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능혁명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上)

2024.09.05 10:00:00

 

지능혁명 시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인가?’
21세기, 인간은 인공지능에 쫓기고 있다. AI(GPT)를 장착한 로봇이 언제 인간을 잉여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학습을 전문으로 했던 인간지능을 능가하여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인간보다 학습을 빠르게 더 잘하여 일상적·전문적 지식을 생산한다는 강력한 경쟁자를 인류는 만났다. 만물의 영장(靈長) 노릇을 해온 인간으로서는 피조물에 의해 지배당할 수도 있기에 그들을 적절히 제어하길 원한다. 대안으로 하나같이 인간 고유의 것을 연마하여 AI로봇보다 우위를 점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은 모든 사물과 자연이 센서를 달고 정보를 송수신하는(IoT) 신물활론(neo-Animism, neo-Hylozoism) 시대인데, 인간은 그 오케스트라 지휘자이고 싶어 한다. 말에서 글로, 다시 글을 벗어나면서 동영상으로, 우리는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을 맞고 있다. 영국에서 전승되는 한 시가는 ‘사람이 천년을 살기로 보장받았다면, 뭘 그리 서둘러, 뭘 그리 전전긍긍하며, 알려고 들고, 하려고 들겠는가?’라고 노래하였다. 필자의 전공인 교육과정학은 ‘시한부(時限附) 인생에게 가장 가치 있는 학습경험을 찾아 제공’하는 분야이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인가?’ 이것은 1860년 신분제 붕괴 이후 산업혁명과 모든 사람이 자유민주사회의 일원인 보다 평등한 영국에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질문이었다. 그는 온전한 교양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실증된 과학적 지식에 바탕한, 가장 중요한 지식은 직접적인 자기보전(건강 보건)을 위한 과학적 지식을 최우선으로 하여, 간접적인 자기보전(직업지식), 가정과 육아, 정치시민생활, 예술생활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 5가지를 차례로 가장 쓸모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과거 소수귀족이 독점하던 지식의 우선순위를 뒤집은 것이었다.

 

인공지능에 쫓기는 인간, AI 보다 더 스마트해야 살아남는다
AI 시대와 지능혁명 시대에도 이 질문은 다시 물어져야 한다. 흔히 AI는 대화형·식별형·예측형·실행형으로 나뉘고, 각각 인간을 ‘대체’하거나 ‘보완’해준다. 우리는 산업혁명 초기의 육체노동직(blue collar), 석유와 전기산업기의 사무직(white collar), 20세기 후반 감성지수(마음의 힘)가 높다는 창의적 근로자(gold collar)조차 ‘실업과 잉여’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체력·지력·심력을 갖추고 자기관리하며 대인관계력이 좋은 전인을 원동연(2024)은 다이아몬드칼라(diamond collar)라고 불렀다. 분명한 것은 학습기계가 스마트해지는 만큼 인간은 더 스마트해져야 학습기계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학습기계의 학습영역을 ‘조망(眺望)’할 수 있는 학습영역을 인간이 학습하여 ‘고지(高地)’를 선점하는 것이다.


학교는 ‘배우는 법, 살아가는 법, 일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학교 공부는 ‘건강한 생활’(체육·보건·건강)과 ‘즐거운 생활’(미술·음악 등 예술)을 바탕으로 한다. 이후 ‘바른생활’을 통하여 학생의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가 잡히면 ‘슬기로운 생활’로 나아간다. 슬기는 인간과 사회생활의 슬기(외교·정치·경제·사회문화·도덕윤리·역사·지리 등)와 자연과 사물 관련 슬기(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환경과학·기술공학과 AI 등)를 말한다. 사회와 과학은 그 내용과 활동이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어 그 핵심 줄기나 뼈대를 잡기 어려워진다. 분명한 것은 상대적으로 전자는 사실과 사건에 대한 주관적 이해·의견·판단·주장이 앞서고, 후자는 사실에 바탕한 객관적 정답과 최선답을 추구한다. 후자 위에 전자가 서야 인간과 사회는 안정적으로 발전한다. 오늘날 우리교육의 기조인 ‘민주+평등+감성(감수성)’은 인간감정의 배출구 노릇을 하지만, ‘자유+민주+이성’으로 교육하지 않으면 인격의 고양과 문명사회 발전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령기 학습은 모두에게 같은 기초·기본 생활교양교육을, 성·인종·언어·지역·언어·계층 등 어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본권으로 그 학습의 과정과 심지어 결과조차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심화·특수 전문직업 전문교육은 각 집단별로 차별이 아닌 차이(적성과 진로)에 따라 알맞게 맞춤형으로 교육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는 약점보완형으로 전인교육을, 후자는 전인교육을 바탕으로 한 강점강화형으로 분야별 전문인을 길러내는 일이다. 결국 전인교육 위에 전문교육을 얹는 형식이고, 그 둘의 조화이다. 


호랑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이런 때일수록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강점강화형 교육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배가시켜야 한다. 인간은 AI장착로봇과는 다른 차원을 살아가야 하고, 다른 게임의 룰 속에서 그들을 통어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간의 교육내용이나 활동의 상당 부분은 AI(GPT)로봇에게 넘겨야 한다. 인간은 인간답게 드높은 교육과 학습을 실행해나가야 한다.


과거에도 교육을 효과적·효율적으로 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커리큘럼(Curriculum)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고 알려진 라무스(P. Ramus)는 중세 7자유과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으로서 나무 모형으로 교과내용을 계열화하였다. 퇴계 이황은 유교공부를 하는 왕도로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그려냈다. 교육과정학의 과학화를 시도한 스펜서(H. Spencer)는 지덕체 3육에서 어떤 지식이 가장 가치 있는가를 물으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학습의 우선순위를 잡았다. 1960년대 학습의 현대화를 앞당긴 브루너(J. Bruner)는 각 학문의 구조를 강조하였다. 오늘날 IB가 개념탐구를 강조하는 것은 학문의 구조 탐구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형 인간육성을 위한 ‘고공학습’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AI 등장 이후 인간학습은 이전과는 다른 학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할 대상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학습할 필요가 없는 것을 굳이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고 여겨 학습시키는 것은 일종의 ‘삽질’을 시키는 것이다. 기회학습이 너무 커서는 곤란하다.


일찍이 원동연은 다이아몬드형 인간육성을 위한 ‘고공학습’을 제안한 바 있다. 이전보다 고도(高度, god)의 고차원학습을 추구해야 한다. 고차원학습은 총론적으로 그리고 각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장 전이력이 높은, 가장 설명력이 풍부한, 가장 포괄성이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이 되는, 가장 많이 쓰이는, 가장 추상적인, 어떤 단원의 제목이 되거나 가장 중요한 결론, 해당 분야의 가장 기초·기본적인 것, 가장 높은 수준의 것, 가장 상징적인 ‘개념 이상의 중요 명제·원리·법칙·이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사실이나 지식은 최대한 삭제하되, 그것들은 핵심적인 개념·원리·법칙·이론의 전형적인 예시(사례)일 경우에만 맥락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즉 전형적인 사례는 추상적인 공부를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저차원의 지식 내용은 더 상위의 개념·원리·법칙·이론에 붙들려 있을 때 유의미한 고차원학습에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고차원학습 원칙에 따라 현행 교과내용을 재검토하여 대대적으로 솎아내야 한다.

 

지엽적인 부스러기 지식은 물론, 알면 좋은 것들(worth being familiar with)이나 중요한 지식과 기술(important to know and do)도 대폭 솎아내야 할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에는 지엽적인 것들이 아주 많이 들어와 있어 학생들로 하여금 이것도 공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중간고사·기말고사·학년말고사에서 ‘구석’에서 내지 않는 한 출제 대상이 못 되는 사실과 지식들을 학교수업에서는 제거해야 할 것이다.

홍후조 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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