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전 세계 167개국 중 32위로 전년보다 열 계단 하락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로써 최상위 국가 범주에서 탈락해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분류됐다. 이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 달 말에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4)에 의한 것이다.
EIU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점수가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시도에 따른 여파는 의회에서,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을 고조했고 2025년에도 지속할 것 같다"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5년에 들어서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인 ‘자유 민주주의’에서 겨우 선거제도를 유지해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나가는 ‘선거 민주주의’ 단계로 하락했다. 이는 오랜 세월 우리가 쌓아 온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림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의 주목을 받는 엘리트들과 지식인들도 ‘선거부정’ ‘헌법재판소 파괴’를 외치며 대한민국의 선거제도와 사법체제마저 부정함으로써 이제 대한민국의 ‘선거 민주주의’ 조차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태로 접어들어 그 끝없는 추락의 종점은 어디일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그 속성상 온갖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이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못마땅하더라도 일단 함께하도록 해야 하는, 고난의 정치체제라 할 것이다. 따라서 힘으로 억누를 수 없고 기만과 거짓이 잠시는 통할지 모르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국가 운영과 관련하여 소통하고 설득과 타협, 절제 등의 과정이 특별히 필요하다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최근 이와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하향 결과를 얻은 것은 자업자득, 인과응보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21년 마침내 선진 민주국가의 위상을 당당히 획득했고 성공적인 우주로의 자체 로켓 발사 과학시스템을 갖추었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도처에서는 주술, 미신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계시를 받았다거나 접신했다는 사람이 여전히 있고 이를 따르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느 개인, 예외적인 집단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결집해 실행해야 하는 민주주의라면 좀 더 합리적이어야 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20세기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작가이자 과학 정신의 수호자인 칼 세이건은 사후에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실린 <과학과 희망>이란 글에서 "과학은 변화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본질적 도구"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적 사고방식은 창의적이고 훈련된 사고방식으로 과학의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런 사고방식은 과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자기비판을 하거나 우리의 생각을 바깥세상에 적용해서 검증할 때마다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또 "우리가 자신에 관대하고 무비판적일 때, 희망과 사실을 혼돈할 때, 사이비 과학과 미신에 빠져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칼 세이건의 말을 우리의 민주주의와 연계하는가? 이는 자기비판, 자기검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늘 옳다는 사람이 만나면, 후자가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면 스스로를 검증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 순간 승패가 기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기고, 조롱하고, 배제하는 것이 승리의 상징처럼 만연해진다.
우리 교육은 혹시라도 사이비 과학과 미신에 근거하여 실행되는 것은 없는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민족’으로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교육조차 미신과 주술적 사고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에 심히 우려하고 경계할 일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빙자하여 과학의 객관성보다 미신과 주술이 우월한 것으로 일시적인 오해와 왜곡을 유발할 수 있는 반과학적이자 반지성적인 위험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의 민주주의 교육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교육으로 바람직한 세계시민,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보다 본질적인 도구로 삼아야 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