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먹거리로 가득 찬다. 동해의 차가운 심해에서 올라온 대게가 제철을 맞고, 남해안에서는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이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여기에 겨울 진객 방어와 과메기, 그리고 가을의 마지막 선물인 홍시까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제철 먹거리들이 전국 각지에서 절정의 맛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11월은 해산물과 농산물이 동시에 제철을 맞는 시기여서, 다양한 미각 체험을 원하는 여행객에게 최적의 시즌으로 꼽힌다.
동해안 ‘대게’ 시즌 개막...
영덕·울진 '붉은 황금' 수확
11월 초는 동해안에 대게잡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 경북 영덕과 울진 일대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시기 동해 수온이 낮아지면서 대게는 살이 꽉 차고 단맛이 절정에 이른다.
영덕 강구항은 대게의 대명사다. 새벽 경매가 시작되면 항구는 붉은 대게로 가득 찬다. 강구항 일대에는 수십 개의 대게 전문점이 밀집해 있어, 갓 잡아 올린 신선한 대게를 바로 쪄서 먹을 수 있다.
울진 후포항 역시 대게로 유명한 곳이다. 후포항은 영덕보다 상대적으로 한적해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대게를 즐길 수 있다. 후포항 인근의 죽변항도 숨은 대게 맛집들이 많아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의 본고장...
겨울바람 맞은 ‘청어‧꽁치’ 맛↑
11월 중순, 포항 구룡포에는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항구 곳곳에 청어와 꽁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해풍에 말려지는 모습이다.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영하의 날씨에서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며 자연 건조시킨 것으로, 포항 구룡포가 전국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메기라는 이름은 청어의 눈을 꼬치로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원래는 청어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꽁치 과메기가 더 대중적이다.
통영 굴, '바다의 우유'
남해안 청정해역의 자부심
경남 통영은 국내 굴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굴의 수도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굴이 가장 맛있는 시기로, 이때 굴은 글리코겐 함량이 최고치에 달해 단맛이 강하고 영양이 풍부하다.
통영 중앙시장은 굴 요리의 천국이다. 생굴은 물론 굴전, 굴국밥, 굴구이, 굴찜, 굴 무침 등 굴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막 까낸 생굴은 바닷물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 신선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굴 양식장을 직접 견학하고 굴을 직접 까서 먹어보는 체험프로그램도 인기다.
거제도 역시 굴로 유명하다. 장승포항과 구조라 해수욕장 인근에는 굴구이 전문점들이 밀집해 있다. 숯불에 구운 굴은 특유의 고소함이 배가 되어 생굴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제주·부산, 방어의 계절
기름진 뱃살이 입에서 ‘사르르’
“가을 전어, 겨울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11월부터 2월까지는 방어가 가장 맛있는 시기다. 산란을 앞두고 지방을 축적한 방어는 뱃살 부분의 기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제주도 모슬포항은 방어 축제로 유명하다. 매년 11월 말부터 12월 초에 열리는 최남단 방어 축제에는 전국의 미식가들이 모여든다. 모슬포 방어는 특히 회로 먹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두툼하게 썬 방어회는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지방층과 쫄깃한 살코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산 자갈치시장도 방어의 명소다. 즉석에서 방어를 손질해 회로 먹을 수 있고, 방어 대가리 구이, 방어조림 등 다양한 방어 요리도 맛볼 수 있다. 특히 방어 카마(목살) 구이는 부산의 숨은 별미로, 기름기가 많아서 구우면 특유의 고소함이 일품이다.
청도 반시, 상주 곶감
주황빛 '달콤함의 결정체'
경북 청도와 상주는 감의 고장이다. 11월이 되면 청도 일대는 주황빛 감으로 물든다. 청도반시 축제는 홍시 시식은 물론 감 따기 체험, 감말랭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상주는 곶감의 주산지다. 상주 곶감은 당도가 높고 쫄깃한 식감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1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곶감 생산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으며, 갓 만든 곶감을 구입할 수도 있다. 상주 곶감 공원에서는 곶감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김장철 맞아 전국 각지 '김치 대전'
11월은 본격적인 김장철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 배추가 가장 맛있을 때 담그는 김장 김치는 한국인의 겨울 준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사다.
전남 해남은 절임 배추의 주산지로, 전국 절임 배추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해남 배추는 해풍을 맞고 자라 단맛이 강하고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여수 돌산도는 갓김치로 유명하다. 돌산갓은 특유의 알싸한 맛과 향이 강해 김치로 담그면 독특한 풍미를 낸다. 11월 돌산갓김치 축제에서는 갓김치 담그기 체험과 시식 행사가 열린다.
강화도 순무 김치도 이 시기의 별미다. 강화 순무는 단맛이 강하고 아삭한 식감이 특징으로, 김치로 담그면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낸다.
서해안 새조개·꽃게
11월만의 숨은 진미
서해안에서는 11월에 새조개와 꽃게가 제철을 맞는다. 충남 홍성과 보령 일대는 새조개의 주산지로, 이 시기 새조개는 살이 통통하고 단맛이 강하다. 새조개 샤부샤부는 이 지역의 명물로, 신선한 새조개를 끓는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맛이 일품이다.
인천 소래포구, 충남 태안 안흥항 등에서는 살이 꽉 찬 꽃게를 맛볼 수 있다. 간장게장, 양념게장은 물론 꽃게탕, 꽃게찜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