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에 대한 생각

2024.03.25 14:05:48

필자는 올해 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였다. 힘들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고맙고 감사한 세월이었다. 이제 식당에서도 기차에서도  ‘어르신’ 대접을 받는다.  동창들은 여기저기서 들리는 ‘어르신’ 호칭이 반갑지 않다고 한다. 필자그룹은 이 사회의 ‘어르신’으로 분류되는 연령 높은 층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만도 아니다. 신체의 강건함과 정신력의 예리함이 약해졌다. 강도 높은 체력과 정신의 긴장을 요구하는 일들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그릴 수 있게됨은 몹시 다행한 일이다.

 

얼마전 TV에서 미국과 일본의 실버타운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이 전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 주제였으나 ‘어르신’ 이 귓가에 맴도는 탓인지 자연스레 몰입하여 시청하게 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였다.

 

100만 명이상 거주한다는 미국의 한 곳은 50세 이상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으며 거주비용은 저렴하고, 모든 취미활동이 다 준비되어 있는 대단위 마을이었다. 일본의 사례는 기차역으로부터 10분 안에 드는 교통 좋은 곳에 있는 단층의 전원주택형이었다. 잔잔한 꽃과 나무들이 풍성한 단지였다. 기력이 약해질수록 할 일을 찾는 것은 중요하며 소소한 용돈은 생의 활기를 더해준다. 이 마을은 주민들이 마을의 마트, 약국, 청소 등 공동체에서 필요한 일들을 자체적으로 담당하며 용돈도 벌고 있었다. 하루 종일이 아니라 오전, 오후로 나누어 분담하여 일과 여유를 고루 나누었다.

 

위의 사례를 보며 필자가 원하는 노후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생각해보았다. 우선 실버타운이란 용어는 듣기 좋지않다. 용어에서부터 실버들만 사는 격리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미국식은 너무 크고 넓어 필자 취향이 아니다. 외향적인 성격이면 좋아할 듯하다. 일본식은 전원풍경이 좋고 주민자치로 스스로 마을을 위한 일거리를 찾고 용돈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도 실버들만의 공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버들만의 타운이 아닌 한 사례가 있다. 일반 아파트가 대부분인 동네인데 주민 대다수가 노령이고 은퇴자가 많다해서 우스개 소리를 듣는 지역이다. 주민을 위한 운동시설, 놀이시설, 병원, 식당 등이 아주 잘 되어 있어 편안하고 안전하여 처음 몇 년은 매우 살기 좋다고 느끼고, 그 다음은 무료한 천국이란다. 즐거운 천국이 되려면 무료함만 없애면 된다.

 

필자가 살고싶은 노후 거주지에 대한 얼개가 그려졌다. 도심 대단위 아파트 옆에 조성된 실버타운내, 텃밭있는 20평 전원주택이다. 일본 동경의 주민은 50대에 전원으로 나가 자연과 더불어 살고 70대가 되면 대도심의 20평 아파트로 들어와 살고싶어 한다고 한다. 노년에는 주변 가까운 곳에 병원, 운동시설, 예술의 전당, 식당과 카페 등 건강과 여가를 위한 관련시설, 수리가 필요한 집안 곳곳을 돌보아줄 관리사무소가 필요하다. 대도심 아파트가 딱 그런 곳이다. 20평은 노후 생활 가족수나 에너지 소비량 등을 고려할 때 적정 공간이다.

 

필자는 여가와 운동을 위해 텃밭을 가장 선호한다. 사계절의 모습을 텃밭 안에서 다 볼 수 있으며 달리 운동거리를 찾지 않아도 시기마다 파종하고, 북 돋우어주고, 열매 수확해야 하므로 몸과 정신을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무료할 틈이 없다. 어디서 뛰어왔는지 보지못했던 약초가 자라나고 있으면 마음의 기쁨은 배가 된다. ‘넌 어디서 날아왔니, 곰보배추야.’ 전원주택의 단점은 집관리에 품이 많이 드는 것과 안전이 아파트만 못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전원주택지가 있다. 땅만 분양받아서 개인이 취향대로 집을 지었다. 큰 아파트 단지 옆에 위치하므로 주변에 병원, 상점 등이 즐비하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대학병원과 수영장, 파크골프 헬스장 등 운동시설이 다 있다. 그러나 이 전원주택부지는 ‘어르신’마을이 아니라서 구부러진 길, 산 옆으로 내려온 나뭇가지들, 경사로가 있으며 저녁이면 가로등이 없어 캄캄하다.

 

필자는 남편에게 노후 보금자리에 대해 물어보았다. 남편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리모델링하여 골절방지 바닥재, 보안도어, 비상호출, 움직임 감지센서 등 노령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거나 개조하여 살겠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조사한 노후 희망거주지도 자신의 집이었다. 자신의 집에 살며 1주일에 두 번 보호사가 오고, 한달에 한 번 왕진의사가 오며, 필요한 상담은 전화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에 대한 상상을 지속해보자. 3층 이하 낮은 층의 주택, 텃밭있는 전원주택, 쌍둥이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집으로 이루어져 선택이 가능하고, 재능넘치는 실버들, 즉 음악가, 화가, 과학자, 작가, 연극인, 법조인, 의사 등이 서로 지식을 공유하여 지역을 위한 일들과 여가를 창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직장인이 주로 살고있는 옆 단지 아파트는 아이들 돌보기, 반려동물 돌보기 등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실버단지와 직장일로 바쁜 아파트 단지가 신뢰를 구축하면 상호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버단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과 공유의 마인드이다. 자치회를 구성하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참여하고 노력한다. 자치규약을 통하여 배려하고 도움이 되는 구성원은 칭찬하고, 뒷탈잡고, 모함하고, 이간하여 갈등을 유발하는 구성원은 나름의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 시청이나 구청은 실버타운간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제안서를 받고,  지원한다면 바람직하고 창의진취적인 공동체 문화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1959년 소련이 미국을 제치고 최초로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올렸을 때 미국은 세계최고 지식선도국의 자존심이 무너지며 과학뿐 아니라 교육, 사회문제 등 모든 분야를 점검하고 미국이 실패한 요인을 찾았다. 문제해결을 위해 각 곳에 제안서를 받았고 심사를 거쳐 지원한 결과 인재육성뿐 아니라 빈민층의 범죄율 저하, 상급학교 진학률 향상 등 좋은 결과를 보았다.

 

실버타운을 주제로 한 의견개진이 분분한 즈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청장년들의 열기, 실버들의 지혜가 어우러져 상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노후 거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실버들만의 고립된 이미지가 연상되는 실버타운은 20세식 방식이다. 융합과 상생의 21세기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에 맞게 용어도 변화되어야 한다.  

오은순 공주대 교수 esoh@ko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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