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직장 생활하는 아들 부부를 돕기 위해 두 손주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등하원 시키는 일과 하원 후에 일정 시간 동안 아이들 돌봄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위해 가족의 어른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 뿌듯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더불어 이에 부응하듯 날로 건강하고 씩씩하며 지혜롭게 성장하고 있는 손주들에게도 고마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분명하게 놓치지 쉬운 것이 있으니 바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들의 봉사와 헌신, 아이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최근 경기도 부천 지역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발생한 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학부모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지닌 민낯을 처참하게 드러내고 있다. 독감에 걸려 고열이 나는데도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출근해야만 했던 교사는 결국 출근 3일 만에 응급실로 들어갔고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그 젊은 교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유아교육을 지탱하는 ‘사립유치원’이라는 거대한 축이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경고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매일 아침, 유치원 현관에서 환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학부모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일일이 응대하는 교사들의 모습 뒤에는 우리가 외면해 온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영유아와 정성껏 2~3시간만 함께 안전에 유의하며 놀아주어도 온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상태를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유치원 교사는 단순한 돌봄 인력이 아니다. 아이들의 생애 첫 사회적 관계와 인지 발달을 책임지는 스승, 즉 '전문 교육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통계청과 육아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교사의 평균 근무 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을 상회하지만, 급여 체계는 공립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신분 보장 또한 불안정하다.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참아야 한다”는 정서적 가스라이팅은 그들을 병가조차 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유아교육의 불평등 상황을 살펴보자. 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더욱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교사 자율성 및 처우’는 매우 모범적이다. 핀란드는 유치원 교사에게 석사 학위 이상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대신, 그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교사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몰아붙이는 환경에서는 양질의 교육이 나올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는 어떤가? 무엇보다도 사립학교법과 차별적 구조가 눈에 부각된다. 우리나라 공립유치원 교사는 교육공무원법의 보호를 받지만, 사립유치원 교사는 사립학교법과 근로기준법 사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일한 교육 과정(누리과정)을 가르치고 동일한 자격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속 기관의 설립 형태에 따라 생명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한다.
교사의 희생만으로 유지되는 교육은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제는 감성적인 위로를 넘어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교사 1인당 원아 수의 획기적인 감축과 ‘2담임제’의 실질적인 의무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과밀 학급 구조(대개 20명 내외)에서는 한 명의 교사가 스스로 생리 현상 등을 포함한 앞가림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안전, 교육, 행정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야만 이번 사례처럼 교사가 아플 때 즉각적인 업무 대행이 가능하며,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급여 및 처우’의 획기적인 개선이 요구된다. 적어도 공립 수준의 단일화를 필요로 한다. 사립유치원 교사의 급여를 원장의 재량이나 유치원의 재정 상태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사립유치원 교사의 인건비를 전액 지원하는 ‘국가 책임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이 국가 표준으로 운영된다면, 그 과정을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 또한 국가 표준에 맞춰 공립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
셋째, ‘교원 복지 보장법’의 제정 및 대체 인력 풀(Pool) 운영이 필요하다. 교사가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권리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교육청 단위에서 상시 대기하는 ‘유아교육 전문 대체 인력 뱅크’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1시간 이내에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교사가 아픈 몸을 이끌고 현관에 서는 비극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유치원을 '교육의 요람'이라 부른다. 어느 유명 인사는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공중도덕과 삶의 원칙을 유치원에서 거의 다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유치원 교육은 중요한 기능을 행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의 손녀 역시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지구 구하기’나 ‘환경 보호’ 문제에 대해서 어른을 부끄럽게 할 정도다. 거리를 지나며 여기저기 나뒹구는 휴지나 쓰레기를 보면 즉각 “아이 참, 지구가 아프단 말이야~”를 외치며 주우려 한다. 또한 어른들이 이따금씩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그건 나쁜 말!”하며 즉각 인지한 대로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말로만 교육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에서 교사들의 솔선수범적인 말과 행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배움이자 교육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요람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교사들이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다면, 그 안의 아이들이 과연 온전한 사랑을 받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유치원 선생님은 아마 우리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교육의 가치에 교사의 생명은 포함되어 있습니까?"라고 물을지 모른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답해야 한다. 2025년부터 유보통합을 국가적 교육혁신으로 실행함과 병행하여, 유치원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립유치원과 그 교사들의 헌신을 값싼 비용으로 치부해 온 지난날의 관행과 과오를 성찰하고, 그들이 교육 전문가로서 존중받으며 아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고인이 된 선생님께 대한 유일한 사죄이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확실한 투자라 믿는다. 이번에 운명을 달리한 유치원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