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톡톡톡] 잔잔한 영화 네 편으로 여는 가을

2024.09.05 10:00:00

달콤 쌉싸름한 여러 모양의 사랑 이야기들!
9월. 폭염과 열대야로 씨름했던 여름이 ‘공식적으로’ 끝나고 새로운 계절 가을로 접어드는 달이다. 예전보다 유독 짧아진 방학 기간으로 교사와 학생 모두 학교와 가정생활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을 여름이지만, 등하굣길 이마를 부드럽게 스치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9월에 개봉하는 잔잔한 영화 네 편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건 어떨까? 

 

보고 싶은 푸바오를 스크린에서 만나보자! <안녕, 할부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신드롬의 주인공 판다 ‘푸바오’. 한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판다’ 푸바오와 바오 패밀리의 새로운 이야기가 올가을 스크린에서 최초 공개된다. <안녕, 할부지>(감독 심형준·토마스 고)는 선물로 찾아온 만남과 예정된 이별, 헤어짐을 알기에 매 순간 진심이었던 푸바오와 주키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16년 한국에 온 암컷 판다 아이바오와 수컷 러바오는 자연 번식으로 2020년 7월 20일 푸바오를 순산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세계적인 멸종 취약종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전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됐다. ‘행복을 전하는 보물’이라는 이름처럼 팬데믹 시기 많은 이들에게 가슴 따뜻한 위로와 힐링을 선사했다. 2023년 7월 7일,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태어나면서 ‘바오 패밀리 완전체’가 결성됐다. 


국외에서 태어난 판다는 생후 48개월 이전에 짝을 찾아 중국으로 이동한다는 ‘자이언트 판다 보호연구 협약’에 따라야 한다. 푸바오 역시 이 협약에 따라 중국 귀환이 결정됐고, 지난 4월 3일 출국일에 인천공항에는 푸바오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러 온 6,000여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안녕, 할부지>는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3개월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푸바오가 강철원 주키퍼의 다리를 잡고 매달리더니, 어느새 송영관 주키퍼와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다 토라지는 ‘푸질머리’ 면모를 보일 정도로 성장한 푸바오. 영화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푸바오가 떠나기로 결정되면서 다가온 이별의 순간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주키퍼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강철원·송영관 주키퍼는 푸바오의 행복을 위해 당연한 과정이 찾아왔다며, 헤어짐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이 먹먹해진다. 푸바오가 예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전용 해먹을 설치해 주고, 유채꽃밭도 가꾼다. 하지만 건강상태를 정밀하게 체크하기 위해 검역실을 세팅하고, 푸바오가 타고 갈 케이지를 정비하면서 흔들리는 주키퍼들의 마음이 마침내 영화에 드러나는 순간 관객 역시 마음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게 된다.


‘푸바오 할부지’로 전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강철원 주키퍼는 모친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푸바오의 출국길에 동행했다. “사랑하는 푸바오, 할부지가 너를 두고 간다. 꼭 보러 올 거야”라는 편지를 남긴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편지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관을 이겨 내고 중국에 방문한 강철원 주키퍼가 푸바오와 재회하는 장면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심형준 감독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바오 패밀리의 이야기들을 구현하기 위해 기존 영상 대신 3개의 애니메이션을 접목했다. △어린 시절의 푸바오와 강철원 주키퍼의 이야기 △강철원 주키퍼와 아이바오·러바오의 첫 만남 △아이바오와 러바오의 러브스토리다. 동화책 삽화 같은 느낌의 애니메이션은 바오 패밀리의 따뜻한 분위기를 스크린에 물씬 담았다. 바오 패밀리의 첫 번째 영화! 데뷔 축하해, 푸바오! 9월 4일 개봉.

 

가장 가깝고도 먼 엄마와 딸 사이 … 내가 널 이해할 수 있을까? <딸에 대하여>
홀로 노모를 돌보며 요양보호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오민애)의 유일한 희망은 가방끈 긴 딸(임세미)이다. 힘들게 뒷바라지했건만, 딸의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보따리 강사 신세. 어느 날 딸은 엄마에게 목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가진 거라곤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인 엄마는 그럴 능력이 없다. 대출까지 알아봤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한다.

 

그리고 독립했던 딸이 7년째 연애 중인 동성연인과 집으로 돌아오며 영화는 균열하기 시작한다. 자기 몸 누일 공간도,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가정을 꾸릴 남자친구도 없는 딸은 자신의 처지는 나 몰라라 하면서도 부당해고 당한 동료강사를 위한 투쟁에 앞장선다. 두 사람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엄마는 요양원의 어르신을 돌보는 데 몰두해 보지만 쉽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는 딸에게 “너답게 산다는 게 이거야? 금방이야. 뒤돌아서면 마흔이고 쉰 돼. 너희들이 하는 건 그냥 애들 소꿉장난이야!”라며 역정도 내보고 다그쳐도 보고 하소연도 해본다. 하지만 딸과 딸의 동성애인은 오히려 차분하다. “어머님은 딸이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같이 하는 거, 그거 하나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요”라고 답한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인데, 당돌하게 내 딸을 잘 모른다고 하는 이 낯선 여인을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어 그저 “우리 딸은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말할 뿐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는 딸과 세상에 부적합한 딸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는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딸에 대하여>는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진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지만, 소신대로 살고자 하는 캐릭터의 서사를 섬세히 담아낸 원작소설은 <82년생 김지영> 이후 여성 독자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소설로 떠오르기도 했다. 소설은 엄마의 독백으로 빼곡히 채워졌지만, 이를 유려하고도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영상 언어로 옮긴 건 전적으로 이미랑 감독 덕분이다. 이창동 감독의 스크립터 등을 하면서 영화판에 들어온 이 감독은 <딸에 대하여>로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을 비롯해 국내 주요 영화제를 석권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딸에 대하여>를 단순한 퀴어 영화로 정의하기는 모호하다. 영화는 딸을 대하는 모순된 엄마의 모습에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소수자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확장·공감시키기 때문이다. 섬세한 각본과 절제된 연기, 배우를 끝까지 따라가며 지지하는 카메라가 합세해 영화는 딸과 딸의 동성연인 그리고 엄마가 ‘완전한 이해’ 대신 ‘최선의 이해’로 나아간다. 


엄마 역에는 <돌풍>과 <파일럿>에서 열연한 오민애 배우가, <최악의 악>과 <여신강림>으로 매력을 발산한 임세미 배우가 딸 역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단짝 변호사 친구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하윤경 배우가 동성연인 역을 맡았다. 여기에 <우리들>, <우리집>, <애비규환> 등 서정적인 감성으로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들여다봤던 제작사 아토가 나섰다. 9월 4일 개봉.

 

일본 예술영화 1위 차지한 감성영화, <52헤르츠 고래들>
<52헤르츠 고래들>(나루시마 이즈루)은 마음의 상처를 숨긴 채 작은 바닷가 마을의 외딴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52헤르츠 고래처럼 살아가던 키코(스기사키 하나)가 비 오는 어느 날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어린 소년(쿠와나 토리)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소년의 SOS를 알아챈 순간 키코는 예전에 그녀의 SOS를 들어줬던 ‘안고’(시손 쥰)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외면당하며 외롭게 살던 키코는 영혼의 짝 안고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52헤르츠 고래들>은 ‘세상에 딱 한 명,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라는 믿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과 구원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그렸다.


52헤르츠 고래는 북태평양 일대에서 서식하는 고래다. 통상적인 고래가 의사소통할 때 12Hz에서 25Hz 사이의 주파수 대역을 활용하는데, 52헤르츠 고래는 이보다 높은 52Hz 내외의 주파수로 음파를 발신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제목에 등장하는 52헤르츠 고래가 익숙할 수 있다. 전 국민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의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인물이었는데, 바로 52헤르츠 고래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영우의 휴대폰 번호 뒷자리도 ‘5252’로 52헤르츠 고래를 의미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처럼 신비롭고 아련한 존재인 52헤르츠 고래에 주목한 건 한국과 일본의 작가들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K-POP 그룹 BTS가 과거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 자신들의 외로움을 52헤르츠 고래에 비유한 노래 ‘Whalien 52’도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화양연화 part 2> 수록, 2015년 발매).  

 

 

<52헤르츠 고래들>은 일본이 사랑하는 섬세한 문체의 마치다 소노코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은 제18회 일본 서점대상을 비롯해 TBS 임금님의 브런치 BOOK 대상 1위, 독서미터 OF THE YEAR 2020 종합랭킹 1위, 제4회 미라이야 소설 대상 수상에 빛나는 화제의 작품이다.

 

<8일째 매미>로 제35회 일본 아카데미상 10관왕의 영예를 안았고,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로 한국 직장인 관객들의 무한 공감을 받았던 나루시마 이즈루가 메가폰을 잡았고,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로 한국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스기사키 하나가 상처투성이 영혼 키코 역을 맡아 믿을 수 없는 풍부한 감성 열연을 펼친다. 9월 4일 개봉.

 

<스타워즈> 시리즈의 히로인 데이지 리들리의 <죽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어>
“정말 힘들어. 그렇지? 인간으로 사는 거.” 프랜(데이지 리들리)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죽음을 생각하면 어떤 자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죽음에만 골똘히 몰두하다 보니, 직장동료가 부르는 소리를 놓치는 건 다반사요. 회사에서 열리는 팀원의 생일 파티에서도 ‘one of them’으로 참석해 박수칠 뿐이다. 


작은 의미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되풀이되는 어느 날, 프랜의 일상은 새로 입사한 한 남자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를 만나며 변화의 기류를 맞이한다. 로버트가 한 번 웃으면 그녀의 마음도 바뀐다. 한 번의 웃음은 곧바로 파이 한 조각, 한 번의 대화, 한 번의 데이트, 미묘한 기류로 이어진다. 죽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프랜은 로버트와의 새로운 관계가 싫지 않다. 그런데 죽음에 집착하며 고요했던 자신의 일상과 사랑의 감정이 비집고 들어온 지금의 일상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두 사람의 미래를 가로막는 건, 아니 프랜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막고 있는 건 어쩌면, 프랜 자신 아닐까?


처음 마주하는 독특한 힐링 로맨스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감독 레이첼 램버트) 역시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의 주인공 ‘레이’역을 연기하며 할리우드 대세 배우 대열에 오른 데이지 리들리가 주연과 함께 영화의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됐다.


“내향인들을 위한 섬세한 사랑 이야기의 아름다운 영화”(선댄스영화제), “삶을 향한 작은 발걸음에서 용기를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의 폭력에 지쳤다면, 이 영화가 해독제가 될 수 있다”(엠파이어매거진), “데이지 리들리는 자발적인 고립과 새로운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프랜을 명확하게 연기했다”(가디언), “프랜의 고독은 현대인의 삶이 어떻게 불안한지 보여주며 죽음에 대한 상상은 얼마나 도전적이며 해방적인지에 대한 우아한 논문과도 같은 영화!”(헐리우드리포트) 등 유수의 언론이 이미 찬사를 보내며 영화가 선사할 공감과 위로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인디와이어> 선정 ‘떠오르는 여성 영화감독’ 28인에 선정된 레이첼 램버트가 메가폰을 잡았다.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제39회 선댄스 영화제 US 드라마틱 경쟁 부문, 제27회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 카메라 루시다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낭만적인 영상미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 몽환적으로 그려낸 프랜의 상상과 함께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에 따른 섬세한 감정 묘사로 관객을 사로잡을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어>가 던지는 질문 ‘당신도 죽음을 상상하나요?’에 대한 대답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9월 4일 개봉.

 

● 사진제공 <안녕, 할부지> 스틸&포스터, 바른손이앤에이 / <딸에 대하여> 스틸&포스터, 영화로운 / <52헤르츠 고래>, 목요일아침 / <죽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어> 스틸&포스터, 디오시네마

윤재희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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