메테르가 대지의 여신이라면, 페르세포네 역시 씨앗의 여신이다.

 

처녀자리는 봄이 되면 동쪽 하늘에 나타나기 때문에, 고대인은 지하세계에서 올라오는 페르세포네의 모습으로 상상한 것 같다. 처녀자리를 아스트라이아가 아닌 페르세포네와 연관시키면, 알파별 스피카는 그녀가 손에 보리 이삭을 들고 있는 모양새로 해석된다. 스피카는 ‘곡물의 이삭’이라는 뜻으로, 옛사람들은 밤하늘에 스피카가 뜨면 씨 뿌릴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페르세포네 신화는 생장과 소멸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공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죽음 속에 생명이 있고, 생명 속에 죽음이 있다. 사실 페르세포네가 하계에 머무는 4개월은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언 땅속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재생을 위한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페르세포네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계절의 변화를 인간과 자연의 ‘죽음과 재생의 영원한 순환’으로 설명한 방식이었다.

 

오늘날에는 계절 변화가 지구 축의 기울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은 자연의 주기를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시적 상상으로 이해하려 했고, 덕분에 우리는 이토록 매혹적인 이야기의 유산을 갖게 되었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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