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유보통합기관 명칭 왜 논란인가?

2024.11.06 10:00:00

 

현 정부는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영유아 교육·보육환경을 마련하여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키고 양질의 교육·보육을 모든 영유아에게 제공하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유보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유보통합은 2024년 6월 27일 자로 어린이집에 관한 업무가 교육부로 이관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듯하다. 하지만 가장 상징적이면서 기본적인 ‘통합기관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유보통합은 단지 기존 유치원과 어린이집 체제에서 교육부 중심으로 행정체계를 개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운영 관행에서 벗어나, 보육과 유아교육을 통합하여 영유아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으로 변화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합기관의 명칭은 향후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영유아교육 및 보육(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 ECEC)에 대한 공적책임을 명시하여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영유아·부모·사회가 이러한 목적과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친근한 이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올해 6월 발표한 유보통합 실행계획(안)에 담긴 가칭은 ‘영유아학교’이다. 이에 대해 ‘영유아학교’, ‘유아학교’, ‘학교’ 명칭에 대한 찬반 등 우리의 지향점이 담긴 ‘언어의 그릇’을 찾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우리나라 유보통합의 역사
우리나라 유보통합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남북통일보다 유보통합이 더 어렵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다. 


처음 유보통합기관의 명칭이 등장한 것은 1997년 6월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제4차 교육개혁방안이다. ‘유아교육의 공교육체제 확립방안’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영유아에 대한 국가관리체제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이원화된 문제를 개혁하고, 공교육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방안으로 ‘유아학교’를 제안하였다. 이후 유보통합과는 별개로, 유치원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유치원 또는 공립유치원 명칭을 유아학교로 변경하여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기가 있었고, 이를 근거로 현재 통합기관의 명칭을 ‘영유아학교’가 아닌 ‘유아학교’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떤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상황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집에 재원하는 0세~만 2세 영아는 2001년 53,229명에서 2023년도 624,463명으로 약 11.7배 늘어났다(e-나라지표, 2024). 이를 통해 볼 때 1997년 영아보육 수요 기록을 국가 기록상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에 비해 매우 낮았을 것이고, 당시 제기된 ‘유아학교’ 명칭이 대두된 배경은 지금의 상황과 다르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늘어난 영아 보육의 수요와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 재접근이 필요하다.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유아와 영아의 보육을 담당한 새마을유아원이 설립되었으나, 맞벌이 가정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1993년 폐지 후,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전환된 전례를 고려하여 통합기관이 가져야 할 사회적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명칭 변경, 새로운 의미 담을 수 있어야  
교육부가 올해 6월 발표한 유보통합 실행계획(안)에 담긴 가칭 ‘영유아학교’에서 다시 출발해 보자. ‘영유아’ 또는 ‘유아’는 출생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연령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으며, ‘유아’보다는 ‘영유아’가 전체 연령을 포괄하는 정책·접근에 자주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영유아’는 ‘유아’라는 용어에 비해 연령대에 따라 다른 발달적 요구를 고려하여 접근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유아’를 0세부터 지칭하여 ‘유아학교’ 명칭으로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행 복지제도에서 출생 후 24개월까지를 별도로 구분하여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동일 연령이 법적으로 서로 다른 용어로 규정되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영아와 유아를 분리하여 별도 기관으로 운영하는 안을 제안하는 의견도 있으나, 현재 유보통합 논의는 지금의 교육을 유지·고수하는 관점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영유아교육을 논하는 시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른 접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치원(幼稚園)은 프뢰벨이 명명한 ‘kindergarten(어린이의 정원)’ 일본식으로 표기한 요치엔(ようちえん)을 따른 것이다. 중국·대만에서는 이를 유아원(幼兒園)으로 명명한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이라는 용어는 1897년 3월 일본의 관료와 부유층 자제를 위한 최초의 유치원이 부산에 설립되면서 사용되었다. 일재 잔재 청산을 위하여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이었던 국민학교를 55년 만에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하였음에도 유치원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조속히 순화해야 할 용어임은 분명하다. 1996년 3월, 초등학교로의 명칭변경은 당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초등교육을 연다는 의미도 표방하였다. 


유치원의 명칭변경 역시 새로운 의미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순화대상 어휘는 고유어로 바꾸는 기준을 고려해 보자. 앞서 살펴본 ‘유아’ 또는 영유아’ 대신 ‘어린이’라는 우리의 고유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린이는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선생이 어린 아동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용어로 제안하여 보급된 우리말이며, ‘어린이 인권’을 상징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역사성을 고려해 볼 때 ‘어린이학교’는 의미 있고, 활용성에서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는 청소년까지도 포괄될 수 있는 넓은 개념이며, 「도로교통법」 등에서 어린이는 만 13세 이하로 정의하므로 ‘초등학교’와 구분하기에 대상 연령이 불명확할 수 있다. 


‘학교’ 담론에 왜곡되지 않아야 할 영유아교육 배움 방식  
그동안 학교라는 법적근거가 있었지만, 학교로 온전히 간주되지 못한 유치원의 역사를 돌아볼 때,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경시되었던 영유아교육 및 보육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은 유보통합 과정에서 반드시 담보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한 점에서 ‘영유아학교’라는 명칭은 영유아 시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미와 그에 부합하는 영유아교육기관의 위상을 나타내기에는 일면 적절하다. 그런데 언어와 사회·문화는 상호작용하여 사회적 의미를 형성한다. ‘학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어떠한가? ‘학교’ 담론은 교육의 전문성·신뢰성·공공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효율성·수월성·경쟁추구 그리고 형식적·학문적 교육을 떠올리게 하여 부모와 사회가 과도한 기대를 갖고 선행학습을 용인하게 되거나, 영유아 시기 배움의 방식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에게 ‘취학’, ‘입학’은 긴장·부담·준비와 연결되는 단어이다. ‘영유아학교’라는 명칭에 대해 “이제 취학준비는 출생 전 태교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에만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영유아의 발달특성과 영유아가 주도하는 놀이와 같은 즐겁고 고유한 배움의 방식이 ‘학교’ 담론의 초월적 기준에 의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학교’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추구하고자 하는 합리성·공공성과 영유아교육이 지향하는 실체가 분리되는 지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유보통합 실행계획(안)에서 기존 초·중등학교보다는 설립과 운영 측면에서 유연성과 다양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학교를 언급한 바 있다. ‘영유아학교’의 교사가 되고, ‘영유아학교’의 교장이 되고, ‘학교’로서 공적재정 투입의 당위성이 확보된다는 어른들의 관점에만 머물기보다는 영유아에게 미치는 영향과 최선의 이익을 위한 방향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바꿔 부를 명칭이 아닌 영유아교육의 지향점이 담긴 용어이길
영유아교육의 특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0세 이후 모든 영유아를 어린 학습자로 간주하려는 생애전반에 걸친 교육적 관점으로의 변화와 학교(공교육 및 교육의 공공성 강화)체제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 영유아의 배움·성장을 지향하는 개념을 학교라는 단어로 요약할 때 과연 왜곡 없이 담을 수 있는지 검토하는 노력이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학교’의 전통적 이미지를 벗어나 대체할 수 있으며, 영유아교육의 본질을 반영하고 포괄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새로운 용어를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유아교육기관은 그곳과 관계 맺는 모든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운영될 때 의미가 있다. 새로운 통합기관의 명칭은 우리나라 교육행정체계의 명칭이기도 하지만, 특히 영유아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될 것이다. 영유아의 삶과 놀이에서, 말·노래·이야기를 통해 살아있는 단어로 불리고 사용된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통합기관의 명칭을 둘러싼 뜨거운 이 논쟁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바꾸어 부를 명칭을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는 없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기관의 탄생이 가지는 파급력과 도전을 함께 고민하는 즐거운 창조의 과정이 되길 기대한다. 우리의 시대 인식과 미래를 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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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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