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사교육의 인지적 효과는 얼마나 일찍, 많이 가르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키고 스스로 탐색할 여지를 얼마나 보장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어·수학 조기 노출 자체는 후속 학습의 자원이 될 수 있지만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정답 중심 학습에 치우치면 새로운 문제를 탐색하고 해결하는 능력의 발달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제광 한국인지과학회 회장(동국대 체육교육과 부교수)은 ‘육아정책포럼’ 2026년 여름호에 실린 ‘영유아 사교육에 관한 인지과학적 분석’에서 발달 인지과학과 계산 인지과학 관점으로 영유아 사교육의 영향을 분석했다. 통계적 학습, 베이지안 사전 분포, 탐색-활용 균형, 핵심 시스템과 개념 부트스트래핑 등 네 가지 인지 기제를 토대로 조기교육의 효과와 비용을 살폈다.
분석의 핵심은 조기 노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데 있다. 영유아기에 영어와 수학을 접하는 것은 통계적 학습에 필요한 입력을 늘리고 후속 학습의 토대를 넓힐 수 있다. 다만 같은 시간을 학습하더라도 획일적이고 제한된 자극보다 다양한 형태의 자극을 경험할 때 새로운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인지 범주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조기 노출이 입시와 평가에 맞춘 반복 학습으로 바뀌는 경우다. 정형화된 문제와 풀이법을 반복하면 특정 유형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탐색의 폭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는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이 평가 형식에 종속되면서 명시적·직접 교수와 정답 강화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문제로 짚었다.
특히 영유아기는 여러 가능성을 폭넓게 탐색하는 인지적 특성이 가장 강한 시기로 분석됐다. 0~7세는 수와 공간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핵심 시스템과 음소 변별, 통계 학습,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언어 학습 등이 활발하게 작동하며 새로운 가설을 탐색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이 때문에 형식적·직접 교수보다는 자연스러운 노출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학습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발달 특성에 부합한다고 제안했다.
국내 연구 결과도 함께 제시됐다. 2024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에서는 영유아기 학습 사교육 경험과 언어능력·문제해결력·집행기능 등 주요 인지발달 지표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정서와 자존감에서는 일부 부정적 관계가 관찰됐다. 이를 근거로 형식적 조기학습이 인지발달을 일률적으로 촉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학 선행학습의 경우 발달에 필요한 시간을 지나치게 압축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영유아가 수 단어를 외우는 것과 수의 원리를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과정으로, 핵심 인지체계와 숫자라는 기호가 연결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건너뛰고 알고리즘이나 풀이 절차를 먼저 익히면 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원리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평가 중심 교육이 탐색 시간을 잠식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자료에 인용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6세 미만 영유아의 사교육 참여율은 47.6%, 5세는 81.2%였고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은 7.8시간이었다. 연구는 사교육 시간이 늘수록 자유로운 탐색과 또래 상호작용, 자율적인 학습에 사용할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답을 찾는 훈련과 탐색 능력은 서로 다른 역량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새로운 문제를 탐색하려면 가설을 세우고 실패를 견디며 부분적인 정보를 연결하고 다른 방법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훈련만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충분히 기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발달단계에 맞는 조기교육을 위한 일곱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영유아기의 직관적인 핵심 인지체계와 기호학습을 연결하고 충분한 개념 형성 시간을 보장하는 한편 정형화된 문제풀이를 지나치게 일찍 주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발달 영역별 차이를 인정하고 일정한 탐색 시간을 보장하며 신체·감각·행위 경험을 통한 학습을 우선할 것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영어와 수학 모두 학습 시작 시점 자체보다 학습 방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독과 영상, 음악, 또래놀이, 의미 중심의 몰입 등 자연스러운 노출은 발달기의 학습 가능성을 활용하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탐색할 여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영유아 사교육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으로 단정하기보다 입력되는 경험의 다양성, 발달 시점에 맞는 인지 자원의 활용, 탐색 시간 보장 여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탐색 기회의 부족이 이후 학습에 미치는 영향 등 일부 주장은 이론적 추론과 횡단 자료에 근거한 만큼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종단 연구와 교수방법별 비교 연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