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교육이 깊어지는 계절

2025.09.18 13:42:37

“열매는 저절로 맺히지 않는다. 뿌리 내린 시간과 햇빛을 견딘 날들이 고요한 가을빛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젠 제법 선선한 가을이 왔다. 연이은 가을비가 내린 후 기온이 30도 밑으로 훌쩍 떨어지더니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이 되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들판은 여름 내 한 뼘씩 훌쩍 자란 곡식들이 키 재기 시합을 하는 듯하다. 아침저녁은 물론 한낮에도 바람이 선선해지니, 가로수 양 옆의 풀밭에서는 이름 모를 각종 풀벌레들의 합창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이제 짙은 녹색의 나무 잎도 새로운 색깔로 변모할 채비를 서서히 준비하리라. 이처럼 자연은 스스로의 속도로 무르익으며 ‘결실’이라는 가장 묵직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건네는 듯하다.

 

교육에서 가을은 단순히 학기의 중간 지점이 아니다. 이 계절은 우리가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를 되짚게 하는 ‘성찰의 시기’가 된다. 봄의 희망과 여름의 열정이 지나간 뒤, 그간의 교육이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를 확인하고, 비로소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별함이다.

 

가을, 마음이 자라는 시간

어느 중학교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사색의 산책’이라는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도시 외곽의 작은 숲길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걷는 활동인데, 그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건넨다. “요즘 네 마음은 어떤 색깔이니?”, “네가 지금껏 참았던 말이 있다면, 나무에게 속삭여볼래?”, “이 계절에,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아이들은 조용히 걷고, 생각하고, 어떤 아이는 가을바람에 떨어진 나무 잎 하나를 들고 교사에게 묻는다. “선생님, 이 나무 잎도 쓸모가 있나요?” 교사는 말한다. “그래, 이 낙엽은 나무에게 다시 영양분이 되지.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너의 실수나 눈물과 고통도 다 의미가 있는 거야.”

 

가을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그동안 진도를 맞추느라 쫓기듯 지나온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서 잠시 벗어나,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교육, 마음을 돌보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가을, 이루어야 할 교육

관계 회복의 교육

2학기 시작이 한참 지난 지금은 교사-학생, 학생-학생 간의 관계가 가장 흔들리기 쉬운 시기다. 학기 초의 긴장감이 풀리고, 성적과 입시 압박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서적 안전망’을 재건하는 교육활동에 힘써야 한다. 하루 10분의 마음 나누기, 짝과의 진심 편지 쓰기, 교사와의 1:1 짧은 상담 등, 작은 실천들이 아이들을 다시 교육의 자리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삶을 묻는 교육

가을은 본질을 돌아보는 계절이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니?”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이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가을마다 ‘삶의 진로 인터뷰’ 프로젝트를 운영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님, 교사, 동네의 다양한 직업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자기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는 활동인 것이다.

 

“꿈이 뭐냐?”는 질문보다, “어떤 삶이 의미 있었느냐?”는 질문이 아이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우리는 진로교육이 곧 삶의 방향을 함께 묻는 철학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계절에 기억해야 한다.

 

자연 속 교육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배운다. 텃밭을 가꾸며 ‘기다림과 책임’을 배우고, 낙엽을 줍고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사라짐과 순환’을 느낀다. 가을은 그 자체로 완전한 교과서이며, 살아 있는 인문학 수업이 될 수 있다. 이 계절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자연을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 야외 독서활동, 계절 탐구 미술활동 등 생태 전환 수업은 배움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육은 계절을 닮아야 한다

가을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천천히, 깊이, 그리고 함께’ 라는 메시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빠르게 성취만을 추구하는 교육이 아닌, 서서히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지향하는 교육, 지식을 넘어서 사람을 기르는 교육, 그런 교육이 우리 안에서 무르익기를, 이 가을에 간절히 바래본다.

 

아이들이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교육,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게 하는 교육,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교육, 그런 교육이 가능한 계절이 바로 이 가을이다. 우리 모두, 그 깊은 교육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하고 기대하는 마음이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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