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고등학교 과정, 디플로마 프로그램(DP)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디플로마 프로그램(DP)의 운영기간은 총 2년이다. 2년간 6개의 교과와 핵심영역1을 IBO에서 제공하는 지침에 의거하여 일정 수준 이상 성취한 경우 전체 디플로마(full diploma)를 취득할 수 있다. DP 운영과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관련지어 논하자면 ‘평가 전문성’으로 주제가 좁혀진다. IB에서는 교과별 지침만 제공할 뿐 교과용도서를 명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을 설계하여 운영하는 제반 과정에는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므로 기존의 교실-수업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교사들에게 알려진 많은 교수 기법이 그대로 적용될 여지가 높다. 다시 말하면 IB 수업에서 관찰할 수 있는 교수-학습기법이 특이하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술형·논술형·구술형 평가가 주축을 이루는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평가과정에서는 현재 고등학교 수업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과는 상이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지속적인 피드백 제공
DP 이수를 위해서는 교과별로 내부평가와 외부평가를 치러야 한다. 내부평가는 주제나 소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선택이 중요하게 반영되며, 동시성을 확보하여 시행하기 어려운 유형인 구술형·논술형 평가가 주축이 된다. 내부평가의 특성상 학생 개개인의 개별화된 답안이 산출될 수밖에 없으며, 학생-교사 간 상호작용이 없으면 보고서 형태의 논술형 평가를 준비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DP 교과 내부평가는 준비 및 시행과정이 긴 호흡으로 이뤄진다. 언어 습득군(그룹 2)에 속하는 영어 B 교과(HL)의 내부평가는 구술형으로 진행된다. 수업 중 학습한 문학이나 비문학 발췌문(300단어) 중 1개를 즉석에서 선택한 후 작품의 사건·인물·상징·메시지 등을 해당 언어로 3분간 발표한다.
발표 전 교사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준비시간이 20분 주어지며, 간단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표내용을 메모할 수 있다. 발표 이후에는 4~6분간 심화토론, 이어서 5~6분간 일반적인 주제와 관련지어 토론을 마치면 영어 B의 구술형 내부평가는 종료된다. 실제 내부평가의 유형으로 출제한 모의평가를 수차례 시행하고 연습하며, 내부평가 채점기준에 의거한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과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대비하기 어려운 유형이다.
외부평가는 동시성을 확보하여 시행할 수 있는 유형으로 서술형·논술형이 대부분이며, 교과 특성상 단답형 및 선다형 유형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지도 중인 지식이론(TOK, Theory of Knoweldge) 교과에서는 외부평가로 1,600단어 분량의 지식이론 에세이를 작성하여야 한다.
에세이 제출 기한 6개월 전 IBO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6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작성하며, 수업 중 10시간 정도를 에세이 작성에 할애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에세이 채점에 반영되는 평가기준에 의거하여 학생들이 작성한 글을 끊임없이 다듬을 수 있도록 피드백을 제공하여야 하며, 공식적으로 3번의 교사-학생 상호작용을 기록하여 IBO 제출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IB 교과를 이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성찰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교사와의 피드백 교환은 필수로 이뤄진다. 비교과 영역인 CAS 활동에서도 7가지 학습성과를 도출하는 과정 중 학습자의 성찰록 작성은 필수이며, 성찰록을 기반으로 CAS 지도교사와 주고받은 피드백이 CAS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어야 한다. 진정한 과정형 평가가 시행되는 교수·학습환경에서 효과적인 피드백 제공을 위한 교사의 노력은 평가 전문성 신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업과 평가의 일체화
영어 B 교과를 다시 한번 예로 들어본다. 영어 B 교과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학생들이 학습하는 ‘외국어’에 해당하므로 교수 목적의 첫 번째를 ‘언어 기능의 발달’에 두고 있다. 따라서 정답이 정해진 유형의 청해 및 독해 평가점수가 전체 점수의 50%를 차지한다.
나머지 50%는 쓰기와 말하기에 각각 25%씩 할당되며, 특히 말하기 시험의 경우에는 수업 중 학습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동시성 확보가 어려운 유형이므로 내부평가의 형식으로 결과를 산출한다. 쓰기와 말하기 능력이 동일한 비중으로 최종 성적에 반영되는 평가계획에 의거하여 수업을 설계한다면 어떤 수업이 구상될까?
고등학교 교사들이 다양한 교수전략을 자신의 수업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고민·노력, 심지어 실행하더라도 결국 수능유형의 문제풀이 방식 수업에 대한 학습자 요구를 이겨내기 어렵다. 그러나 DP의 교과에서처럼 최종 도달하여야 할 지점에서 수행되는 평가의 종류가 서술형·논술형·구술형인 경우에는 수업과 평가의 일체화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평가 전문성
서·논·구술형 평가가 진정성 있게 시행되는 교수·학습환경을 가정한다. 이어질 자연스러운 큰 고민은 평가의 신뢰도와 타당도 확보일 것이다. 정량적인 평가지표가 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교육수요자의 ‘불만 없는’ 채점결과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필자의 학교에서는 2023년 11월 DP 첫 외부평가를 시행하고, IB DP 1기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IB 학생 중 전체 디플로마 이수율 94.12%로 전 세계 DP 이수율인 80.01.%(2023년 5월 평가기준)를 14%포인트 이상 넘어선 결과였다. 이수생 모두 교과별 서·논·구술형의 유형으로 진행된 내부 및 외부평가에 응시하였으며, 최종 결과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큰 무리는 없었다.
내부평가의 출제 및 채점은 수업 교사에 의해 이뤄지고, 외부평가는 IBO의 전문 채점가에 의해 이뤄진다. 학교에서 제출한 내부평가 결과와 교과별 무작위로 추출되는 내부평가 샘플 또한 IBO 채점가의 채점을 거쳐 필요한 경우 점수가 조정(moderation)되어 학생들에게 최종 점수가 부여된다.
최종 점수에 대해서는 기한 내 재채점을 요청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상향 또는 하향 조정되기도 한다. 수업 중 누적되어 온 피드백은 교과별 평가기준에 의거하여 제시되어 왔으며, 학생들은 평가요소에서 자신의 어떤 부분에서 강점과 약점이 확인되는지 사전에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학생들이 부여받은 최종 점수는 개개인에게 갑작스럽게 통보된 결과이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학생 스스로가 알고 있던 자신의 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평가체제이므로 처음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왔던 예상 점수(PG, Predicted Grade) 산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IBO 채점관 사이에서도 특정 결과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형성되고, 토론을 통해 점수를 표준화(standardization)하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평가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 한다면 우리 학교현장에서는 아직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피드백을 제공하고 평가결과를 토론하여 표준화할 수 있는 협업을 수행할 절대적인 시간 확보, 개별화된 지도가 가능할 수 있는 적절한 학급당 인원수 배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표면적 객관성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내려놓고 정성적 평가의 가치를 공감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