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던 정홍래(鄭弘來, 1720~?)가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Hawk at Sunrise)>에는 거친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의연하게 바라보는 매 한 마리가 보인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1월이다. 한 해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만든 시간의 인위적 경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강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달력의 첫 장을 넘기는 우리 마음속에는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곤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학기이지만,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우주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파도는 매년 다른 높이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오래된 회화 한 폭을 꺼내어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Hawk at Sunrise>라는 제목의 조선 회화 한 점이 걸려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침 해를 맞이하는 매>이다. 거친 바다와 파도 위, 기암괴석, 떠오르는 붉은 해, 그리고 바위 끝에 홀로 선 한 마리 매가 화면을 채운다. 메트는 이 작품을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정홍래(鄭弘來, 1720~?) 추정작으로 소개한다.
정홍래는 도화서에서 활동하며 어진1과 기록화를 그렸고, 특히 매와 일출을 결합한 그림, 이른바 〈욱일취도(旭日鷲圖)〉 계열로 이름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에 역시 같은 구도의 작품들이 전하며, 새해마다 궁중에서 제작해 나누어 주던 세화2이다. 왕이 신하들에게 새해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사하던 그림, 새해의 첫인사를 대신하던 이미지가 바로 이런 매와 해의 조합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조선 왕실과 상류층의 공간을 장식하던 이미지가 먼 시간을 돌아 세계적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경우다. 2026년 새해를 맞는 오늘, 우리는 이 그림을 다시 우리의 교실과 연구실로 불러와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꺼내보도록 하자.
거친 파도가 넘실대는 기암괴석 위에 우뚝 선 매
이 그림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훑어보면 장면이 단계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아래에는 청록과 남색이 뒤섞인 거친 파도가 있다. 겹겹이 말려 올라가는 곡선과 흰 포말이 화면 하단의 리듬을 만들어가며, 파도의 솟음이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한 줄 한 줄의 붓질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 순간 조금씩 다른 듯하다. 끊임없이 몰려오지만, 결코 같은 모습이 아닌 파도를 바라본 경험이 연상된다. 그 위로는 대각선 방향으로 치솟은 괴석이 자리한다. 바위의 기울어진 형태는 화면에 대각선을 만들며, 밑에서는 파도가 바위를 끊임없이 때리며, 윗부분은 하늘과 해를 향해 비스듬히 치솟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청록과 갈색이 교차하는 바위의 표면은 거칠고 불규칙하다.
하단의 기저선이자 수평선, 왼쪽으로 기울어진 바위, 오른쪽 위의 둥근 해가 변화를 주면서도 균형되게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바위는 단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금이 가고 패인 자국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깎여 나간 자리, 우리가 서 있는 학교와 교실이라는 교육 공간을 닮은 듯하다.
바위 끝에는 한 마리 매가 서 있다. 갈색·회색·흰색이 섞인 깃털은 매우 정교한 필선으로 묘사되었으며, 검은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와 동그란 눈이 또렷이 살아 있다.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몸, 정교하게 묘사된 깃털이 긴장된 자세를 드러낸다. 작가의 선묘와 채색이 가장 밀도 높게 모인 곳이 바로 이 매의 몸이다. 정홍래의 매 그림이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세부 묘사로 유명하다는 설명과 정확히 맞물린다. 화면 전체의 리듬감 있으면서 거친 바다 배경이라면, 중심에 위치한 매는 의연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엇을 바라보고 서 있을 것인가
화면 왼쪽 상단에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일출을 본 경험이 있다면, 그 긴박감 있는 순간이 연상되리라. 기다리는 내내 느린 듯하다가, 어느 순간 훌쩍 하늘 위로 두둥 떠오른다. 주변의 하늘은 구름과 넓은 여백으로 처리되어, 복잡한 파도와 대비를 이루며 해를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붉은 해와 청록색 바위, 푸른 바다의 강한 색채 대비, 아래의 복잡함과 위의 여백이라는 공간 대비가 새벽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게 낸다.
이 도상에는 미술사적 내러티브가 겹쳐져 있다. 조선 중기의 매 그림이 줄에 묶인 사냥매, 곧 ‘가응도’ 중심이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줄을 벗어 던진 야생의 매가 해·파도·바위와 함께 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욱일취도〉와 같은 작품이 그 사례이다.
바위 끝에 선 매는 정교한 선으로 그려진 깃털과 미세하게 갈라진 색채의 그러데이션으로 처리되며, 꼿꼿한 자세의 몸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앞으로 조금 기울어진 몸이 긴장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매’를 가리키는 한자 웅응(雄鷹)의 발음을 거꾸로 읽으면 영웅(英雄)이 된다는 설명처럼 바위 위에 홀로 선 한 마리 매는 영웅독립(英雄獨立)이라고 읽히기도 한다는 해석도 있다. 새해마다 궁중에서 제작해 신하에게 나누어주던 세화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새해, 각자의 자리에서 곧게 서 있으라’는 왕실의 시각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매는 ‘강인함’과 ‘용기’를 상징한다. 조선에서 매는 왕권을 감시하던 사헌부를 가리키는 이미지로도 쓰였고, 수컷 매를 뜻하는 웅응(雄鷹)의 발음이 영웅(英雄)으로 겹쳐 읽히기도 했다. 새해마다 나누어지던 세화 속 한 마리 매는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는 영웅’의 초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붉은 해와 함께 날아 볼 준비를 하자
조선 후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 그림은 왕이 신하에게 건네는 새해의 당부였을 것이다. 파도가 거세더라도 바위 위에서 곧게 서 있으라는 요청, 영웅처럼 독립하여 나라를 지키라는 기대가 담긴 세화였다. 하지만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이 이미지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교실에서 묵묵히 학생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교육자, 변화무쌍한 정책과 여론의 부정적 물살 속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바위 끝의 매는 교육의 험난한, 그렇지만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이다,
세상은 파도처럼 변화무쌍해 보이는 예측불허의 급격한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와 아울러 인공지능(AI)의 시대에 학생·학부모,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때로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개인과 조직과 사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언제든 밀려오는 파도에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바위처럼 비록 시간에 닳고 마모되어 가겠지만, 같이 오래갈 수 있는 ‘우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기댈 자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질문과 변화를 몰고 오는 물결이 세상사가 된다.
붉은 해를 바라보며, 매의 고독을 하나의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 하는 관계 속에서 독립된 우리 중 하나로 생각해 보자. 내 탓, 네 탓보다는 우리가 함께 정서적으로 공감한다면,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보이리라. 때로는 어려움에 흔들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따뜻한 교직 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의 바위에 서서 해를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매가 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을 여는 새로운 시작에서, 각자의 교실과 삶의 자리를 떠올리며 이 그림을 마음속 세화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올해 나는 무엇을 향해 날고 싶은가, 누구와 함께 날고 싶은가, 날아가는 동안 무엇만은 잃지 않겠는가. 날아오르기 전, 잠시 멈추어 서서 묻는 이 질문이 우리 모두의 새해 첫 결심이 되기를 바란다.











