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난의 교육생각] 서·논술식 평가, 서두를 일 아냐

2026.08.10 18:35:06

한 조직에서 업무 성과가 우수한 직원을 선정하는 평가에 동료평가를 일부 반영한 적이 있는데 결과는 업무 성과나 협업과는 무관하게 나타났다. 근무경력이 긴 직원들은 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근무경력이 짧거나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은 하위 평가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동료평가를 승진에 반영한 목적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평소 직원들 간의 소통과 교류, 협업 등이 쉽지 않은 근무 여건은 그대로 두고, 평가 방식만 변경했기 때문이다.

 

최근 초·중·고교 내신과 수능시험에서 학생 학업성취도 평가 방식을 반영해 창의성과 사고력을 겸비한 미래인재를 양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5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능시험과 내신에 서·논술형 평가 도입, 수능과 고교 내신 전과목 절대평가로 전환, 수시·정시 시기 통합” 등 대학입학전형제도 개편 추진을 발표했다.

 

AI 시대에는 획일적인 교육을 지양하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국교위가 검토 중이라고 제시한 대로 수능과 내신 평가 방식을 객관식에서 서·논술형으로 변경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인재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창의적 인재 양성은 모두 공감

 

평소 학교와 사회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교육내용과 수업방식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고, 교원의 교육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는 학교 여건도 그대로인데, 수능과 내신의 평가 방식만 바꾼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먼저 교육내용과 수업방식이 창의적이 될 수 있도록 학교를 혁신해야 한다. 그 부분에 교육재정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국가는 교육예산이 교육력 제고를 위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고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교교육의 혁신이 어느 정도 체감된 후에 평가 방식을 변경해도 늦지 않다.

 

일부에서는 동시에 하면 된다는 논리를 펼 수 있으나 이는 적절하지 않다. 학교 교육의 혁신을 전제로 제도 도입 시기를 미리 정했는데, 혁신이 미진해서 큰 혼란과 부작용만 초래된 경험을 수 차례 해왔다. 국교위가 2027년 3월 말에 확정할 예정인 ‘2028-2037 국가교육발전계획’에 서·논술형 평가 방식으로의 변경을 서둘러서 포함해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규칙이 바뀌면 새로운 질서를 찾을 때까지 엄청난 흙탕물이 생기면서 사회적인 갈등이 야기될” 것은 자명하다. 그 경제·사회·교육적 비용은 너무나 크다.

 

고교학점제와 연동하여 도입이 필요한 절대평가 등을 먼저 검토하고, 서·논술형 평가는 학교 혁신에 대한 확실한 지원을 바탕으로 여건이 성숙된 후에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 당장 도입을 검토할 경우 사교육비 급증 등 부작용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교사의 교육권부터 바로해야

 

실제로 2020년 대비 2024년까지 4년 동안 사교육비 총액(19.4조 원→29.2조 원)과 전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30.2만 원→47.4만 원)는 폭증했다. 2025년에는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총액이 27.5조 원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사교육 참여학생 월평균 사교육비는 60.4만 원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고, 일반교과 사교육비는 7.9% 늘었다. 특히 사회·과학(13.8%)과 국어(13.1%)는 두 자리수 비율로 급증했다.

 

서·논술형 평가로의 변경은 그 자체로도 일반교과 및 입시컨설팅 사교육비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사교육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입에서 서·논술형 평가 방식 개편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시대와 국민, 대통령이 원하는 교육발전은 특정 평가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혁신이다. 국교위와 교육부는 예상되는 막대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시기를 찾아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효능감 있는 교육정책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과장(전 대한교육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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