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님은 월급날이 두려웠다. 연말정산 때문이다. 어차피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1월 말에 행정실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다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혹시 몰라 나이스에 접속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선생님의 왼쪽 고막을 때렸다. 김 선생님은 조심스레 조회 버튼을 눌렀다. 짜잔! 월급명세서가 웃으며 말했다. “노트북 한 대 값 토해내세요.”
김 선생님이 읽기를 포기한 이유
김 선생님은 이 수모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에 ‘연말정산 팁’이라고 검색했다. 그랬더니 연말정산 악당의 부하들이 줄줄이 소시지로 나오는 게 아닌가? 각자 자기 이름표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1번: 소득공제
-2번: 세액공제
-3번: 과세표준
3초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김 선생님은 조용히 X 버튼을 눌렀다. 김 선생님이 글 읽기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워서다. 소득공제, 세액공제, 과세표준 같은 낱말은 세금을 주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은 1년에 한두 번 접할까 말까다. 당연히 낯선 낱말로 범벅된 글은 읽기 싫다.
이건 누구 잘못일까? 이해 못 한 김 선생님 탓일까? 절대 아니다. 전적으로 글쓴이의 잘못이다. 독자가 이해 못 했다면 저자가 잘못한 거다. 그러므로 글은 무조건 쉽게 써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
“3월엔 학생들과 래포를 좀 쌓아보려고요”
‘래포(rapport)’는 친밀한 관계, 유대감 정도로 옮길 수 있는 낱말이다. ‘라포’ 또는 ‘라포르’라고 하는 선생님도 많다. 그런데 이건 우리 업계 종사자들이나 아는 말이다. 만약 학부모 상담할 때 이 말을 쓰면? 열에 아홉은 못 알아들을 것이다.
“아니, 래포를 모른다고요?“ 놀라지 마시라. 대부분은 이 말을 모른다. 선생님이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다 알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을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둘 중 한쪽만 전문용어를 써서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초등 3학년도 이해하게 쓰자
”아니, 과세표준을 모른다고요?“ 세무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쉽게 설명해야 한다. 글을 쉽게 쓰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내 글을 초등학교 3학년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0살이 이해할 수 있으면 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연말정산을 이렇게 설명한다.
-소득공제: 연봉 줄이기 대작전
-세액공제: 세금 줄이기 대작전
솔직히 이것도 좀 더 손질해야 한다. 초등 3학년은 ‘연봉’이라는 말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월급 줄이기 대작전’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10살짜리 어린이도 다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은 남들보다 글쓰기에 유리하다. 쉽게 설명하는 걸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보다 쉽게 설명하는 걸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글수저다. 그러니 글은 쉽게 쓰자. 특히 SNS에는 더더욱 쉽게 적자. 그래야 사람들이 읽어준다. 잊지 말자. 전 국민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