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절반 일반고로 전환하자”

2024.09.05 10:00:00

 

고교 직업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70년에 거의 절반에 달했던 직업계 고교생의 비중(46.6%)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23년 현재 14.8%에 불과하다. 직업계 고교생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중학교 졸업생들이 직업계고등학교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업계고등학교 중 특히 특성화고의 미충원 문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미충원 문제가 크지 않았던 서울시의 경우에도(2016년 충원율 99.4%) 2022년에는 79.4%라는 충격적인 충원율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다시 충원율이 96.9%로 급격히 상승했지만, 이는 모집정원을 2022년 대비 2,200명(2022년 모집정원의 18%에 해당)이나 줄인 영향이 크다. 만약 모집정원이 그대로였다면 충원율은 79.3%로 여전히 2022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직업계고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학생들이 직업계고를 선호하지 않는 것에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다. 2023년 현재 고졸자의 임금수준은 4년제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66% 수준에 불과하다. 고용률의 격차도 커서 고졸자는 63.3%로 4년제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77.1%에 비해 14%P 가까이 낮다.

 

또한 50% 이상의 직업계고 졸업생들이 전공과 관계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30%대에 불과한 4년제 대졸자에 비해 20%P 이상 높은 상황이다. 대학을 가야 자기 전공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취업할 가능성도 높으며,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직업계고에 진학할 유인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직업계고에 진학한 경우에도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취업한 학생보다 훨씬 많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절반이 졸업 후 진학하고 있는 반면, 취업자 비율은 졸업생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직업계고에 대한 선호도 감소가 직업계고 교육을 더욱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신입생 확보를 위해 많은 직업계고에서 학생 선호도를 고려한 학과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학생 선호도가 높은 전공이 반드시 많은 양질의 일자리와 연계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생 선호도가 높아 최근 정원이 늘고 있는 미용·관광·레저·음식조리·식품가공 등의 분야는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일자리로 연결되는 전공이 아니다. 


학과 조정의 더 큰 문제는 교사와 교과목 간의 미스매칭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학교에서 새로운 학과의 전문교과를 그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존의 정규직 교사가 담당하거나, 해당 분야를 전공한 기간제교사에 의존하고 있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심지어 어떤 사립학교는 전문교과교사들 전부가 기간제교사로 구성되어 있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담당선생님이 이해가 잘 되게 정확한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프로그램밍같은 경우는 책 보고 컴퓨터로 실습하는데 책 내용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 “단순하게 글만 읽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심화과정을 배우는 데 힘이 들었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선생님들도 잘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는 등 교사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가 방문했던 직업계고의 교실풍경을 보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것을 전부 학생 탓으로만 돌릴 일도 아닌 것이다. 

 

보통교과 경시로 기초학력미달학생 증가
직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기초학력미달 문제도 우려할 만하다. 당장의 실무능력 배양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다 보니, 보통교과가 경시되고 있는 탓이 크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경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제외된 대신 직업기초능력평가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보통교과 경시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조사(PISA) 자료를 보면([표 1] 참조), 우리나라 직업계고 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미달학생 비율은 2006년의 7%에서 2015년 15%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는 독일의 2%, 일본의 4%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 고등학교 직업교육의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벤치마킹했던 독일의 경우 수학 수업시간 증가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기초학력미달학생의 비율이 줄고 있지만, 한국은 보통교과의 수업시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최소한의 학습능력이 요구되는 급변하는 미래 평생학습사회에서 직업계고 졸업생들의 낙오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직업계고등학교는 정규교육의 최종 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기초학습능력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간 누적되어 온 학습결손을 학교교육을 통해 보완해 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인 것이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의 교육여건 격차와 차별
고교 직업교육과 고등교육과의 연계 부족 문제도 우리 고교 직업교육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전문대학 입학생 중 직업계고 출신은 22%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전문대학에서의 직업교육이 고교단계의 직업교육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헤어·미용에 대한 사례 연구결과를 보면, 전문대학에서 직업계고 교육과정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매우 낭비적인 상황이다. 


같은 직업계고 내에서 격차와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고교 직업교육은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고교 유형 간의 교육여건 격차가 매우 크다([표 2] 참조). 2017년 기준 학교홈페이지에 제시된 학교예산으로 계산했을 때, 전체 직업계고 학생의 9% 정도를 차지하는 마이스터고의 경우 학생 1인당 교육비가 783만 원에 달하지만, 학생수의 90% 이상을 점하는 특성화고의 경우 577만 원에 불과해서 200만 원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교사 1인당 학생수도 특성화고는 10.7명인데 반하여 마이스터고등학교는 6.9명으로 훨씬 적어서 기본적인 교육여건에 차이가 있다.  

 

고교 직업교육, 양적 확대보다 질적 제고에 초점을
이렇게 고교 직업교육이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일각에서는 고교 직업교육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OECD 평균으로 직업계고 비중이 45.7%에 달하고 있음에 비해 우리는 OECD 평균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현재와 같이 직업계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수를 늘리게 되면 문제만 더 악화할 뿐이다.

 

또한 중저도 문제해결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줄고, 고도 문제해결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늘어나며, 보다 높은 수준의 스킬과 교육수준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미래 사회가 변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교 직업교육을 늘리는 것은 미래 사회의 변화 방향과 배치될 수도 있다.

 

물론 고교 직업교육 이수 후 대학에 진학하는 경로의 활성화를 통해 미래의 고숙련에 대한 수요에 대응할 수는 있지만, 현재와 같이 고교 직업교육과 고등교육의 연계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낭비적 요소가 적지 않다. 따라서 우선은 양적 확대보다 질적 제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고교단계 직업교육과 고등교육·평생교육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질적 제고를 위해 오히려 양적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질적 제고가 달성되면 양적 확대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특성화고의 절반을 마이스터고로 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반고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 내의 산업 수요 충족과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성화고 일부를 적극적으로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머지 특성화고는 일반고로 전환하되, 일반고 학생 중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주변 마이스터고나 전문대학 등에서 직업계고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하면 추가 예산 소요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특성화고 절반을 일반고로 전환할 시 재원 절감 효과가 있고, 그 재원을 나머지 절반 특성화고의 마이스터고 전환 재원으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성화고의 일반고 전환에 따른 시설 장비, 전문교과 교원 등은 마이스터고로 배치하거나 고교학점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 등에서 활용 가능하므로, 시설 장비나 교원의 유휴화 문제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한편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는 고교에서는 IB-CP(International Baccalaureate-Career-related Programme)를 적극 도입하도록 한다. IB-CP는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하고 직업교육의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고안되었으므로, 우리나라 직업계고의 현재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직업교육도 잘 시키고 기초학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어 대학진학과 평생학습시대에도 대비하는 일석이조의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IB-CP는 IB에 대한 일반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층이 진학하는 직업계고등학교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이므로 ‘귀족학교’라는 프레이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IB-CP에서 가장 비중이 큰 CRS(Career-Related Studies)는 학교자율운영(물론 외부평가 있겠지만)이므로 교육과정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또한 취업 강조 프로그램이고, 대학 진학 시에도 직업계고 출신은 정시가 아닌 별도전형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입시제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입시제도의 혁신적 변화가 아직 쉽지 않은 우리 교육현실에서도 충분히 확대 여지가 있다.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해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고교 직업교육의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 서야만 고교 직업교육의 진정한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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