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아침 한 끼 준비하는 봉사자들

2025.03.21 13:19:17

'사랑을 만드는 사람들', 장안공원 무료급식 13년째 자원봉사

 

“여보, 설마…. 사람들이 아침식사 한 끼 먹으려고 새벽 6시에 나올까?”

“나 역시 믿기 어려운데. 시간 맞추어 취재 나가야지요. 지인과의 약속도 지키고요.”

 

15일 토요일 밤 취침 전, 다음날 아침 스마트폰 울림 시각을 오전 5시 20분에 맞추어 놓으며 우리 부부가 주고 받은 대화다. 지인 중 한 분이 매월 1, 3주 일요일이면 무료급식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e수원뉴스 으뜸기자가 그냥 흘려 듣지 않았다. 새벽 6시 이전에 도착하리라 마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기상 신호에 맞추어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깜깜한 밤이다. 세면을 하고 곧바로 출발이다. 바람이 차갑다. 새벽이라 그런지 도로가 한산하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을 들고 목적지인 장안공원에 도착하니 5시 4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둠 속 벤치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인원 수부터 세었다. 무려 32명.

 

대부분이 어르신이었지만 50대 여성인듯한 분도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자원봉사자다. 5시 50분. 1톤 냉동탑차 트럭 한 대와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아직도 컴컴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들은 자재보관소 창고를 열고 쌓여있던 물건을 꺼낸다. 의자, 천막, 히터기, 식탁 테이블 등이 나온다. 전선도 연결한다. 송풍기로 바닥 청소 후 대형 천막 3개가 설치되고 전등까지 켜니 마치 야시장 같다.

 

 

식탁 위에 식탁보도 깐다. 취사용 LPG통도 보인다. 배식탁자 위엔 식판, 반찬이 놓여지고 대형 국그릇엔 소고기무국이 끓기 시작한다. 스티로폼 박스에 밥이 있다. 잡채통이 보인다. 계란 후라이는 즉석에서 요리한다. 식후 커피용 대용량 보온물통도 준비했고 종이컵에는 믹스커피가 담겨있다. 후식용 떡과 쌀튀밥, 야쿠르트가 담은 봉지가 있다.

 

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조직적이다. 체계적이다. 남녀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업무 분장이 되어 있다. 마치 잘 훈련된 군대의 군인처럼 움직인다. 하루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역사적인 첫 급식이 2012년 11월 18일이니 13년째다. 처음 본 모습, 아름다운 광경이다. 거룩한 모습이라 해도 좋으리라. 기자로서 감동 받았다.

 

 

이뿐 아니다. 입구 천막에는 이미용 봉사 천막이 설치됐다. 한 어르신이 미용사에게 자신의 머리 커트를 맡기고 있다. 남성 한 분은 바닥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있다. 장부를 살펴보니 ‘행복한 아침나눔 급식(이미용 봉사활동)’이라 쓰여 있다. 2016년 1월부터 시작했는데 많을 때는 22명이다. 평균 10명 정도 이미용 봉사를 받고 있다. 자원봉사자 3명이 이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배식은 어떻게 할까? 여느 급식소처럼 급식판 들고 줄 서서 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대상자들은 호명하는 번호표대로 한 테이블에 6명이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후식용 간식 봉지가 놓여져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밥과 국그릇, 반찬이 담긴 식판을 테이블에 나른다. 왜 그럴까? 질서와 안전사고 예방 차원이다. 어르신들이 넘어져 뜨거운 국그릇이 엎어진다면? 13년간 무료급식 자원봉사 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여기서 제공하는 음식 맛과 영양가는 어떠할까? 대상자 배식이 끝날 무렵 자원봉사자들이 아침식사를 한다. 나도 배식을 받아 먹어 보았다. 한마디로 꿀맛이다. 반찬은 한우 소고기무국인데 두부가 들어갔다. 그리고 잡채에 계란후라이다. 간도 딱 맞고 단백질도 충분하다. 국이 뜨거워서 그런지 추위에 얼은 온몸을 녹여 준다. 단, 봉사자에겐 후식 간식이 없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사랑을 만드는 사람들’(사만사) 봉사단체다. 사만사 강승원(56) 회장을 만났다. 사만사는 홀몸 어르신, 노숙인 등을 위한 월 2회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겨울철에는 김장을 담가 250여 가구에 공급한다고 한다. 이 단체의 목표는 ‘밥 굶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매주 1, 3, (5)주 장안공원에서 나눔을 하고 있다.

 

 

강 회장은 “이곳에 나온 봉사자 30여 분은 대개 2∼3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후원도 여러 곳에 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2012년 11월 무료급식을 무모(?)하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천막, 테이블 장비도 생기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서둔동, 조원동, 파장동 세 곳 공유 냉장고에 100여 분이 드실 반찬을 가득 채워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에게 자원봉사의 보람을 묻자 “이곳 어르신들이 웃으면서 식사를 하신다. 이곳이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겨준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 외롭고 쓸쓸했는데 이야기를 하고 들어 준다. 담소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수원시 인구 중 45만 명이 자원봉사자로 자긍심이 높아 자랑스러운데 관심 갖고 참여와 후원인이 좀 더 늘었으면 한다. 오늘도 30명 정도가 나왔는데 기본 50∼60명은 확보되어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자원봉사 10년차인 박현희 사무총장(55). 박 총장은 번호표 배부, 커피 접대, 자원봉사자 출석 관리, 질서유지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144명이 최종 식사 인원이라고 알려 준다. “사만사 활동이 알려져 어르신들이 편하게 오시어 알찬 메뉴의 건강한 식사를 행복하게 하셨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8년차 숨은 자원봉사자 한 분을 발견했다. 2시에 기상, 덕영대로변 센터에 3시 출근해 오늘 144명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준비한 황진옥(52) 조리장. 개인사업을 한다는 그는 자원봉사를 통하여 얻은 효과를 이야기한다.

 

“자원봉사를 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하며 스트레스가 풀린다. 마음이 다스려지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앞으로도 낮은 자세로 한결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겠다.”

 

오늘 만난 수원시 정영모 의원을 비롯한 곳곳에서 오신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순수성, 근면성, 자발성, 이타성, 성실성, 인내력에 미소 띤 온화하고 행복한 얼굴을 보았다. 이른 새벽에 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새벽부터 뛴 기자 생활이 행복하기만 하다. 오늘 수원화성에 떠오르는 커다랗고도 찬란한 태양을 보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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