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서·논술형 평가, 무슨 의미 있을까

2026.09.08 10:00:00

 

사실 초등 교실에서 서·논술형 평가라는 단어가 낯설지는 않다.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평가 계획을 보면 대부분의 학교가 이미 수행평가의 형태로 서·논술형 문항을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 국어 시간의 글쓰기 평가, 사회 시간의 서술형 문항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아이들의 수행평가 답안지를 앞에 두고, 채점 기준표와 아이의 글씨를 번갈아 들여다본 적이 있다. 표현은 서투르지만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 답안과, 문장은 매끄럽지만 겉도는 답안 사이에서 점수를 가르는 일은 조심스럽다. 정해둔 핵심어는 쓰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낸 아이 앞에서 손이 멈춘다. 그런 순간마다, 이 채점 방식이 아이의 사고력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다가올 변화
지난 8월 5일, 이 대통령은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현행 객관식 중심의 수능 평가 방식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과 서·논술형 문항 도입을 포함한 중장기 대입 개편을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치르는 2033학년도 대입부터 새 제도가 적용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그렇다면 이 변화 앞에서, 무엇을 먼저 채워야 할까.

 

공정한 채점이 가능한가?
먼저 채점의 신뢰도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서·논술형 평가는 선택형 평가와 달리 채점자에 따라, 심지어 같은 채점자라도 상황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 타당도와 신뢰도 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선행 연구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초등 서술형 평가에 대한 한 교사 인식 조사가 있다. 절반이 넘는 교사가 평가 도구로서는 타당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채점 문항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고 답한 교사는 열에 여덟에 달했고, 채점이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교사가 그렇다고 느끼는 교사보다 많았다. 채점 기준표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 기준을 해석하는 몫은 결국 교사 개개인에게 남기 때문이다.


한 가지 역설도 짚어볼 만하다. 임용시험처럼 명확한 채점 기준안에 따라 정해진 핵심어와 논리 구조를 채점하는 방식이라면, 이는 결국 ‘정답이 정해져 있다’라는 점에서 객관식 평가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실제로 채점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조건 통제형 문항’이 거론된다. 제시문과 조건을 명확히 주어 답의 방향을 아예 통제하는 방식이다. 결국 답의 폭을 좁게 묶어둬야 채점이 공정해진다는 뜻이니, 앞서 말한 ‘정답이 정해져 있다’라는 지적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채점 기준이 좁게 수렴되게 설계될수록 서·논술형 본래의 취지는 옅어진다. 반대로 기준을 느슨하게 두면 이번엔 채점자 간 편차라는 문제로 되돌아온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초등 교실이라는 조건
여기에 초등 교실 특유의 사정도 더해진다. 중등교사가 한두 과목을 맡아 채점하는 것과 달리, 초등 담임교사는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대부분의 교과를 혼자 가르치고 채점한다. 서·논술형 문항이 전 교과로 확대된다면, 문항을 만들고 채점 기준을 세우고 학생 수만큼의 답안을 읽어 내려가는 일이 고스란히 담임교사의 몫으로 쌓인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스무 명 안팎인 교실에서, 이 부담은 절대 가볍지 않다.


발달단계에 대한 고려도 빠뜨릴 수 없다. 중·고등학생에 비해 문해력과 논리적 표현력이 형성되어 가는 단계에 있는 초등학생에게, 자기 생각을 글로 정교하게 표현해야 하는 평가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평가가 서·논술형 지필평가로 획일화된다면, 그동안 초등 교실이 공들여온 관찰과 피드백 중심의 과정 중심 평가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릴 위험도 있다. IB(국제 바칼로레아)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부산·대구에서 IB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참고하는 것과, 우리 교실 사정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틀만 그대로 옮겨오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무엇이 먼저 채워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교육부는 2029년까지 인공지능(AI) 평가 지원시스템을 도입하고, 채점 공정성 관리를 위한 교육평가 출제 지원센터 신설과 내신 평가 전문 인력 국가 인증제도 도입 계획을 밝혔다. 방향은 옳지만, 이런 지원 체계가 실제로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나 교육청 단위에서 채점 기준표를 함께 개발하고 공유하는 절차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도달 기준을 담은 기준표가 있어야 채점자 간 편차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초등 담임교사가 전 교과의 채점을 홀로 떠안지 않도록 다중 교차 채점 체계와 협의 채점 시간을 정규 업무 시간 안에 확보해야 한다. 셋째, 문항 개발과 채점 역량을 기를 연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넷째, 대입 변별력 약화가 낳을 수 있는 사교육 풍선효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등 단계에서는 전 교과 동시 전환보다 교과별·학년별로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넓혀가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동안 초등 교실이 공들여 쌓아온 과정 중심 평가와의 균형도 지킬 수 있다. 제도가 앞서가고 현장이 뒤따라가는 순서가 아니라, 현장의 준비 속도에 맞춰 제도가 걸음을 맞추는 순서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써낸 한 줄의 답안에는, 그 아이만의 생각이 담겨있다. 오늘도 교실 어딘가에서는 그 답안지 앞에 앉아 채점 기준표를 넘겨보는 손길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고민은 교사 한 사람의 힘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채점 기준을 함께 세우고, 채점자 간 편차를 줄이고, 사교육이 그 틈을 파고들지 못하게 막는 일은 결국 제도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이의 생각을 온전히 읽어 내고 공정하게 평가할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교실이 아니라 제도다.

권범석 경남 안청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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