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교육 잡아야 민심 잡는다? … 희생양 삼지만 성공한 정부 없어”

2024.03.05 10:30:00

이유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

이유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은 업계에서 여걸(女傑)로 통한다. 적자생존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학원계를 두둑한 뱃심과 리더십으로 4년째 이끌고 있다. 지난 2020년 회장에 당선된 이후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미술학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사교육업계에 뛰어들어 34년째 외길을 걷고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협력적 공존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그는 학교든 학원이든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등록된 학원 수는 약 9만 1,600여 개. 업계에서는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종사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양질의 교육이지 값싼 교육이 아니다”
2024년 봄, 학원계가 날카롭다. 늘봄학교 초등 전 학년 시행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부 발표대로 하루 두 시간씩 늘봄 프로그램이 운영되면 학원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게 학원계의 분석이다.

 
이 회장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역대 정부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사교육 잡아 민심 달래기’가 또 시작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현 정부 땐 민생사범으로 규정하고 학원들을 희생양 삼더니, 윤석열 정부에선 ‘사교육 카르텔’로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사교육을 잡아야 민심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늘봄학교까지 끌어들여 영세학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학교 선생님은 물론 일반직 공무원과 공무직까지 모두 늘봄학교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학원총연합회 차원에서도 늘봄학교 대책 특별위원회 등을 구성,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늘봄학교가 전면 시행될 경우 연간 1조 3천억 원의 사교육비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늘봄학교에서 하루 2시간씩 무료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학원 뺑뺑이’는 없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인력도 공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늘봄학교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바우처를 제공, 학원에서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이 더 경제적이고 교육 효과도 높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돌봄이 필요한 학생은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거나 각 지역별로 거점학원을 지정, 돌봄기능까지 맡도록 한다면 늘봄학교를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양질의 교육이지 값싼 교육이 아니다”라면서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사교육 인프라를 무조건 배제하겠다고 나서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올 2학기부터 늘봄학교가 전국에서 시행된다. 오는 2026년엔 초등 전 학년으로 확대되는데 학원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소규모 영세학원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본다. 반면 대형학원들은 끄떡없을 것이다. 또 서울 등 대도시는 학원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충성도가 높아 영향이 적겠지만,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학원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학원 강사 등 100만 사교육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가장 위협받는다. 정부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직은 관망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가칭 ‘늘봄학교대책특별위원회’ 등을 구성, 대응을 준비 중이다. 국회 토론회 등을 열어 학원계의 입장을 전달할 생각이다.”


- 대규모 집회 등 집단행동에 나서자는 의견도 있다던데.
“속으로야 부글부글 끓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건 아직 없다. 올 1학기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행동에 나설지 판단할 생각이다.”

 

- 늘봄학교 시행 전에 교육부와 학원연합회 간 협의는 없었나.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적 시책에 학원계도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협조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없다.”

 

-늘봄학교에 대응해 학원 바우처 시스템을 구상 중인 것으로 들었다.
“학생들에게 정규수업이 종료된 후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고 음악·미술·컴퓨터·태권도학원이나 보습학원·공부방 등을 자유롭게 선택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수강료는 정부·지자체·수요자가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3분의 2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돌봄이 필요한 학생은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거나 각 지역에서 지정한 거점학원 차량으로 학생들의 이동을 돕고 돌봄기능까지 맡도록 한다면 늘봄학교를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물론 일반직과 공무직까지 반대하는 데 이를 무릅쓰고 학교에만 욱여넣으려는 것은 어리석다. 잘 갖춰진 학원 인프라를 활용하면 사교육비 경감과 돌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데 무조건 학원은 배제하겠다고 나서니 답답하다.” 

 

한편 국민의힘은 지난 1월 의무교육을 받는 초등학생 1학년부터 고등학생 3학년까지 학기가 시작하는 3월과 9월 새 학기 도약 바우처 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마련했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지원하고 교육에 투자하겠다는 목적이다. 다만 바우처가 학원비로 쓰이지 않도록 사용처를 제한했다.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 척결을 명분으로 사교육과 전면전을 선포한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역대 정부마다 사교육을 잡으면 민심을 잡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일부 대형입시학원들의 부정이나 불법 고액과외를 빌미로 사교육을 악마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학원을 없애 버리는 게 이 정부의 목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사교육 프레임에 갇혀 있더라.”

 

- 고액 수강료를 받는 대치동 일타강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교육이 먼저 명분을 제공한 것 아닌가.
“우리도 자성할 부분이 있다. 소위 스타강사들이 고가의 외제차량을 자랑하는 등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처신을 했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건 직후 연합회 차원에서 해당 학원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즉각 조치했다.”

 

-초·중·고교는 학생수 감소로 폐교가 늘고 있다. 학원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 학원은 대략 9만 1,6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저출산 등 여건이 악화되고 있지만,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다 보니 버텨내는 것 아닌가 싶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공교육 못지않게 사교육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는 물론 중동에서도 우리의 사교육 시스템을 많이 부러워한다. 실제 학원들을 찾아 자신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다. 특히 예체능 분야는 중동 국가들이 많이 원한다. 이제는 정부도 학원을 무작정 때려잡자고 나설 것이 아니라 교육산업으로 보고 지원할 때가 됐다. 학원을 교육서비스산업으로 인정해 준다면 해외 수출길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엄청난 블루오션이 눈앞에 있다.”

 

-학원도 영리만 추구할 게 아니라 사회적 공헌 활동도 필요해 보인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처럼 수많은 학원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미혼모·한부모가정·저소득층 등 소외계층 지원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얼마 전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MOU를 맺어 소외계층 학생들이 저렴하게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을 맡고 계신 배우 최불암 선생께서 도움을 요청해 흔쾌히 수락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대한민국도 모든 교육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앞 글자를 따서 편 가르기 할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상생하면서 저출산 등 국가적 위기에 함께 대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선생님이든 학원강사든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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