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참 좋은 학교” 웃음꽃 가득한 서울 개운중

2024.06.04 10:00:00

 

“개운중에 배정받았을 때 첨엔 고민 좀 했죠. 솔직히 ‘보내도 되나’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아이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쑥스러움이 많아 걱정했는데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동아리활동도 열심히 해요. 지금은 학교 가는 걸 너무 재미있어합니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은진 씨는 “지역 맘카페 등에서 어떻게 하면 그 학교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그럴 때마다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거린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 관계는 동반자이자 협력자이다. 대화와 소통으로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교육구성원이다. 좀 더 나은 교육,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나서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학교가 있다. 서울 성북구 북한산로에 위치한 서울개운중학교가 주인공이다. 


그저 그런 ‘산꼭대기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고 싶은 학교, 지역사회에서 부러움을 사는 학교로 변신한 비결이 뭘까? 학부모 송원영 씨는 교사들의 헌신을 첫손에 꼽았다. “개학한 지 한두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선생님들이 학생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세심하게 지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등교맞이를 할 때면 선생님들이 학생 이름을 다 외워 한 명 한 명 불러주며 관심을 쏟는다. 처음엔 주뼛거리며 어색해하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열고 선생님을 따른다.


이뿐 아니다. 기념일이면 조그만 봉지에 간식을 담아 “얘들아, 힘내!” 하면서 나눠주는 선생님, 좋은 일이 건 슬픈 일이 건 장문의 편지를 써서 학생들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선생님, “넌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로 자신감을 심어주는 선생님, 학교생활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모두에게 역할을 맡겨 소중한 존재임을 심어주는 선생님 등 개운중에는 정성과 사랑이 넘친다. 학부모 강민경 씨는 “열심히 가르친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닐진대, 아이들 하나하나에 열과 성을 쏟는 선생님들에게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면서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 학교 참 좋은 학교구나’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개운중 변화의 원동력은 선생님들 열정과 헌신
이러한 변화의 주역으로 학부모들은 이화영 교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부임한 이 교장은 개운중을 활력이 넘치는 학교로 탈바꿈시켰다.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 힘을 모아 교육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불과 반년 사이 자율동아리는 20개로 늘어났다. 축구·배구·피구·풋살·족구·농구·배드민턴 등 스포츠클럽 활동 역시 인근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하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야구점퍼와 맨투맨 티셔츠를 생활복으로 삼아, 학생들의 편의를 제공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관내에서 선두를 다투는 톱클래스다. 이 교장은 이미 전임 학교에서 괄목할 대학 진학 실적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 인물. 학생 지원율이 28%에 불과했던 학교를 98%로 끌어올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선호학교로 바꿔 놓았다.


열정은 개운중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등교시간이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이한다. 점심시간엔 급식지도에 참여한다. 시원시원한 스타일답게 칭찬은 화끈하게, 잘못했을 땐 따끔하게 혼도 낸다.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여느 부모 못지않다. 그런 이 교장을 학생들도 잘 따른다. 심지어 여자친구한테 고백했는데 반응이 없다는 등 연애상담까지 할 정도다.

 

실제 교장실엔 언제나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지역주민들에게도 이 교장은 유명 인사다. 그는 틈나는 대로 학교 주변을 돌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싹싹하게 군다. 교장의 권위 대신 학생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고개 숙여 부탁한다. 그래서일까. 예전엔 학교 주변에서 흡연하는 학생들을 가끔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싹 감췄다. 한 학생을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천하는 학교다. 

 

 

교장실은 사랑방 … 학생들 연애상담도
작년 축제 땐 이런 일도 있었다. 개운중에도 체육관이 있지만 규모가 작아 전교생이 한데 모일 수 없다. 인근에 위치한 대학교 시설을 빌리면 좋은데 학교예산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는 수 없이 학교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예산 부담이 적은 성북구민회관 대강당을 사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학생들의 이동거리. 뉴타운과 구도심이 혼합된 지역이어서 교통도 불편하고, 안전사고 위험도 있었다. 학부모회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심하던 이 교장은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아파트 단지와 구도심 지역을 매일 돌아다니며 학교에서 구민회관까지 가장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루트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축제를 이틀 앞둔 지난해 11월 8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이 전달됐다. 가정통신문에는 축제를 알리는 소식과 함께 한 장의 지도가 첨부됐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교장이 발품을 팔아 만든 구민회관까지 이동경로를 표시한 지도였다. 지도에는 학생들이 헷갈리지 않게 손세차장 앞, 공중전화 부스 등 10군데 주요 포인트가 번호순으로 매겨 있었다.

 

그리고 ‘건널목을 건너 정류장으로 직진한 다음 ○○아파트 쪽으로 간다. 이때 106동 주차장 쪽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108동 안내표지판 사이로 갈 때는 샛길로 빠지면 안 된다’ 등등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리고 축제 당일, 지도에 표시된 주요 포인트에 10여 명의 교사들이 배치됐다. 그들은 학생들이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세세하게 안내했고, 아무런 사고 없이 축제를 마칠 수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교 측의 열정에 “상상도 못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교장은 학생들의 교육환경과 학력신장에도 힘을 쏟는다. 개운중에는 각층 복도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일명 ‘개운서재’이다. 도서관이 지하 1층에 있다 보니 5층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조성한 공간이다. 이 교장은 여기에 필요한 책 1,000권을 기증했다고 한다. 인터넷과 디지털문화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느끼게 해주고픈 마음에서였다. 


학부모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이 또 있다. 개운중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문항이다. 학부모 송원영 씨는 “학원에 가면 인근 중학교 시험문항을 모두 볼 수 있는데, 개운중 것이 가장 우수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정말 질적으로 우수한 문항들이 출제되는데 교사들이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송 씨는 “개운중에 가면 공부 잘 시킨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귀띔했다.


“학교를 믿는다” 학부모들도 적극 동참
학부모회장 김은진 씨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고 마음으로 다가오니 학부모들도 학교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참여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실제 개운중은 학부모회 활동이 활발하다. 작년에 열린 허그데이 때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인형탈을 쓰고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안아주고 사탕도 나눠주는 행사를 가졌다. 뜻밖의 환대에 학생들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등 즐거워했다. “우리 학교 정말 좋은 학교”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서 스스럼없이 터져 나왔다. 

 

 

학부모회 주관으로 열린 김장 담그기 행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학부모 강민경 씨는 “학생들에게는 선착순 참여라고 안내했지만 얼마나 참여할지는 미지수였다. 요즘 학생들이 김장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싶어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무려 100명이 넘은 학생들이 김장을 담그겠다고 찾아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덕분에 학생·학부모·교직원이 함께한 김장 담그기 행사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고, 불우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등 봉사의 기쁨을 누렸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열심히 하고, 못하는 것은 못 한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신뢰가 오래가는 법이죠.” 이 교장의 학교경영철학이다. 그는 교장을 믿고 열심히 따라 주는 선생님, 헌신적으로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학부모가 있는 한 개운중은 최고의 학교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장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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