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교원의 명예퇴직이 증가하는 가운데 교장(교감)의 명예퇴직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17개 시도에서 명예퇴직한 교장(교감)은 660명으로, 2020년 278명에 비해 137%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장의 역할, 책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학교장의 주요 역할이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학교를 관리하는 데 있었다면, 최근에는 민원 대응, 갈등 조정, 안전사고 예방 등 다양한 갈등 관리와 위기 대응 업무를 수행하며 이에 따른 책임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학교장의 역할이 관리적·행정적 차원을 넘어 경영적·교육 정치적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학교 생태계에 떨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소행성, 인공지능(AI)이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산업 구조, 조직 문화, 리더십의 방식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이 거대한 충격 앞에서 어떤 조직은 쇠퇴할 것이고, 어떤 조직은 새로운 종과 같이 진화할 것이다. 그 차이는 결국 단 하나, ‘전환 가능성’(Convertibility)에 달려 있다. 6,600만 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은 압도적인 힘에도 불구하고 멸종했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라, 거대한 소행성 충돌 이후 급변한 환경에 알맞게 스스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AI가 주도하는 초연결·초변동 시대에는 과거의 성공 방식으로는 생존과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여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가다. 학교장의 리더십 역시 산업화 시대의 관리자형 리더를 넘어 변화를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의 역량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AI의 강점과 인간 고유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융합하여 학교의 변화를 이끄는 경영자형 리더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치와 행정의 관계
AI 시대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에서는 학교장 리더십 변화를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학교장 역할의 변화, 즉 역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관리자형 학교장과 경영자형 학교장을 중심으로 두 유형 출발점의 뿌리인 정치와 행정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정치·행정 일원론의 정의
정치·행정 일원론의 핵심은 정치와 행정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지만, 완전히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가 목표를 설정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라면, 행정은 그 목표를 법과 절차에 따라 계획·집행·평가하는 실행 영역으로 본다. 이것은 정치와 행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이 둘은 일원적인 연속과정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런 입장은 정치와 행정을 별개로 보는 정치·행정 이원론과는 상반된다.
● 정치·행정 일원론의 대두 배경과 의의
정치·행정 일원론은 1930년대 중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였고,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행정부의 기능을 크게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행정은 정책집행 기능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 기능까지도 수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치와 행정을 분리된 영역이 아닌 하나의 연속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정치·행정 일원론이 등장하였다. 이 주장은 행정 역시 정치성을 지니고 있기에 행정과 정치는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로 정책이 정치(입법·의사결정)와 행정의 과정에서 계속적·순환적으로 수립·집행된다고 본다. 이 주장의 핵심은 정치(정책결정)와 행정(정책집행)은 상호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협조적 관계라는 것, 행정에서도 정책 수립이라는 정치적·가치 배분적 기능이 중요시되므로 정치와 행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학교 경영 철학의 확립: 관리, 행정을 넘어 학교 경영과 학교 정치로
● 학교 행정과 학교 정치
일반적으로 학교장들은 정치와 행정을 별개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는 법을 만들고 행정은 그 법을 집행하는 활동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고 행정은 관료의 역할이라는 인식 아래 학교장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정치와 행정 일원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즉 정치를 의사결정 과정으로 보고 행정을 결정된 의사결정을 계획하고 집행하며 실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학교장의 역할은 단순한 행정가의 범위를 넘어선다.
각급학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로 약칭)라는 법적 기구가 있다. 학운위는 학교 운영의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데, 국가체제에 비유하면 입법 기관인 국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학교장은 학운위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학운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학교의 대표자로서 역할을 한다. 학교를 정치체제에 비유하면 의원내각제와 유사하며, 학교장은 의회의 의원이자 내각 수반인 총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학교장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학교 정치의 주체이면서, 결정된 사항을 실행하는 학교 행정가라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 관리가 아닌 경영의 시대
AI가 교육과 행정 전반에 빠르게 도입되면서 학교 역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학교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기존의 관리(Administration) 중심 사고이다. 관리는 행정보다 더 협의의 개념으로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고 실수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일부 학교장은 자신의 역할을 관리자로 인식하며, 학교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한정한다. 이제 학교장에게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장은 단순히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소극적인 역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학교의 목표를 설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성과를 창출하는 경영(Management)의 관점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경영은 행정을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이다. 즉 공공성이 강한 경영의 분야가 행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리에서 경영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행정의 작동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학교장은 더 이상 교직원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리는 관리자가 아니라, 학교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이 맞는지를 교직원과 함께 검토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학교장의 모습은 학교를 경영하는 ‘최고 경영자(CEO)’라는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다.
학교 경영자, 학교 정치가로서 역할
● 학교와 학교장의 역할에 대한 시대적 요구
오늘날 학교를 둘러싼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학부모의 요구와 민원은 다양해지고, 교육복지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으며, 핵가족화로 인해 공동체적 생활 규범을 익히는 학교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획일적인 지식 전달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교육, 다양한 형태의 학교,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도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저출생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교육 역시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와 학부모 등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학교장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이제 학교장은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 경영자이자 교육 전문가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정하고 협력을 이끄는 교육정치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 학부모·지역사회와의 협력 관계 구축
1) 학부모·지역사회와의 협력 관계 구축과 학교장의 역할
학교장이 학부모, 지역사회 주민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 학교 경영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부모와 신뢰가 형성되어 있으면 각종 민원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으며, 학교교육활동에 대한 다양한 참여와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뢰와 협력은 학교 현안의 원활한 해결과 학교교육의 효과성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학교장이 지역사회 인사 및 기관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 학교교육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첫째,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전문가를 발굴하여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학교가 보유한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사회 및 외부 기관의 물적 자원을 직접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이고 특색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배정된 예산 외 추가적인 재원과 지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학부모와 지역사회, 지역기관과의 협력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학교교육에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것은 학교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2) 학부모·지역사회와의 협력 관계 구축 시 유의 사항
학교장은 학부모, 지역사회의 특성과 요구를 파악하여 이를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또한 학부모·지역사회가 학교 운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 협력의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계획을 수립·실천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점검·평가하여 관계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학교장은 학교교육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학부모와 지역 주민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학교 시설을 개방하는 등 지역사회와 상호 협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학교 방침과 교육 내용을 지역사회 등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소통·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 언론과의 관계
언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로 학교장은 언론과의 적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학교장이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학교교육활동의 홍보 등에 도움받을 수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는 학교의 입장과 사실관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언론은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집요하게 파고들어 보도하는 특성이 있어 학교를 곤란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언론 보도는 파급력이 크고 불특정 다수에게 즉시적이고 광범위하게 확산된다는 점에서 학교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학교장은 평소 투명하고 책임 있는 학교 경영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사안 발생에 대비한 위기 대응 매뉴얼과 일관된 대외 소통 체계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한편 언론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실적 홍보에 치중하는 경우 교육이 추구해야 할 본질을 놓칠 수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저술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리더의 조건으로 열정과 책임, 그리고 안목과 통찰력을 제시하며, 그중에서도 ‘안목과 통찰력’을 가장 강조했다. 학교장의 자리가 더 이상 꽃길이 아닌 오늘날, 막스 베버가 강조한 안목과 통찰력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구성원들을 움직여 교육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데 필요한 학교장의 핵심 역량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학교장에게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즉, 관리자의 역할을 넘어 경영자로의 관점 전환이다. 학교장은 더 이상 정책을 전달하고 학교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 수 없다. 학교의 비전을 설계하고,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며, 교사·학생·학부모·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협력과 조정을 끌어내는 경영자이자 교육 정치가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초연결·초변동의 AI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고, 타인으로부터 인정·존엄·애정·사랑을 얻고자 한다. 이런 인간의 특성들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나 AI라고 해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초연결·초변동 AI 시대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학교 구성원에게 필요한 리더는 유한 게임식 리더가 아닌 무한 게임식 리더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장은 단순한 관리자·행정가를 넘어서 인간 중심 관계를 설계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경영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공간이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다시 공간을 만든다’는 말처럼, 경영자로서 학교장의 궁극적인 책무는 학교 공동체를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