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의 진짜 승부는 무엇인가?

2026.09.07 11:44:56

최근 매우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만드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했다. 지난 7월 2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가 국적심의위원회를 열어 세계적인 우수 인재 특별귀화 8명, 국적회복 8명 등 총 16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과했다고 한다. ​이번 명단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여성 최초의 예일대 종신교수이자 수학과 석좌교수이고 미국 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세계적 수학자 오희 교수와 첨단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밀자이 모하메드 연구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석학들이었다.

 

​세계 최고 학문의 봉우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들이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선택하고 한국 국적을 가슴에 품었다는 소식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다.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오직 ‘인적 자원’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자산이 다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쌍수를 들어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가슴 뿌듯한 자긍심 뒤편으로, 한 가지 냉정한 현실에 근거한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어렵게 모셔 온 이 세계적 석학들에게 과연 마음껏 연구하고 인재를 키울 ‘진짜 무대’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 싱가포르 등은 우리보다 앞서 월등한 조건에서 세계 인재들을 영입해 국가 발전의 선봉장이 되고 있다.

 

​지금 글로벌 무대는 그야말로 ‘인재 영입 전쟁(War for Talent)’의 한복판이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첨단 바이오 등 국경 없는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G1인 미국, G2인 중국을 위시로 아시아의 최대 부국 싱가포르, G3인 독일, G4인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파격적인 연구비 지원과 주거 혜택, 영주권 부여를 넘어 ‘연구의 자율성’을 통째로 보장하며 전 세계 석학들을 쓸어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법무부의 특별귀화 결정은 국가 차원에서 대단히 유연하고 선제적인 조치라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국적증서 하나 쥐여주고 꽃다발을 건네는 것으로 인재 유치 정책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국가 발전의 초석으로 삼을지 획기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이켜보자. 수억 원의 스카우트 비용과 국가적 예우를 표하며 모셔 온 석학들이 막상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에 입성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지독한 관료주의’와 ‘실적 위주의 낡은 평가 시스템’이다. ​아무리 예일대 석좌교수라 한들 한국 대학에 오면 연구계획서 서류 양식 맞추느라 밤을 새워야 하고, 단기 성과를 내라며 업무 부담과 논문 제출을 압박받는다. 세계적 인재를 모셔놓고 정작 ‘행정 서류 작성’이나 ‘논문 제조’로 압박한다면, 이것은 호랑이를 모셔 와서 동네 강아지처럼 대우하는 격 아니겠는가?

 

이제는 ​글로벌 석학과 더불어 청년 인재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뛰놀고, 그들의 지혜가 우리 아이들에게 유전되도록 인재 유치 정책의 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첫째, 서류와 규제가 없는 ‘학술 연구 자유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오희 교수 같은 세계적 수학자나 밀자이 모하메드 같은 공학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화려한 연구실 건물이나 몇 푼의 연구비가 아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자유'다. 귀화한 우수 인재와 국내 석학들이 연계된 연구 조직에는 정부의 까다로운 감사와 정량적 평가를 완전히 면제해 주는 ‘R&D 규제 프리존’을 제공해야 한다. 실패해도 좋다. 10년, 20년이 걸리는 난제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인재 우대 정책이다.

 

​둘째, 석학의 지혜가 교실로 흘러드는 일명 ‘도제식 융합 교육’을 구축해야 한다. ​특별귀화로 영입한 인재들의 가치는 그들 개인의 연구 성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들의 지적 자산이 대한민국 미래 세대에게 직접 이식되어야 한다. 대학의 학과 장벽을 허물고, 이들 석학과 국내 초·중·고·대학의 유능한 청(소)년들이 직접 만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국가 인재 도제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교과서 속 정답을 맞히는 수능형 아이들이 아니라, 오희 교수와 함께 정답이 없는 현대 수학의 난제를 놓고 밤새 토론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 않은가?

 

​셋째, 이중국적 인정 및 정주 환경의 ‘글로벌 표준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국적을 부여하는 절차는 시작일 뿐이다. 이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생활 및 교육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국인 우수 인재와 그 가족들이 언어와 문화적 장벽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의료·교육 복합 인프라를 확대하고, 이중국적 허용 범위를 첨단 학문 전 분야로 과감히 넓혀야 한다. “한국 국적을 가지는 것이 곧 세계적인 연구 자유를 얻는 것”이라는 소문이 글로벌 학계에 돌게 만들어야 한다.

 

​오희 교수를 비롯한 16명의 귀중한 인재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한 것은, 이 나라가 가진 역동성과 미래 가능성에 자신의 인생을 건 거대한 결단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결단에 화답해야 한다. 국적을 주는 생색내기용 행정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연구하기 좋은 나라, 가장 공정하고 자유로운 지적 생태계’로 대한민국을 개조해야 한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좁은 시험지 속에서 아이들의 눈빛이 꺼져가는 현재의 교실을 허물고, 세계 최고 석학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활기찬 배움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자랑스러운 ​K-팝과 K-방산이 세계를 호령하듯, 이제는 미래의 희망인 ‘K-지성’과 ‘K-교육’이 전 세계의 젊은 두뇌들을 끌어당기는 블랙홀이 되어야 한다. 귀화 국적증서를 들고 밝게 웃었을 오희 교수의 미소가, 대한민국 교육과 학계 전체가 함께 환하게 웃는 유의미한 출발점이 되기를 가슴 깊이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필자 개인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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