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보육업무를 맡기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계약위반이다. 지금 선생님들은 교육을 목적으로 양성되고 임용된 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출생 극복을 위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도 보육이다. 문제는 이런 점을 교사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부가 찍어 누르듯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적대적 감정만 키웠다. 늘봄학교 갈등은 디테일 부족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새롭게 만든 ‘저출생 대응 교육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저출생 교육특위)’ 위원으로 위촉된 김태일 전 국가교육위원은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교육부는 이제부터라도 교사들에게 무조건적 희생이나 순응을 강요하기보다 타협점을 찾고 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2030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큰 잘못인 양 타박하고 눈치 주기보다 결혼과 출산, 가정을 이루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그런 좋은 롤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데 그 점이 아쉽다”고 했다. 김 위원은 1993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한국외대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신전대협(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저출생 교육특위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교육이 저출생의 원인이 되었는지, 또 저출생에 맞춘 교육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저출생 문제해결을 위한 최전선에 선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경쟁교육이 저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지금 2030세대는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도 스펙인 삶을 살아온 세대다. 이들은 교육을 경쟁의 도구로 사용해 왔다. 몇 등을 했느냐가 어른이 돼서까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렵다.”
치열한 대학입시가 저출생 원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학령인구는 줄어 대학의 문은 그만큼 넓어졌다. 대학 진학 경쟁은 완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아니라 대학을 나와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답을 내놓는 것이 국교위의 역할이라고 본다. 솔직히 요즘 젊은 세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회에 나왔지만, 손에 쥐는 게 없다고 여긴다. 그저 살아온 삶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뿐이다.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이런 과정을 또 살게 할 이유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 있다. 그러니 대학입시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 당장 결혼 비용부터 의식주 문제까지 먹고사는 게 발등의 불인데 누가 20년 뒤를 생각하겠는가.”
그럼에도 국교위에서 입시제도 개편을 논의하고 있는데.
“뭔가 파격적인 변화를 통해 ‘그래도 우리 사회가 미래에는 조금 달라지겠구나’라는 기대를 젊은 세대에게 심어주고 그들의 세계관 또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세계관을 말하는가.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피라미드 세계관이 아닌 퍼즐 같은 세계관을 가졌으면 한다. 얼마나 높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자기만의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지만, 경쟁이 전부여선 안 된다. 개인의 역량을 넘어 집단 속 협응력, 즉 사회를 움직일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도 자신만의 존엄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살아가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국교위에서는 저출생 위기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려 하나.
“속단하기 힘들지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교와 교육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찾으려 한다. 학교라는 공간을 지금처럼 유지해도 되는 것인지, 도시계획적 관점에서 학교를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은지, 심각한 괴리현상을 빚는 교원양성체계는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등이다.”
교원양성체계가 왜 괴리를 빚고 있다고 여기나.
“지금 교사들은 교육을 위해 양성됐다. 하지만 저출생 시대 학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보육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보육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학교의 중요한 기능이 됐다. 또 초등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도 보육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교사들은 ‘보육은 가정에서 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다. 학교는 애 키우는 공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분들이 거친 양성과정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보육의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맞벌이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시대 아닌가. 학교의 보육기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무조건 애 낳으라고 하면 누가 낳겠는가. 한 자녀라도 잘 키워낼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교사에게 보육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맞다. 학교의 돌봄기능, 즉 보육이 강조되면서 사명감에 충만해 교단에 섰던 선생님들과 학부모의 관계가 어느 순간 ‘교육공무원’과 ‘민원인’으로 달라져 버렸다. 그러니 교사들 입에서 계약조건 위반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앞서 말했지만, 그들은 교대 입학할 때부터 교육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양성과정을 거쳐 임용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시대가 달라졌으니, 보육도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누가 쉽게 수긍하겠는가. 정부도 (교사들의) 희생을 무조건 강요하지 말고 타협점을 찾았으면 좋겠다.”
국교위가 기대를 안고 출범했지만, 지난 2년간 이렇다 할 성과가 안 보인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 게 뭐 있냐’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국교위는 우리 교육의 10년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기구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만약 교육부만 존재했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교위는 한계보다 가능성이 더 큰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국교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부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뭔가 파격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주 큰 반발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도 강행하는 경우가 많더라. 일단 방향이 좋다고 생각되면 던져놓고 찍어 누르듯이 밀어붙인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현장과 소통을 통해 설득하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정상인데 무작정 톱다운으로 밀어붙이더라.”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사전에 충분히 예고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면 집행도 해 보기 전에 반발에 부딪혀 무산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는 것 같다.”
이주호 장관 이후 많은 정책이 나왔다. 대체로 이런 패턴을 보이는데.
“정책 의도는 좋다. 예컨대 늘봄학교는 보육을 위해 필요하다. 무전공 입학도 학생들의 전공선택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결국은 디테일의 문제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실정에 안 맞아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일률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 ‘우리(교육부)도 완벽할 수는 없으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해 나가겠다’는 유연한 자세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반발만 키운다. 좋은 일 하면서 오히려 적을 늘리고 있으니 안타깝다.”
교육부가 너무 성과에 집착하는 거 아닌가.
“그만큼 그동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게 많았고, 또 해야 할 일들이 미뤄진 게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