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에 대한 탐색과 제언

2026.08.18 10:54:35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나름 위원들의 노력의 산물로 총체적인 하나의 안(案)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위원장이 직접 “설명드립니다”라며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한눈에 띄는 요지는 독일의 저명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표방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이는 과거 전범국가였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교육을 통해 완전한 민주시민 국가로 발전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계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발표의 배경으로는 최근 교실까지 침투한 혐오와 차별을 배격하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한 시의성 있는 공적 논쟁을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학생들의 자율적 판단력과 민주시민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학교가 침묵하면 그 공백은 유튜브가 차지한다”라는 국교위 위원장의 발언은 학교가 정파적 시비를 두려워해 침묵하는 사이, 학생들이 숏폼과 자극적인 댓글, 검증되지 않은 정보망 속에서 혐오의 언어를 학습한다는 국가기관의 진단 자체는 매우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언 뒤에 숨겨진 현실적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위험천만한 오판이 눈에 띈다. 현장의 준비와 구체적인 방어 시스템 없이 “논쟁 사안을 적극적으로 다루라”고 지시하는 것은 교육의 고도화를 가져오기보다 교실을 진영 대립과 민원의 아수라장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솔직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시안이 안고 있는 치명적인 현실적 한계를 직관적인 비유로 들어보자. ​국교위의 이번 정책은 “운전면허증을 막 취득한 초보 운전자에게 고성능 레이싱카를 주며, 레이더 장비나 서스펜션 점검도 없이 당장 빗길의 ‘F1 레이싱 경기’에 출전하라고 밀어 넣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비유를 읽는 독자는 “설마, 그럴 리가?”, “너무 지나치게 우려하는 기우(杞憂)가 아닌가?”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비유해 보자. 한 요리 학원에서 수강생들에게 칼질의 기본이나 불 조절 법도 다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의 요리 주제는 가장 뜨겁고 자극적인 복합 재료입니다! 마음껏 볶고 튀기세요!”라며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 앞에 세운 꼴이다. 요리하다 기름이 튀어 수강생이나 선생님이 화상을 입으면, 학원(국교위)은 ‘우리는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요리 정신의 원칙을 내걸었을 뿐’이라며 손을 털고 뒤로 물러나는 형국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의 지나친 환상이라면 어쩔 수 없다. 현직에 있을 때,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걷던 교육계의 오랜 습관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 삼을 수밖에 없다.

 

​잠시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이 겪고 있는 진통을 떠올려보자. 사소한 지도 방식에도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이 폭주하고, 정치적 스펙트럼이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교사가 정당한 교육적 의도로 양론을 소개하려 해도, 어느 한쪽 시각만 강조되었다며 학부모의 항의와 소송이 남발되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교육 생태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사회적 쟁점을 수업 주제로 수용하라”는 원칙은 교사들에게 정치적 중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집중적인 표적이 되라는 말과 다름없다. 물론 시안 제5조 등에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면책 및 보호 조항을 명시해 놓았다. 하지만 '교권 5법' 시행 이후에도 오히려 ‘아동학대’, ‘정서적 학대’를 빌미로 교실의 사법화가 난무하는 상황을 보라. 법적 구속력이 미약한 선언적 문구만으로 거센 악성 민원과 진영 논리의 폭풍으로부터 교사를 실질적으로 지켜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를 모두 포용하고 “실수하라. 감내하라. 극복하라”고 부추긴다면 이는 과연 책임 있는 국가교육기관의 자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중립을 지키며 토론하라’는 원칙이 적힌 종이 한 장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 전체가 교육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하고,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신뢰하며, 정치권이 교실을 정쟁의 장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수용성과 제도적 안전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아예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다각적인 교재 검증 시스템, 완벽한 법적 소송 방어막조차 결여된 상태에서 무턱대고 “사회적 쟁점을 다루라”는 과제를 과감하게 던지는 것은, 레이더 장비가 고장 난 전투기를 안개 속으로 발진시키는 것만큼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시민교육은 시대적 과제이자 선진 교육으로 나가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시민교육의 꽃을 피우려면 명분만 화려한 원칙을 선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교위는 가벼운 선언을 넘어서야 한다. 교사가 민원과 악성 고소의 공포에서 벗어나 소신 있게 토론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법적 면책 특권’과 ‘민원 대응 일원화 창구’를 먼저 합의로 완성해야 한다. 나아가, 감정적 혐오와 정파적 선동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학생들이 단계적으로 갖출 수 있도록 정교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안전장치 없는 모험은 도전이 아니라 방임이 될 수 있다. 교실을 사회적 갈등의 격전지로 만들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배움터로 가꾸기 위해, 지금 국교위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학이나 성과주의가 아닌 현장을 살리는 치밀하고 단단한 ‘안전망’이 우선이다. 특히 이를 교육부와 다른 부처 간 협치를 통해 조율하고 점검하고 확인을 한 뒤에 이를 발표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국민이 간절하게 기대하고 바라는 국교위의 활동이라 하더라도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여 극복하라’는 식의 해답이 없는 상황을 밀어붙이는 위험천만한 발상은 책임 있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자세에 합당한 것인지 우려하는 노파심을 떨쳐버릴 수 없음을 고백의 형식으로 함께 이 글에 담아 맺고자 한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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