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창가에서] 히메나 선생님이 된다는 것

2026.04.13 09:10:00

전교생이 53명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 무지개색으로 칠해진 2층 건물에 다른 데보다 유난히 넓은 하늘을 가진 작은 학교다. 줄곧 담임만 해오다가 올해는 전담을 하게 됐다.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를 만나며 매번 다른 수업을 준비해야 하니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많이 웃는 시간이 늘었다.

 

웃음보다 걱정 앞섰던 담임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당시 저녁 6시만 되면 TV 앞에 붙어 앉아 어린이 외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 집중하면서 ‘히메나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스물세 살 때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그런데 막상 학교 현장에 나와보니 꿈꾸던 학교와는 좀 달랐다. 즐거움보다 책임이 앞섰고, 사고를 걱정하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늘 긴장을 해야만 했다. 경력이 쌓여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의자에 털썩 앉아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꿈을 이룬 걸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담임을 할 때는 더 힘들었다. 당시엔 아이보다 더 조급한 잔소리 많은 엄마였다. 잘못된 게 보이면 얼른 바로잡아주고 싶고, 공부할 때는 꼼꼼히 가르치고 끝까지 검사했다. 자식 같은 아이들을 가능한 한 더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 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종일 있다 보면 아이들의 모든 면이 낱낱이 보였다. 특히 고쳐야 할 점들에 집중하다보니 웃음보다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전담을 하니 아이들이 조금 달리 보인다. 우리 반이 아니라는 사실이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한다. 사사건건 고치려 들지 않는다. 아이가 잘못해도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공부한 내용을 물어봤는데 대답하지 못하고 연필 꼭지를 물며 갸우뚱거리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그냥 바라봤다. 그저 귀엽기만 하다. 우리 집 아이가 아닌 옆집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요즘엔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소리를 내어 웃을 때가 많아졌다.

 

꿈꾸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가

지난 수요일 1교시에는 1학년 친구들을 만났다. 수업 시간엔 늘 교과서를 펴기에 앞서 그림책 한 권을 읽어준다. 그날은 ‘가족의 모양’이라는 책을 꺼냈다. 3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새 20분이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은 책 속에 나온 인물과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떠오르는 말들을 무수히 쏟아냈다. 조금 정신없었지만 팔을 있는 힘껏 뻗으며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아이들을 보니 떠들썩한 교실이 하나도 싫지 않았다.

 

올해 교실 안에서 달라진 나를 본다. 선생님이 된 지 22년, 작은 학교에서 53명의 아이를 가르치고 나서야 히메나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이제야 조금 꿈꾸던 선생님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은 그대로다.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진혜련 경기 표교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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